初
에 魏曹操分南匈奴
하야 爲五部
하고 以左賢王豹
로 爲左部帥
러니 豹子淵
注+[釋義]淵은 字元海니 〈匈奴左賢王豹之子也라〉 初에 漢高以宗女爲公主하야 以妻冒頓이라 故其子孫이 遂冒姓劉氏하니라이 幼而雋(俊)異
하고 博習經史라
嘗謂同門生曰 吾常恥隨, 陸無武
注+[釋義]隨, 陸은 隨何, 陸賈니 皆事漢高, 惠하니라하고 絳, 灌無文
注+[釋義]絳은 周勃也니 封絳侯하고 灌은 謂灌嬰也니 共立漢文帝하니라하노니
隨, 陸은 遇高帝而不能建封侯之業하고 絳, 灌은 遇文帝而不能興庠序之敎하니 豈不惜哉아 於是에 兼學武事하다
及長
에 猿臂
注+[頭註]如猿通臂也라善射
하고 膂力注+[頭註]膂는 脊骨上肉이라過人이라
爲
하야 在洛陽
할새 王渾
이 重之
注+[頭註]王渾及其子濟가 皆重之하니라러라
齊王攸
注+[頭註]文帝昭之子요 武帝炎之弟라言於晉主曰 陛下不除劉淵
이면 臣恐幷州不得久安
일까하노이다
王渾曰 大晉이 方以信懷殊俗하니 奈何以無形之疑로 殺人侍子乎잇가 晉主曰 渾言이 是也니라
會
에 豹卒
커늘 以淵
으로 代爲左部帥
注+[原註]後에 爲五胡亂華之首하니라하다
○ 晉益州刺史王濬이 上疏曰 孫皓荒淫凶逆하니 宜速征伐하소서
若一旦皓死하고 更立賢主면 則彊敵也요 臣이 作船七年에 日有朽敗하고 臣年七十이라 死亡無日하니
三者에 一乖면 則難圖也니 誠願陛下無失事機하소서
杜預上表曰 羊祜不先博謀於朝臣하고 而密與陛下로 共施此計라
故로 令朝臣多異同之議하니 凡事를 當以利害相校라
今此擧之利는 十有八九요 而其害一二니 止於無功耳라
必使朝臣
으로 言破敗之形
이라도 亦不可得
이니 直
注+[釋義]猶但也라是
計不出己하야 功不在身이라
晉主與張華圍碁
러니 預表適至
어늘 華
(秤)[枰]
注+[釋義]棊局也라斂手
하고 曰 陛下
는 聖武
하시고 國富兵彊하며
吳主는 淫虐하야 誅殺賢能하니 當今討之면 可不勞而定이니
山濤退而告人曰 自非聖人인댄 外寧이면 必有內憂하나니 今釋吳하야 以爲外懼 豈非算乎아
○ 十一月
에 晉
이 大擧伐吳
할새 遣琅琊王伷
注+[頭註]伷는 同冑라 武帝炎之叔父也라하야 出涂中
注+[釋義]涂는 音途니 水名이라 出益州牧靡南山하야 西北入澠하니라하고 王渾
은 出江西
하고 王戎
은 出武昌
하고 胡奮
은 出夏口
하고 杜預
는 出江陵
하고 하니 東西凡二十餘萬
이러라
기해(279) - 진晉나라 함녕咸寧 5년이고, 오吳나라 천기天紀 3년이다. -
처음에
위魏나라
조조曹操가
남흉노南匈奴를 나누어 5
부部로 만들고
좌현왕左賢王 유표劉豹를
좌부수左部帥로 삼았는데,
유표劉豹의 아들
유연劉淵注+[釋義]유연劉淵은 자字가 원해元海이니, 흉노匈奴 좌현왕左賢王 유표劉豹의 아들이다. 처음에 한漢나라 고조高祖가 종실의 딸을 공주라 하여 묵특冒頓에게 시집보냈다. 그러므로 그 자손들이 마침내 가탁하여 유씨劉氏를 성姓으로 삼은 것이다. 이 어린데도 준걸스럽고 기이하였으며
경사經史를 널리 익혔다.
유연劉淵이 일찍이
동문同門의
생도生徒들에게 이르기를 “나는 항상
수하隨何와
육가陸賈注+[釋義]수隨, 육陸은 수하隨何와 육가陸賈이니, 모두 한漢나라 고조高祖와 혜제惠帝를 섬겼다. 가
무공武功이 없고
강후絳侯와
관영灌嬰注+[釋義]강絳은 주발周勃이니 강후絳侯에 봉해졌고 관灌은 관영灌嬰을 이르니, 함께 한漢나라 문제文帝를 세웠다. 이
문재文才가 없음을 부끄러워한다.
수하隨何와 육가陸賈는 고조高祖를 만났으나 후侯에 봉해지는 공업功業을 세우지 못하였고 강후絳侯와 관영灌嬰은 문제文帝를 만났으나 상서庠序의 교육을 진흥振興시키지 못하였으니, 어찌 애석하지 않겠는가.” 하고 이에 무예武藝를 겸하여 배웠다.
장성하자 팔이 원숭이처럼 길어
注+[頭註]원비猿臂는 원숭이처럼 팔이 긴 것이다. 활쏘기를 잘하였으며 힘
注+[頭註]여膂는 등골뼈 위의 살이다. 이 보통 사람보다 뛰어났다.
시자侍子가 되어
낙양洛陽에 있을 때에
왕혼王渾이 그를 소중히 여겼다.
注+[頭註]왕혼王渾과 그의 아들 왕제王濟가 모두 유연劉淵을 소중하게 여겼다.
제왕齊王 사마유司馬攸注+[頭註]제왕齊王 사마유司馬攸는 문제文帝 사마소司馬昭의 아들이고 무제武帝 사마염司馬炎의 아우이다. 가
진주晉主에게 말하기를 “폐하께서
유연劉淵을 제거하지 않으면
신臣은
병주幷州가 오랫동안 편안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하였다.
왕혼王渾이 말하기를 “대진大晉이 이제 막 신의로 풍속이 다른 이민족들을 회유하고 있으니, 어찌 드러나지 않은 의심 때문에 남의 시자侍子를 죽일 수 있겠습니까.” 하니, 진주晉主가 말하기를 “왕혼王渾의 말이 옳다.” 하였다.
마침
유표劉豹가 죽자,
유연劉淵을 대신
좌부수左部帥로 삼았다.
注+[原註]뒤에 오호五胡가 중화中華를 어지럽히는 시초가 되었다.
○ 진晉나라 익주자사益州刺史 왕준王濬이 상소하기를 “손호孫皓가 황음무도荒淫無道하고 흉악하며 패역하니 마땅히 속히 정벌해야 합니다.
만일 하루아침에 손호孫皓가 죽어 다시 어진 군주를 세우면 강한 적이 될 것이요, 신이 배를 만든 지가 7년이 되어 배가 날로 썩고 부서지며, 신의 나이가 70이어서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세 가지 중에 하나만 틀려도 도모하기가 어려우니, 진실로 폐하께서는 사기事機를 놓치지 마소서.” 하였다.
진주晉主가 이에 오吳나라를 정벌할 것을 결심하였는데, 조정에서는 이듬해에 출병할 것을 의논하였다.
두예杜預가 표문表文을 올려 아뢰기를 “양호羊祜가 조정의 신하들에게 먼저 널리 상의하지 않고 은밀히 폐하와 함께 이 계책을 마련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조정의 신하들이 이동異同의 의논이 많으니, 모든 일은 마땅히 이해利害를 가지고 서로 따져야 합니다.
이제 이 일에 있어 이로운 것은 열에 여덟아홉이고, 해로운 것은 한둘이니 다만 전공戰功이 없음에 불과할 뿐입니다.
만일 조정의 신하들로 하여금 우리가 적을 격파할 형세를 말하게 한다 하더라도 또한 될 수 없을 것이니, 이는 단지
注+[釋義]직直은 다만과 같다. 이 계책이 자신들에게서 나오지 아니하여
공功이 자신들에게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吳나라를 정벌하여 승리한다면 조정의 신하들은〉 각각 지난날 오吳나라를 정벌하는 것을 반대했던 자신들의 의론이 잘못되었음이 증명될까 부끄러워하여 완고하게 지킬 것입니다.” 하였다.
진주晉主가
장화張華와 바둑을 두고 있었는데,
두예杜預의
표문表文이 마침 이르자
장화張華가 바둑판
注+[釋義]평枰은 바둑판이다. 을 밀치고
공수拱手하고서 아뢰기를 “폐하께서는
성명聖明하고
영무英武하시며 나라와 군대는 부유하고 강합니다.
오주吳主는 황음무도하고 사나워서 어진 이와 유능한 이를 함부로 죽이니, 지금 이를 토벌하면 수고롭지 않고도 평정할 수 있습니다.
원컨대 의심하지 마소서.” 하니, 진주晉主가 마침내 정벌할 것을 허락하였다.
산도山濤가 물러나서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만일 성인聖人이 아닐진댄 밖이 편안하면 반드시 안에 우환이 있는 법이니, 지금 오吳나라를 내버려 두어서 밖의 두려움으로 삼는 것이 어찌 좋은 계책이 아니겠는가.” 하였다.
○ 11월에
진晉나라가 크게 군대를 일으켜
오吳나라를 정벌할 적에
낭야왕琅琊王 사마주司馬伷注+[頭註]주伷는 주冑와 같다. 사마주司馬伷는 무제武帝 사마염司馬炎의 숙부叔父이다. 를 보내어서
도중涂中注+[釋義]도涂는 음이 도이니, 물 이름이다. 익주益州의 목미남산牧靡南山에서 나와서 서북쪽으로 흘러 승수澠水로 들어간다. 으로 나가게 하고,
왕혼王渾은
강서江西로 나가고
왕융王戎은
무창武昌으로 나가고
호분胡奮은
하구夏口로 나가고
두예杜預는
강릉江陵으로 나가고
왕준王濬과
당빈唐彬은
파巴‧
촉蜀으로 나가게 하니,
동서東西의 병력이 모두 20여만 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