詔進拓跋
盧
注+[原註]後爲元魏하니라注+[附註]拓跋은 複姓이니 後改姓元氏하니라 初에 匈奴劉虎附漢이어늘 劉琨將討之할새 說猗盧하야 請兵하야 遂破劉虎하니라 琨結爲兄弟하고 表爲大單于하야 封之代公이러니 後爲元魏하니라 魏之先은 出自黃帝라 受封國에 有大鮮卑山하야 因以大鮮卑爲號하니라爵
하야 爲代王
하다
侃
이 在廣州
에 無事
면 輒朝運百
注+[釋義]甓은 韻會云 瓴甋을 謂之甓이라於齋外
하고 暮運於齋內
어늘
人問其故한대 答曰 吾方致力中原하노니 過爾優逸이면 恐不堪事라 故自勞爾라하더라
건흥建興 3년(을해 315) - 한漢나라 건원建元 원년元年이다. -
황제가 명하여
탁발의로拓跋猗盧注+[原註]拓跋猗盧는 뒤에 원위元魏(北魏)의 선조가 된다.注+[附註][附註]拓跋은 복성複姓이니, 뒤에 성을 원씨元氏로 고쳤다. 처음에 흉노匈奴 유호劉虎가 한漢나라에 붙자, 유곤劉琨이 그를 토벌하려 할 적에 탁발의로拓跋猗盧를 설득하여 병력을 청하여 마침내 유호劉虎를 격파하였다. 유곤劉琨이 탁발의로拓跋猗盧와 의형제를 맺고 표문表文을 올려 대선우大單于로 삼아서 대공代公에 봉하였는데, 뒤에 원위元魏가 되었다. 위魏나라의 선조先祖는 황제黃帝로부터 나왔다. 봉국封國을 받은 곳에 대선비산大鮮卑山이 있어서 인하여 대선비大鮮卑라고 호칭하였다. 의 작위를 올려
대왕代王으로 삼았다.
도간陶侃이
광주廣州에 있을 적에 일이 없으면 그때마다 아침에 백 장의 벽돌
注+[釋義]벽甓은 《운회韻會》에 이르기를 “벽돌을 벽甓이라 한다.” 하였다. 을 집 밖으로 운반했다가 저녁이면 집 안으로 운반하였다.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묻자, 대답하기를 “내가 막 중원中原에 힘을 다하려 하니, 지나치게 편안하면 일을 감당하지 못할까 두렵기 때문에 스스로 수고롭게 하는 것뿐이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