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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5)

통감절요(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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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5)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乙酉]三年이라 〈趙光初八年이요 後趙七年이라
五月 以陶侃으로 爲征西大將軍, 都督荊, 湘, 雍, 梁四州諸軍事, 荊州刺史하니 荊州士女相慶이러라
聰敏恭勤하야 終日斂膝危坐하고 軍府衆事 檢攝無遺하야 未嘗少閑하다
常語人曰 大禹 聖人이로되 乃惜寸陰하시니 至於衆人하야는 當惜分陰注+[釋義] 分寸之分也이니
豈可但逸遊荒醉하야 生無益於時하고 死無聞於後리오
自棄也라하니라
嘗造船할새 其木屑竹頭 皆令籍而掌之한대 人咸不解所以러니 後正會注+[頭註]之首月也 積雪初晴하야 廳事前 餘雪猶濕이어늘 乃以木屑布地하고 及桓溫伐蜀 又以侃所貯竹頭 作丁注+[頭註] 讀曰釘이라裝船하니綜理微密 皆此類也러라
[新增]養心吳氏曰
晉俗之敝 在於淸談廢事어늘 而侃能勤事如此하니 可謂砥柱中流注+[頭註]書禹貢 砥作底 在冀州大河中流하니 其形如柱하야 不爲習俗所移
賢於王導, 謝安 遠矣니라
七月 帝崩하다
明敏有機斷이라
以弱制强하야 誅剪逆臣하고 克復大業하니라
太子卽皇帝位하니 生五年矣
太后注+[頭註]荀氏臨朝稱制하고 以司徒導 錄尙書事하고 與中書令庾亮 尙書令卞壼으로 參輔朝政이나
然事之大要 하니라
[史略 史評]史斷曰
明帝 潛謀獨斷하야 躬率하고 掃除大憝하야 未及朞年 敦黨悉平하니 雖享國日淺이나 而志亦可壯矣니라


태령太寧 3년(을유 325) - 나라 광초光初 8년이고, 후조後趙 7년이다. -
5월에 도간陶侃정서대장군征西大將軍도독형주상주옹주량주제군사都督荊州湘州雍州梁州諸軍事형주자사荊州刺史로 삼으니, 형주荊州의 남녀 백성들이 서로 경하하였다.
도간陶侃은 성품이 총명하고 민첩하며 공손하고 부지런하여 종일토록 무릎을 모으고 단정히 앉아서 군부軍府의 여러 가지 일을 단속하여 빠뜨림이 없어 일찍이 조금도 한가한 적이 없었다.
항상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대우大禹성인聖人인데도 마침내 촌음寸陰注+[釋義]분촌分寸이다. 을 아끼셨으니, 중인衆人들에 이르러서는 분음分陰을 아껴야만 한다.
어찌 다만 편안히 놀고 할 일을 폐한 채 술에 취하여, 살아서는 세상에 유익함이 없고 죽어서는 후세에 알려짐이 없게 하겠는가.
이는 자포자기이다.” 하였다.
일찍이 배를 만들 때에 톱밥과 대나무 조각을 도간陶侃이 모두 장부에 기록하여 관장하게 하니, 사람들이 모두 어디에 쓰려는 것인지 알지 못하였는데, 뒤에 원단元旦의 모임注+[頭註]정회正會정세正歲의 첫 달에 모이는 것이다. 에 눈이 많이 내리다가 날씨가 막 개어서 청사廳事 앞에 남은 눈이 아직도 젖어 있자 이에 톱밥을 땅에 뿌렸으며, 환온桓溫을 정벌할 때에 또 도간陶侃이 저장해 두었던 대나무 조각으로 대못注+[頭註]으로 읽는다. 을 만들어 배를 정비하니, 일을 종합하고 처리함에 치밀하고 빈틈없음이 모두 이와 같았다.
[新增]養心吳氏가 말하였다.
나라 풍속의 병폐는 청담淸談을 하여 일을 폐지하는 데 있었는데, 도간陶侃이 일을 부지런히 하기를 이와 같이 하였으니, 중류中流지주砥柱注+[頭註]서경書經》 〈우공禹貢〉에는 ‘’가 ‘’로 되어 있다. 기주冀州대하大河(黃河) 중류中流에 있으니, 그 모양이 기둥과 같다. 가 되어서 습속習俗에 옮김을 당하지 않았다고 이를 만하다.
왕도王導사안謝安보다 크게 어질다.”
7월에 황제가 하였다.
황제는 명민하고 결단력이 있었다.
그러므로 약한 형세로 강한 자를 제압하여 역신逆臣을 죽이고 대업大業을 회복하였다.
태자太子가 황제에 즉위하니, 나이가 5세였다.
태후太后注+[頭註]태후太后순씨荀氏이다. 가 조정에 임어臨御하여 를 칭하고 사도司徒 왕도王導녹상서사錄尙書事로 삼고, 중서령中書令 유량庾亮상서령尙書令 변곤卞壼과 함께 참여하여 조정의 정사를 보필하게 하였다.
그러나 일의 대체大體는 모두 유량庾亮에게서 결정되었다.
[史略 사평史評]史斷에 말하였다.
명제明帝는 은밀히 도모하고 홀로 결단하여 몸소 육군六軍(全軍)을 거느리고 원흉元兇을 소탕하여 미처 기년期年이 되기 전에 왕돈王敦의 도당이 모두 평정되었으니, 비록 재위한 연수는 짧으나 뜻은 또한 장하게 여길 만하다.”


역주
역주1 正歲 : 夏曆의 正月을 이르니, 四時의 바름을 얻었기 때문에 正歲라 한다.
역주2 皆決於亮 : 庾亮은 明帝의 皇后의 오라비이다.
역주3 六軍 : 1군은 1만 2천 5백 명인 바, 고대에 천자국은 6군이고 제후국의 대국은 3군이었다. 이 때문에 全軍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통감절요(5)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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