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丁亥]咸和二年이라 〈趙光初十年이요 後趙九年이라〉
十月
에 庾亮
이 以蘇峻
注+[附註]懷帝永嘉之亂에 糾合數千家하니 元帝以爲鷹揚將軍이러니 後討敦有功한대 進持節, 冠軍將軍하다 旣有功에 潛有異志하니라在歷陽
하야 終爲禍亂이라하야 欲下詔徵之
하야 訪於司徒導
한대 導曰 峻
은 猜險
하니 必不奉詔
니
卞壼, 溫嶠累書止亮하고 擧朝以爲不可라호되 亮皆不聽하다
於是에 下優詔徵峻하야 爲大司農하니 峻이 遂不應命하다
峻
이 知祖約怨朝廷
注+[附註]約은 逖之弟也라 約自以名輩不後郄鑒, 卞壼이어늘 而不與顧命遺詔러니 褒進大臣에 又不及己하니 疑亮削之하야 乃怨亮하니라하고 乃遣使
하야 推崇約
하고 請共討庾亮
하니 約
이 大喜
하야 以兵會峻
하다
함화咸和 2년(정해 327) - 조趙나라 광초光初 10년이고, 후조後趙 9년이다. -
10월에
유량庾亮은
소준蘇峻注+[附註]소준蘇峻이 회제懷帝 영가永嘉의 난亂에 수천 가호를 규합하니 원제元帝가 소준蘇峻을 응양장군鷹揚將軍으로 삼았는데, 뒤에 왕돈王敦을 토벌한 공이 있자 지절持節‧관군장군冠軍將軍으로 승진시켰다. 공을 세운 뒤에 남몰래 딴 마음을 품었다. 이
역양歷陽에 있어서 끝내
화란禍亂을 일으킬 것이라 하여 조서를 내려 부르고자 해서
사도司徒 왕도王導에게 묻자,
왕도王導가 말하기를 “
소준蘇峻은 시기하고 음험하니, 반드시 조서를 받들지 않을 것입니다.
우선 너그럽게 포용하는 것만 못합니다.” 하였다.
변곤卞壼과 온교溫嶠가 여러 번 편지를 보내어 유량庾亮을 만류하고 온 조정이 불가하다고 하였으나 유량庾亮이 모두 듣지 않았다.
이에 우대하는 조서를 내려 소준蘇峻을 불러 대사농大司農으로 삼으니, 소준蘇峻이 마침내 명령에 응하지 않았다.
소준蘇峻은
조약祖約이 조정을 원망한다
注+[附註]조약祖約은 조적祖逖의 아우이다. 조약祖約이 스스로 ‘명성名聲과 행배行輩(지위)가 극감郄鑒과 변곤卞壼에게 뒤지지 않는데도 고명顧命의 유조遺詔에 참여하지 못하였다.’고 여겼는데, 대신들을 승진시킬 때에 또 자신에게 미치지 않으니, 유량庾亮이 삭제한 것이라고 의심해서 마침내 유량庾亮을 원망하였다. 는 것을 알고 마침내
사자使者를 보내어
조약祖約을 추대하여 높이고 함께
유량庾亮을 토벌할 것을 청하니,
조약祖約이 크게 기뻐하여 병력을 데리고
소준蘇峻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