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丙辰]十二年이라 〈秦壽光二年이요 燕元璽五年이라〉
桓溫
이 自江陵北伐
할새 與寮屬
으로 登
하야 望中原
하고 歎曰 遂使
神州陸沈注+[釋義]神州는 中國也니 註見懷帝永嘉五年하니라 陸은 高平地요 沈은 溺也라 神州陸沈은 謂中原淪沒也니 猶王道陵夷之義라[通鑑要解]中國名曰 赤縣神州라 內有九州하니 禹之序九州 是也라 陸沈은 謂無水而沈이라하야 百年丘墟
는 王夷甫諸人
이 不得不任其責
注+[通鑑要解]謂王衍等이 尙淸談하고 而不恤王事하야 以致夷狄亂華也라이라하더라
溫이 結陳(陣)而前하야 親被甲督戰하니 襄衆이 大敗하야 死者數千人이라
襄이 帥麾下數千騎하고 奔于洛陽北山하니 周成이 帥衆出降하다
謁諸陵
하고 有毁壞者
면 修復之
하고 以二千人戍洛陽
하야 衛山陵
하고 執周成以歸
하니 姚襄
注+[通鑑要解]姓名이니 弋仲子라이 奔平陽
注+[原註]襄이 後欲圖關中하야 帥衆伐秦이라가 兵敗하야 爲秦所殺하니 弟萇이 帥其衆降秦하니라하다
○ 十月
에 燕大司馬恪
이 圍段龕
注+[通鑑要解]龕은 音堪이라 初에 鮮卑段蘭이 領其衆하고 徙廣固러니 辛亥年에 來降하니 以爲鎭北將軍하고 封齊公이라於廣固
하니 十一月
에 龕
이 面縛出降이어늘
영화永和 12년(병진 356) - 진秦나라 수광壽光 2년이고, 연燕나라 원새元璽 5년이다. -
환온桓溫이
강릉江陵에서
북벌北伐할 적에 동료들과 함께 큰 배 위의 누각에 올라가서
중원中原을 바라보고 한탄하기를 “마침내
중원中原을 매몰시켜
注+[釋義]神州는 중국中國이니, 주註가 회제懷帝 영가永嘉 5년조年條(311)에 보인다. 육陸은 높고 평평한 곳이요 침沈은 빠짐이다. 신주神州가 육침陸沈했다는 것은 중원中原이 쇠퇴함을 이르니, 왕도王道가 능이陵夷(쇠퇴)하였다는 뜻과 같다. [通鑑要解]中國을 이름하기를 적현신주赤縣神州라 한다. 중국 안에 구주九州가 있으니, 우왕禹王이 구주九州를 차서한 것이 이것이다. 육침陸沈은 물이 없이 육지가 가라앉은 것과 같음을 이른다. 백년百年의
기업基業이 폐허가 되게 한 것은
왕이보王夷甫(王衍) 등 여러 사람이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다.
注+[通鑑要解]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왕연王衍 등이 청담淸談을 숭상하고 국사國事를 돌보지 않아서 이적夷狄들이 중화中華를 어지럽히게 만들었음을 이른다. ” 하였다.
○ 8월에 환온桓溫이 이수伊水에 이르니, 요양姚襄이 낙양洛陽의 포위를 풀고 와서 환온桓溫을 막았다.
환온桓溫이 진陣을 치고 전진하여 직접 갑옷을 입고 싸움을 독려하니, 요양姚襄의 무리가 크게 패하여 죽은 자가 수천 명이었다.
요양姚襄이 휘하의 기병騎兵 수천 명을 거느리고 낙양洛陽의 북산北山으로 달아나니, 주성周成이 무리를 거느리고 나와서 항복하였다.
환온桓溫이 옛 태극전太極殿 앞에 주둔하였는데, 이윽고 금용성金墉城으로 옮겨 주둔하였다.
여러
능陵에 배알하였고 허물어져 파괴된 곳이 있으면 수리하여 복구하였으며, 2천 명을
낙양洛陽에 주둔시켜
산릉山陵을 호위하게 하고
주성周成을 사로잡아 돌아오니,
요양姚襄注+[通鑑要解]요양姚襄은 성명姓名이니, 요익중姚弋仲의 아들이다. 이
평양平陽으로 달아났다.
注+[原註]요양姚襄이 뒤에 관중關中을 도모하고자 하여 군대를 거느리고 진秦나라를 정벌했다가 군대가 패하여 진秦나라에게 죽임을 당하니, 아우 요장姚萇이 군대를 거느리고 진秦나라에 항복하였다.
○ 10월에
연燕나라
대사마大司馬 모용각慕容恪이
단감段龕注+[通鑑要解]감龕은 음音이 감이다. 처음에 선비족鮮卑族인 단란段蘭이 무리를 끌고서 광고廣固로 옮겨 갔는데, 신해년(351)에 진晉나라에 와서 항복하니 그를 진북장군鎭北將軍으로 삼고 제공齊公에 봉하였다. 을
광고廣固에서 포위하니, 11월에
단감段龕이 두 손을 등 뒤로 돌려 묶고 얼굴을 사람들에게 보이도록 앞으로 향하고 나와서 항복하였다.
모용각慕容恪이 새로 귀부歸附한 백성들을 어루만져 위로하고 제齊나라 지역을 다 평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