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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5)

통감절요(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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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5)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丁巳]升平元年이라 〈秦主苻堅永興元年이라
○ 燕光壽元年이라
秦主生 飮酒無晝夜하야 乘醉多所殺戮하니 群臣 得保一日 如度十年이라
東海王堅注+[頭註]洪之孫이요 雄之子 素有時譽하야 與薛讚, 權翼注+[通鑑要解]故姚襄參軍이라이러니 讚, 翼 密說堅曰 主上 猜忌暴虐하야 中外離心하니 方今 宜主秦祀者 非殿下而誰
願早爲計하야 勿使他姓得之하소서
以問尙書呂婆樓한대 婆樓曰 僕里舍 有王猛者하니 其人謀略 不世出이니 殿下宜請而咨之하소서
因婆樓以招猛하야 一見如舊友하고 語及時事 堅大悅하야 自謂如劉玄德之遇諸葛孔明也라하니라
[新增]養心吳氏曰
孔明 三代之遺才 王猛 豈其儔匹哉
若論劉玄德之信任이면 則堅實無愧之矣리라
梁平老注+[頭註]御史中丞也 謂堅曰 主上失德하야 上下嗷嗷하야 人懷異志하니 燕, 晉二方 伺隙而動이면 恐禍發之日 家國俱亡일까하노니
殿下之事也 宜早圖之하소서 堅然之하다
與呂婆樓 帥麾下三百人하야 鼓譟而進하니 宿衛注+[頭註]宿 守也將士 皆舍仗注+[頭註] 五兵總名이니 五兵 謂矛戟弓劍戈歸堅호되 生猶醉寐
堅兵 引生置別室하고 廢爲越王이러니 尋殺之하다
乃去皇帝號하고 稱大秦天王이라하다
○ 十一月 秦王堅 行至尙書하야 以文案不治라하야 程卓官하고 以王猛代之하다
擧異才하고 修廢職하며 課農桑하고 恤困窮하며 禮百神하고 立學校하며 旌節義하고 繼絶世하니 秦民 大悅이러라


승평升平 원년元年(정사 357) - 진주秦主 부견苻堅영흥永興 원년元年이다.
나라 광수光壽 원년元年이다. -
진주秦主 부생苻生이 밤낮없이 술을 마셔서 술김에 살육을 많이 자행하니, 군신群臣들이 하루 동안 목숨을 보전하는 것을 십 년처럼 여겼다.
동해왕東海王 부견苻堅注+[頭註]동해왕東海王 부견苻堅포홍蒲洪의 손자이고 부웅苻雄의 아들이다. 이 평소에 당시 사람들의 칭찬이 있어서 설찬薛讚권익權翼注+[通鑑要解]설찬薛讚권익權翼은 옛날에 요양姚襄참군參軍이었다. 과 친하였는데, 설찬薛讚권익權翼이 은밀히 부견苻堅을 설득하기를 “주상이 잔인하고 포학무도하여 중외中外의 마음이 떠났으니, 현재 나라의 제사를 주관해야 할 자는 전하가 아니고 누구이겠습니까.
바라건대 일찍 계책을 세워서 타성他姓으로 하여금 나라를 얻게 하지 마소서.” 하였다.
부견苻堅상서尙書 여파루呂婆樓에게 묻자, 여파루呂婆樓가 말하기를 “저희 마을에 사는 사람 중에 왕맹王猛이라는 자가 있어 그 사람의 모략이 좀처럼 세상에 나타나지 않을 만큼 뛰어나니, 전하께서는 그를 초청하여 자문하소서.” 하였다.
부견苻堅여파루呂婆樓를 통하여 왕맹王猛을 초대해서 한 번 만나 보고는 오래된 친구처럼 여겼으며, 당세의 일을 언급하자 부견苻堅이 크게 기뻐하여 스스로 유현덕劉玄德제갈공명諸葛孔明을 만난 것과 같다고 여겼다.
[新增]養心吳氏가 말하였다.
공명孔明삼대三代 시대의 유재遺才(후세의 뛰어난 인재)이니, 왕맹王猛이 어찌 그에게 필적匹敵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만약 유현덕劉玄德의 신임을 가지고 논한다면 부견苻堅이 실로 유현덕劉玄德에게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양평로梁平老注+[頭註]양평로梁平老어사중승御史中丞이다. 등이 부견苻堅에게 이르기를 “주상이 을 잃어 상하上下가 원망하여 사람들이 딴 마음을 품고 있으니, 나라와 나라 두 방면이 틈을 엿보아 출동하면 화란禍亂이 일어났을 때에 집안과 나라가 함께 망할까 두렵습니다.
이는 전하의 일이니, 빨리 도모하셔야 합니다.” 하니, 부견苻堅이 이 말을 옳게 여겼다.
부견苻堅여파루呂婆樓와 함께 휘하 300명을 거느리고서 북을 치고 함성을 지르며 진격하니, 궁궐을 숙위宿衛注+[頭註]宿은 지킴이다. 하던 장병들이 모두 병장기注+[頭註]은 다섯 가지 병기의 총칭이니, 다섯 가지 병기는 를 이른다. 를 버리고 부견苻堅에게 귀부歸附하였는데, 부생苻生은 오히려 취하여 자고 있었다.
부견苻堅의 군사들이 부생苻生을 끌어다가 별실別室에 유치하고 폐출하여 월왕越王으로 삼았다가 오래지 않아 그를 죽였다.
부견苻堅이 마침내 황제皇帝의 칭호를 없애고 대진천왕大秦天王이라고 칭하였다.
○ 11월에 진왕秦王 부견苻堅순시巡視하다가 상서대尙書臺에 이르러서 문안文案이 제대로 다스려지지 못했다 하여 좌승左丞 정탁程卓을 직위에서 면직시키고 왕맹王猛으로 대신하게 하였다.
부견苻堅이 특이한 재능이 있는 자를 천거하고 폐지된 정사를 닦으며, 농업과 양잠을 권장하고 곤궁한 자들을 구휼하며, 여러 들에게 제사를 올리고 학교를 세우며, 절의節義가 있는 인물을 표창하고 후사後嗣가 없는 현자賢者를 이어주니, 나라 백성들이 크게 기뻐하였다.


역주
역주1 免左丞{相} : 《資治通鑑》에는 ‘左丞相’이 ‘左丞’으로 되어 있는 바, 이에 근거하여 바로잡았다. 左丞은 尙書左丞을 가리키는 바, 尙書臺의 佐貳官으로 尙書右丞보다 위이다.

통감절요(5)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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