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壬戌]隆和元年이라 〈秦甘露四年이요 燕建熙三年이라〉
正月
에 桓溫
이 上疏
하야 請遷都洛陽
하고 自永嘉之亂
注+[頭註]懷帝爲劉聰所執이라으로 播流江表
注+[通鑑要解]播流는 播越流離也요 江表는 中原以江南爲江表라者
를 請一切北徙
하야 以實河南
한대 朝廷
이 畏溫
하야 不敢爲異
나
而北土蕭條하야 人情이 疑懼하니 雖竝知不可나 莫敢先諫이러라
散騎常侍孫綽
이 上疏曰 昔
에 中宗
注+[通鑑要解]元帝廟號라龍飛
에 非惟信順
注+[通鑑要解]易大傳曰 天之所助者順也요 人之所助者信也라協於天人
이요 實賴萬里長江
하야 而守之耳
러니
今自喪亂已來
로 六十餘年
注+[頭註]自賈后之廢하고 趙王倫之誅로 繼而諸王交兵하고 胡羯乘之而起하야 天下大亂이 至是六十餘年이라에 河, 洛丘墟
하고 函夏
注+[通鑑要解]函은 謂函谷關이니 關之東爲中夏也라 故曰函夏也라 又函은 容也요 夏는 大也니 言中原之地 所函容者大也라蕭條
하야 士民
이 播流江表
하야 已經數世
라
存者는 老子長孫하고 亡者는 丘隴成하니 雖北風之思注+[釋義]詩北風篇曰 北風其喈하니 雨雪其霏로다 惠而好我로 携手同歸라하니라[頭註]胡馬는 每北風則翹首北望이라가 感其素心이나 目前之憂實爲交切이라
植根江外
注+[頭註]中原以江南爲江外라 數十年矣
어늘 一朝
에 頓欲拔之
하야 驅踧於空荒之地
注+[頭註]頓은 遽也라 踧은 音祝이니 至也요 又行謹敬也라하니 提挈萬里
에 踰險浮深
하야 離墳墓, 棄生業
이면 田宅
을 不可復售
注+[頭註]售는 賣物去手라요 舟車
를 無從而得
이라
捨安樂之國하고 適習亂之鄕은 國家之所宜深慮也니이다
王述曰 溫이 欲以虛聲威朝廷耳요 非實事也니 但從之면 自無所至리이다 事果不行하다
溫
이 又議移洛陽鍾虡
注+[頭註]虡는 音巨니 鍾鼓之跗에 以猛獸爲飾이라 又作鐻하니 樂器所懸이니 橫曰筍이요 植曰虡라어늘 述曰
永嘉不競
注+[釋義]競은 疆也라 懷帝永嘉五年에 爲劉聰所獲이라 故云永嘉不競也라니라하야 暫都江左
하니 方當蕩平區宇
하고 旋軫舊京
이요
若其不爾면 宜改遷園陵이니 不應先事鍾虡니라 溫이 乃止하다
융화隆和 원년元年(임술 362) - 진秦나라 감로甘露 4년이고, 연燕나라 건희建熙 3년이다. -
정월에
환온桓溫이
상소上疏하여
낙양洛陽으로 천도할 것을 청하고,
영가永嘉의 난리
注+[頭註]영가永嘉의 난亂은 진晉 회제懷帝가 한漢나라(前趙)의 유총劉聰에게 사로잡힌 일을 가리킨다. 로부터
강외江外(江南)로 옮겨 온
注+[通鑑要解]파류播流는 피난하여 이곳저곳으로 떠돌아다니는 것이요, 강표江表는 중원中原에서 양자강揚子江 남쪽 지역을 강표江表라 하였다. 자들을 일체 북쪽으로 옮겨서
하남河南을 충실히 할 것을 청하였는데, 조정에서
환온桓溫을 두려워하여 감히
이견異見을 말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북쪽 지방이 황량하여 민심이 의심하고 두려워하니 비록 모두들 옮기는 것이 불가함을 알았으나 감히 먼저 간하지 못하였다.
산기상시散騎常侍 손작孫綽이 상소하기를 “옛날
중종中宗(元帝)
注+[通鑑要解]중종中宗은 원제元帝의 묘호廟號이다.이 즉위하자
성신誠信과
화순和順함
注+[通鑑要解]《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에 이르기를 “하늘이 돕는 것은 순順함이요(하늘은 이치를 순히 따르는 자를 도와주고), 사람이 돕는 것은 성신誠信이다.(사람은 성실한 자를 도와준다)” 하였다. 이
천의天意와
민심民心에 합하였을 뿐만 아니라 실로
만리萬里의
장강長江에 의지해서 경계로 삼아 지켰습니다.
이제 국가에 난리가 있은 이래로 60여 년인데,
注+[頭註]今自喪亂已來 육십여년六十餘年:가후賈后가 폐출되고 조왕趙王 사마륜司馬倫이 죽임을 당함으로부터 계속하여 제왕諸王이 서로 교전交戰하고 호胡와 갈羯이 이 틈을 타고 일어나 천하가 크게 어지러웠는데, 이때에 이르러 60여 년이 되었다. 황하黃河와
낙양洛陽 일대가 빈 터가 되고
함하函夏(中原 지역)
注+[通鑑要解]함函은 함곡관函谷關을 이르니, 함곡관의 동쪽이 중하中夏이므로 함하函夏라고 이른 것이다. 또 함函은 용납하는 것이고 하夏는 큼이니, 중원中原 지역은 포용하는 것이 큼을 말한 것이다. 가 쓸쓸하여 관리와 백성들이
강외江外로 옮겨 온 지 이미 몇 대가 지났습니다.
그리하여 생존한 자는 자식이 이미 늙고 손자가 장성했으며 죽은 자는 무덤이 행렬을 이루고 있으니, 비록
북방北方에 대한 그리움
注+[釋義]《시경詩經》 〈북풍편北風篇〉에 이르기를 “북풍北風이 차갑게 부니 함박눈이 펄펄 내리도다. 사랑하여 나를 좋아하는 이와 손을 잡고 함께 돌아가리라.” 하였다.[頭註]胡馬는 매양 북풍北風이 불면 머리를 들고 북쪽을 바라본다. 이 평소 그들의 마음을 흔들리게 하지만
목전目前의 우환이 실로 더욱 절박합니다.
강외江外注+[頭註]강외江外는 중원中原에서 양자강揚子江 남쪽 지역을 강외江外라고 한다. 에 뿌리를 내린 지가 수십 년인데 하루아침에 갑자기 뽑아다가 텅 비고 황량한 땅에 내몰고자 하니,
注+[頭註]頓欲拔之 구축어공황지지驅踧於空荒之地:돈頓은 갑자기이다. 축踧은 음音이 축이니 이르는 것이요, 또 행실을 삼가고 공경하는 것이다. 가솔들을 이끌고 만 리를 감에 험한 산을 넘고 깊은 물을 건너서
선영先塋을 떠나고
생업生業을 버리게 되면
전지田地와 집을 다시 살
注+[頭註]수售는 물건을 팔아서 수중手中을 떠난 것이다. 수가 없고 배와 수레를 얻을 길이 없습니다.
안락한 나라를 버리고 오랫동안 전란을 겪었던 고향으로 가는 것은 국가가 깊이 염려해야 할 바입니다.” 하였다.
왕술王述이 말하기를 “환온桓溫이 큰소리쳐서 조정을 위협하고자 한 것일 뿐이지 실제의 일이 아니니, 다만 그대로 따르면 저절로 이르는 바가 없을 것입니다.” 하였는데, 일이 과연 행해지지 않았다.
환온桓溫이 또
낙양洛陽의 종과 종틀
注+[頭註]거虡는 음音이 거이니 종과 북의 받침에 맹수猛獸를 붙여서 장식한 것이다. 또 거鐻로도 쓰니 악기樂器를 매다는 것이다. 가로로 된 것을 순筍이라 하고 세로로 된 것을 거虡라 한다. 을 옮겨 올 것을 의논하자,
왕술王述이 말하기를
“
영가연간永嘉年間에 강성하지 못하여
注+[釋義]경競은 강함이다. 회제懷帝 영가永嘉 5년(311)에 유총劉聰에게 사로잡혔으므로 ‘영가永嘉 연간年間에 강성하지 못했다’고 말한 것이다. 잠시
강좌江左(江南)에 도읍하고 있으니, 바야흐로
구우區宇(온 천하)를 평정하고 곧바로 옛 서울로 돌아가야 할 것이요,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선제先帝의 능묘陵墓를 옮겨 와야 할 것이니, 먼저 종과 종틀을 옮겨 오는 것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하니, 환온桓溫이 이에 중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