六月에 秦王堅이 復遣王猛하야 督鎭南將軍楊安等하야 將步騎六萬하고 以伐燕하다
八月에 燕主暐 命太傅上庸王評하야 將中外精兵三十萬하고 以拒秦하다
猛이 克壺關하니 所過郡縣이 皆望風降附라 燕人이 大震이러라
黃門侍郞封孚 問司徒長史申胤曰 事將何如오 胤歎曰 鄴必亡矣니 吾屬이 今玆將爲秦虜로다
然
이나 越得歲而吳伐之
하야 卒受其禍
注+[釋義]左傳昭三十二年에 吳伐越한대 史墨曰 不及四十年하야 越其有吳乎인저 越得歲而吳伐之하니 必受其凶이라하니라 杜預註曰 此年에 歲在星紀하니 星紀는 吳, 越之分也라 歲星所在에 其國有福이어늘 吳先用兵故로 反受其殃이라하더니 哀二十二年에 越果滅吳하니라 索隱曰 天官占云 歲星은 一曰應星이요 一曰經星이요 一曰紀星이라 歲星은 東方木之精이니 蒼帝之象也라 所在之國은 不可伐이요 可以伐人이라하니라하니
今福德
이 在燕
注+[釋義]福德은 一曰德星이니 出於有道之國이라 索隱曰 德星은 卽歲星이니 歲星所在에 其國有福이니라하니 秦雖得志
나 而燕之復建
이 不過一紀耳
라하더라
九月
에 秦王猛
이 進兵潞川
하니 太傅評
이 以猛縣(懸)軍
注+[通鑑要解]縣은 與懸同이니 孤軍遠征하야 其勢懸絶하야 不能相及故로 懸軍也라深入
이라하야 欲以持久制之
어늘 猛
이 陳於渭源而誓之
하니 衆皆踊躍
하야 破釜棄糧
하고 大呼競進
이라
燕兵이 大敗하야 俘斬五萬餘人하고 乘勝追擊하니 所殺及降者 又十萬餘人이라
評이 單騎走還鄴하니 秦兵이 長驅而東하야 丁卯에 圍鄴하다
戊寅에 燕散騎侍郞餘蔚이 夜開鄴北門하고 納秦兵하니 燕主暐 與上庸王評等으로 奔龍城이어늘
秦王堅이 使遊擊將軍郭慶으로 追及於高陽하야 執以詣秦王堅하다
堅
이 哀而釋之
하고 令還宮
하니 帥文武出降
하고 諸州牧守及六夷
注+[頭註]胡, 羯, 鮮卑, 氐, 羌, 巴蠻也니 或曰 烏桓이요 非巴蠻也라渠帥 盡降於秦
하다
○ 十二月에 秦王堅이 遷慕容暐及王公百官과 幷鮮卑四萬餘戶于長安한대
燕故太史黃泓
이 歎曰 燕必中興
이니 其在吳王
注+[通鑑要解]吳王은 慕容垂라乎
인저
汲郡趙秋曰 天道在燕이어늘 而秦滅之하니 不及十五年하야 必復爲燕有하리라
태화太和 5년(경오 370) - 진秦나라 건원建元 6년이다.
대국大國이 하나이고 소국小國이 둘이니, 참국僭國이 모두 셋이다. -
정월에 연燕나라 형주자사荊州刺史 무위왕武威王 모용축慕容筑이 낙양洛陽을 가지고 진秦나라에 항복하였다.
6월에 진왕秦王 부견苻堅이 다시 왕맹王猛을 보내어 진남장군鎭南將軍 양안楊安 등을 독려해서 보병과 기병 6만 명을 거느리고 연燕나라를 치게 하였다.
8월에 연주燕主 모용위慕容暐가 태부太傅 상용왕上庸王 모용평慕容評에게 명하여 중외中外의 정예병 30만 명을 거느리고 진秦나라를 맞아 싸우게 하였다.
왕맹王猛이 호관壺關을 함락시키니, 지나는 곳의 군현郡縣들이 모두 기세만 보고도 항복하여 붙었으므로 연燕나라 사람들이 크게 동요하였다.
황문시랑黃門侍郞 봉부封孚가 사도장사司徒長史 신윤申胤에게 묻기를 “일이 장차 어떻게 되겠는가?” 하니, 신윤申胤이 탄식하며 말하기를 “업도鄴都가 반드시 망할 것이니, 우리들은 이제 진秦나라의 포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월越나라가
세성歲星을 얻었는데
오吳나라가 정벌하여 끝내 그
화禍를 받았다.
注+[釋義]《춘추좌전春秋左傳》 소공昭公 32년조年條에 오吳나라가 월越나라를 정벌하자, 사묵史墨이 말하기를 “40년이 못 되어 월越나라가 오吳나라를 소유할 것이다. 월越나라가 세성歲星을 얻었는데 오吳나라가 정벌하니, 반드시 화禍를 받을 것이다.” 하였다. 두예杜預의 주註에 이르기를 “이해에 세성歲星이 성기星紀에 있으니, 성기星紀는 오吳‧월越의 분야이다. 세성歲星이 있는 곳에는 그 나라에 복福이 있는데, 오吳나라가 먼저 군대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도리어 그 앙화殃禍를 받은 것이다.” 하였는데, 애공哀公 22년조年條에 월越나라가 과연 오吳나라를 멸망시켰다. 《사기색은史記索隱》에 말하였다. “《천관점天官占》에 이르기를 ‘세성歲星은 일명 응성應星이요, 일명 경성經星이요, 일명 기성紀星이다. 세성歲星은 동방東方 목木의 정기精氣이니, 창제蒼帝의 상象이다. 이 별이 있는 나라는 정벌할 수 없고, 이 나라가 다른 나라를 정벌할 수는 있다.’ 하였다.”
지금
복덕성福德星이
연燕나라에 있으니,
注+[釋義]복덕성福德星은 일명 덕성德星이니, 도道가 있는 나라에 출현한다. 《사기색은史記索隱》에 이르기를 “복덕성福德星은 곧 세성歲星이니, 세성歲星이 있는 곳에는 그 나라에 복福이 있다.” 하였다.진秦나라가 비록 뜻을 얻더라도
연燕나라의
중건重建은 1
기紀(12년)를 넘기지 못할 것이다.” 하였다.
9월에
진秦나라
왕맹王猛이
노천潞川으로 진군하자,
태부太傅 모용평慕容評은
왕맹王猛이
현군懸軍(외로운 군대)
注+[通鑑要解]현縣은 현懸과 같으니, 고립된 군대가 멀리 싸우러 가서 그 형세가 현격하여 서로 미칠 수가 없으므로 현군懸軍이라 한 것이다. 을 이끌고 적지에 깊이 들어왔다 하여 지구전으로 제압하고자 하였는데,
왕맹王猛이
위원渭源에서 군대를 진열하고 맹세하니, 군사들이 모두 기뻐서 날뛰며 결사의 각오로 가마솥을 부수고 양식을 버리고서 크게 고함치며 함께 진격했다.
연燕나라 군대를 대패시켜 5만여 명을 포로로 사로잡고 목을 베었으며 승세를 타고 추격하니, 죽인 자와 항복받은 자가 또 10만여 명이었다.
모용평慕容評이 단기單騎로 달아나 업도鄴都로 돌아오니, 진秦나라 군대가 승승장구하여 동쪽으로 와서 정묘일(10월 26일)에 업도鄴都를 포위하였다.
11월에 진왕秦王 부견苻堅이 스스로 정예병 10만 명을 거느리고 업성鄴城으로 달려갔다.
무인일(11월 7일)에 연燕나라 산기시랑散騎侍郞 여울餘蔚이 밤중에 업성鄴城의 북문北門을 열고 진秦나라 병사를 받아들이니, 연주燕主 모용위慕容暐가 상용왕上庸王 모용평慕容評 등과 함께 용성龍城으로 달아났다.
진왕秦王 부견苻堅이 유격장군遊擊將軍 곽경郭慶으로 하여금 추격하게 하여 곽경郭慶이 고양高陽에서 이들을 사로잡아 진왕秦王 부견苻堅에게 보냈다.
부견苻堅이 가엾게 여겨 이들을 놓아주고 궁으로 돌아가게 하니
문무관文武官을 거느리고 나와서 항복하였고, 여러
주州의
목수牧守와 여섯 오랑캐족
注+[頭註]육이六夷는 호胡‧갈羯‧선비鮮卑‧저氐‧강羌‧파만巴蠻이니, 혹자가 이르기를 “오환烏桓이고 파만巴蠻이 아니다.”라고 한다. 의
거수渠帥(추장)들이 모두
진秦나라에 항복하였다.
○ 12월에 진왕秦王 부견苻堅이 모용위慕容暐와 연燕나라의 왕공王公과 백관百官과 선비족鮮卑族 4만여 가호를 장안長安으로 옮겼다.
연燕나라 옛
태사太史인
황홍黃泓이 탄식하기를 “
연燕나라가 반드시 중흥할 것이니,
오왕吳王(慕容垂)
注+[通鑑要解]오왕吳王은 모용수慕容垂이다. 에게 있을 것이다.
내가 늙어서 미처 보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다.” 하였다.
급군汲郡 사람 조추趙秋가 말하기를 “천도天道가 연燕나라에 있는데 진秦나라가 멸망시켰으니, 15년이 못 되어 진秦나라는 반드시 다시 연燕나라의 소유가 될 것이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