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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5)

통감절요(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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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丙子]太元元年이라 〈秦建元十二年이라
○ 是歲 涼, 代皆亡하니 僭國一이라
五月 涼公張天錫注+[頭註]玄靚叔父也 하고 立玄靚爲涼王이러니 天錫 弑其君玄靚而自立이라 玄靚 曜靈弟也 荒於酒色注+[通鑑要解] 無厭也하야 不親庶務하니 人情 憤怨이라
秦王堅 遣苟萇, 姚萇하야 將兵滅之하니 涼州郡縣 悉降하다
○ 十月 秦王堅 遣唐公洛注+[頭註]綱目作行唐公洛이니 行唐 縣名이라하야 將兵十萬하야 擊代한대 代王什翼犍 奔陰山之北하니
部衆 逃潰하야 國中 大亂이라
其孫珪注+[頭註] 拓跋珪 是爲元魏 道武尙幼러니 珪母賀氏注+[頭註]東部大人賀野干之女 以珪走依賀訥注+[頭註]野干子이어늘
分代民하야 爲二部하고 使劉庫仁注+[通鑑要解]衛辰之族이니 什翼犍之甥也, 劉衛辰으로 統之하다


태원太元 원년元年(병자 376) - 나라 건원建元 12년이다.
○ 이해에 가 모두 망하니, 참국僭國이 하나이다. -
5월에 양공涼公 장천석張天錫注+[頭註]장천석張天錫장현정張玄靚숙부叔父이다. 양주涼州 사람이 군주 장조張祚를 시해하고 장현정張玄靚을 세워 양왕涼王으로 삼았는데, 장천석張天錫이 그 군주 장현정張玄靚을 시해하고 자신이 즉위하였다. 장현정張玄靚장요령張曜靈의 아우이다. 주색酒色에 빠져注+[通鑑要解]은 만족함이 없는 것이다. 여러 가지 사무를 직접 처리하지 않으니, 세상 사람들이 분해 하고 원망하였다.
진왕秦王 부견苻堅구장苟萇요장姚萇을 보내어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멸하게 하니, 양주涼州의 군현이 모두 항복하였다.
○ 10월에 진왕秦王 부견苻堅당공唐公 부락苻洛注+[頭註]당공락唐公洛’은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에 ‘행당공락行唐公洛’으로 되어 있으니, 행당行唐 이름이다. 을 보내 10만의 군대를 거느리고 를 공격하게 하니, 대왕代王 탁발십익건拓跋什翼犍음산陰山 북쪽으로 달아났다.
이에 부중部衆이 도망하고 궤멸되어 나라 안이 크게 혼란하였다.
그의 손자 탁발규拓跋珪注+[頭註]탁발규拓跋珪이니, 이가 바로 원위元魏(北魏)의 도무제道武帝이다. 는 아직 어렸는데, 탁발규拓跋珪의 어머니 하씨賀氏注+[頭註]하씨賀氏동부대인東部大人 하야간賀野干의 딸이다. 탁발규拓跋珪를 데리고 도망하여 하눌賀訥注+[頭註]하눌賀訥하야간賀野干의 아들이다. 에게 의지하였다.
부견苻堅나라의 백성을 나누어 두 로 만들고 유고인劉庫仁注+[通鑑要解]유고인劉庫仁흉노匈奴유위진劉衛辰의 일족이니, 탁발십익건拓跋什翼犍의 조카이다. 유위진劉衛辰으로 하여금 통솔하게 하였다.


역주
역주1 涼州弑其君祚 : 張曜靈을 폐위하고 張祚를 세운 것은 長史 趙長 등 여러 사람이었다. 張祚가 음탕하고 포학하여 나라 사람들이 원망하고 불안해하자, 그 무리들이 또다시 張祚를 죽였다. 張祚가 民心을 잃음이 이와 같은데도 마침내 시해하였다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涼州 사람들이 無道하여 張曜靈이 애당초 큰 죄악이 없었는데 가볍게 그를 폐위하고 張祚를 세웠기 때문이다. 張祚가 죽자, 도리어 군주를 시해한 죄를 온 나라 사람에게 가한 것이니, 이는 張祚가 군주가 될 만한 인물이 아닌데 군주로 삼은 것이 涼州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그를 군주로 삼았다가 또다시 그를 죽였으니, 이는 온 涼州 사람이 모두 군주를 시해한 역적인 것이다. 이러한 종류는 모두 亂臣賊子의 무리를 토벌하고 簒弑하는 버릇을 막아서 拔本塞源하는 의론으로 萬世의 경계를 삼은 것이다. 《御批資治通鑑綱目 發明》

통감절요(5)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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