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己酉]五年이라 〈秦弘始十一이요 魏太宗拓跋嗣永興元年이라
劉裕抗表
注+[頭註]抗은 擧也라伐南燕
할새 帥舟師
하고 自淮入泗
하니 或謂裕曰
燕人
이 若塞大
注+[釋義]山名이니 其地險固하니 在琅邪郡陽都縣이라之險
하고 或
堅壁淸野면 大軍深入
하야 不唯無功
이요 將不能自歸
하리니 奈何
오
鮮卑貪
하야 不知遠計
하야 進利虜獲
하고 退惜禾苗
라
謂我孤軍遠入
하야 不能持久
라하야 不過進據臨
注+[釋義]東莞郡邑이니 屬靑州라 今益都府臨朐縣이라하고 退守廣固
요 必不能守險淸野
하리니 敢爲諸君保之
하노라
裕過大峴호되 燕兵不出이라 裕擧手指天하야 喜形于色이어늘
左右曰 公이 未見敵而先喜는 何也잇고 裕曰 兵已過險하야 士有必死之志하고 餘粮棲畝하야 人無匱乏之憂하니 虜已入吾掌中矣로다
裕乘勝逐
注+[釋義]은 乃陰方이니 軍敗曰라하야 至廣固
하야 克其大城
하니 超收衆入保小城
이어늘
裕築長圍守之하니 北方之民이 執兵負粮하고 歸裕者日以千數러라
○ 魏淸河王紹
注+[頭註]珪之庶子라 弑魏主珪
어늘
齊王嗣
注+[原註]珪之長子也니 是爲太宗明元皇帝라聞變而出
하니 大臣
이 翕然奉迎
이라
의희義熙 5년(기유 409) - 진秦나라 홍시弘始 11년이고, 위魏나라 태종太宗 탁발사拓跋嗣의 영흥永興 원년元年이다.
○ 연왕燕王 풍발馮跋의 태평太平 원년元年이고, 서진西秦의 경시更始 원년元年이다.
○ 예전에 있던 대국大國이 둘이고, 남량南涼‧북량北涼‧남연南燕‧서량西涼‧연燕‧하夏 등 소국小國이 여섯이고, 새로운 소국小國이 하나이니, 참국僭國이 모두 아홉이다. -
유유劉裕가
표문表文을 올리고
注+[頭註]항抗은 들어 올리는 것이다. 남연南燕을 정벌할 때에
주사舟師(水軍)를 거느리고
회수淮水로부터
사수泗水에 들어가니, 혹자가
유유劉裕에게 이르기를
“
연燕나라 사람이 만약
대현산大峴山注+[釋義]대현大峴은 산山의 이름이니 지역이 험고하다. 낭야군琅琊郡 양도현陽都縣에 있다. 의 험한 요새를 막고 혹 성벽을 굳게 지키고 〈적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기 위해〉 들의 곡식을 깨끗이 없앤다면 큰 군대를 이끌고 깊이 쳐들어가서 공을 세우지 못할 뿐 아니라 장차 스스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니, 어찌합니까?” 하니,
유유劉裕가 말하기를 “내가 이미 심사숙고해 보았다.
선비鮮卑(慕容超)는 탐욕스러워서 장구한 계책을 알지 못하여, 전진하면 노획하는 것을 이롭게 여기고 후퇴하면 벼싹을 아까워한다.
내가 고립된 군대를 이끌고 깊숙이 쳐들어 와서 지구전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저들은 전진하면
임구臨朐注+[釋義]임구臨朐는 동완군東莞郡의 읍邑이니, 청주靑州에 속하였다. 지금의 익도부益都府 임구현臨朐縣이다. 를 점거하고 후퇴하면
광고廣固를 지킴에 지나지 않을 것이요, 반드시 험한 곳을 지키고 들의 곡식을 말끔히 없애지 못할 것이니, 감히
제군諸君에게 보장하겠다.” 하였다.
유유劉裕가 대현산大峴山을 지났는데도 연燕나라 군대가 나오지 않자, 유유劉裕가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키며 기뻐하는 기색이 얼굴에 완연하였다.
좌우가 말하기를 “공公이 적을 보기도 전에 먼저 기뻐함은 어째서입니까?” 하니, 유유劉裕가 대답하기를 “군대가 이미 험한 곳을 빠져나와서 군사들이 필사의 각오가 있을 것이요, 그들이 남겨 놓은 양식이 밭에 있어서 우리들이 궁핍할 우려가 없으니, 적은 이미 내 수중에 들어왔다.” 하였다.
전진하여 연燕나라 군대와 임구臨朐에서 싸웠는데, 연燕나라 군대가 크게 패하였다.
단휘段暉 등 대장大將 십여 명의 목을 베니, 모용초慕容超가 도망하여 광고廣固로 돌아갔다.
유유劉裕가 승세를 타고 도망하는 자들
注+[釋義]북北은 바로 음방陰方이니, 군대가 패한 것을 북北라 한다. 을 추격하여
광고廣固에 이르러 큰 성(外城)을 함락하니,
모용초慕容超가 군사들을 거두어 작은 성(內城)에 들어가 지켰다.
유유劉裕가 긴 포위망을 구축하고 지키니, 북방의 백성들이 병기를 쥐고 양식을 짊어지고 유유劉裕에게 귀의하는 자가 하루에 천 명으로 헤아릴 정도였다.
○
위魏나라
청하왕淸河王 탁발소拓跋紹注+[頭註]청하왕淸河王 탁발소拓跋紹는 탁발규拓跋珪의 서자庶子이다. 가
위주魏主 탁발규拓跋珪를 시해하였다.
제왕齊王 탁발사拓跋嗣注+[原註]탁발사拓跋嗣는 탁발규拓跋珪의 장자長子이니, 이가 바로 태종太宗 명원황제明元皇帝이다. 가 변고를 듣고 출동하니,
대신大臣들이
흡연翕然히 받들어 맞이하였다.
탁발사拓跋嗣가 탁발소拓跋紹를 죽이고 황제에 즉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