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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6)

통감절요(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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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6)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庚申]二年이라 〈宋高祖劉裕永初元年이요 魏太宗明元帝拓跋嗣泰常五年이요 西秦文昭王乞伏熾磐建弘元年이요 夏世祖赫連勃勃眞興二年이요 燕太祖馮跋太平十(一)[二]年이요 北涼武宣王沮渠蒙遜玄始(八)[九]年이요 西涼公李恂永建元年이라
○ 是歲 晉亡宋代하니 凡七國이라
宋王 欲受禪而難於發言이러니
六月 宋王 至建康이어늘 傅亮 具詔草하야 使帝書之한대
欣然操筆하고 謂左右曰 桓玄之時 晉氏已無天下러니 重爲劉公所延하야
今日之事 本所甘心이라하고 遂書赤紙爲詔하고 하다
爲壇於南郊하야 卽位하고 立王太子義符하야 爲皇太子하다


원희元熙 2년(경신 420) - 나라 고조高祖 유유劉裕영초永初 원년元年이고, 나라 태종太宗 명원제明元帝 탁발사拓跋嗣태상泰常 5년이고, 서진西秦 문소왕文昭王 걸복치반乞伏熾磐건홍建弘 원년元年이고, 나라 세조世祖 혁련발발赫連勃勃진흥眞興 2년이고, 나라 태조太祖 풍발馮跋태평太平 12년이고, 북량北涼 무선왕武宣王 저거몽손沮渠蒙遜현시玄始 9년이고, 서량공西涼公 이순李恂영건永建 원년元年이다.
○ 이해에 나라가 망하고 나라가 대신하니, 모두 일곱 나라이다. -
송왕宋王(劉裕)이 선양받고자 하였으나 말을 꺼내는 것을 어렵게 여겼다.
6월에 송왕宋王건강建康에 이르자, 부량傅亮이 양위하는 조서詔書의 초고를 갖추어서 황제로 하여금 그대로 쓰게 하였는데,
황제가 흔쾌히 붓을 잡고서 좌우의 신하들에게 이르기를 “환현桓玄의 때에 나라가 이미 천하를 잃었는데, 유공劉公에 의해 거듭 연장된 지가 거의 20년이 되었다.
오늘의 일은 내 본래 마음에 달갑게 여기는 바이다.” 하고는 마침내 붉은 종이에 써서 조서詔書를 만들고 물러나 낭야왕琅邪王의 저택으로 돌아갔다.
송왕宋王건강建康 남쪽 교외에서 을 만들어 황제에 즉위하고 왕태자王太子 유의부劉義符를 세워 황태자皇太子로 삼았다.


역주
역주1 將二十載 : 晉나라 安帝 元興 元年(402)에 桓玄이 皇位를 찬탈한 때로부터 恭帝 元熙 2년(420)까지 거의 20년이다.
역주2 遜于琅邪第 : 晉나라 元帝 司馬睿가 즉위하기 전에 琅琊王이었기 때문에 그 후손인 恭帝가 退位한 뒤에 琅琊王의 저택으로 돌아간 것이다.

통감절요(6)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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