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癸亥] 〈宋主義符景平元年이요 魏泰常八年이라〉
魏主拔洛陽
注+[頭註]魏主는 拓跋嗣라 拔은 克城邑이니 若拔樹木에 幷而取之其根本也라하다
○ 魏(太祖)[太宗]
注+[頭註]當作太宗이라殂
하니 世祖卽位
注+[原註]太宗長子也니 是爲世祖太武皇帝라[頭註]世祖는 燾라하다
少帝體易染之資하고 稟可下之質하야 外物이 錯亂其心하고 所欲을 必從其志하야 遊狎無度하고 施爲乖戾하니 徐羨之等이 廢而弑之는 自取之也니라
계해(423) - 송주宋主 유의부劉義符의 경평景平 원년元年이고, 위魏나라 태상泰常 8년이다. -
위주魏主가
낙양洛陽을 함락하였다.
注+[頭註]위주魏主는 탁발사拓跋嗣이다. 발拔은 성읍城邑을 함락시키는 것이니, 수목樹木을 뽑을 적에 그 뿌리까지 아울러 취하는 것과 같다.
○
위魏나라
태종太宗注+[頭註]태조太祖는 마땅히 태종太宗이 되어야 한다. 이 죽으니,
세조世祖注+[原註]太宗의 장자長子이니, 이가 바로 세조世祖 태무황제太武皇帝이다.[頭註]世祖는 탁발도拓跋燾이다. 가 즉위하였다.
“소제少帝(營陽王)는 물들기 쉬운 자질을 타고났고 하등한 자질을 부여받아 외물外物이 그 마음을 어지럽히고 이목구비耳目口鼻의 욕망을 반드시 뜻대로 따라서, 놀고 친압함이 한도가 없고 시행하는 것이 도리에 어긋났으니, 서선지徐羨之 등이 폐위하고 시해한 것은 소제少帝가 자초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