宋張永等
이 棄城夜遁注+[通鑑要解]會에 天大雪하니 士卒凍死太半이요 手足斷者 十七八이라이어늘 尉元
은 邀其前
하고 薛安都
는 乘其後
하야 大破永等於呂梁
注+[頭註]山名이요 又縣名이라之東
하니 死者以萬數
요 枕尸六十餘里
라
永與沈攸之
僅以身免하니 由是
로 失淮北四州
注+[頭註]靑, 冀, 徐, 兗이라及豫州淮西
注+[頭註]汝南, 新蔡, 南頓, 潁川等郡이라之地
하니라
○ 宋主遣蕭道成
注+[頭註]建康令也니 字는 紹伯이라 其先이 居東海蘭陵縣하니 是爲齊太祖라하야 將千人
하야 鎭淮陰
이어늘 道成
이 收養豪傑하니 賓客이 始盛이러라
정미(467) - 송宋나라 태시泰始 3년이고, 위魏나라 황흥皇興 원년元年이다. -
송宋나라
장영張永 등이
성城을 버리고 밤에 도망하자,
注+[通鑑要解]마침 하늘에서 큰 눈이 내리니, 사졸士卒들이 얼어 죽은 자가 반이 넘었고, 손과 발이 얼어서 끊어진 자가 열에 일곱 여덟이었다. 위원尉元은 그 앞을 가로막고
설안도薛安都는 그 뒤를 추격하여
장영張永 등을
여량呂梁注+[頭註]여량呂梁은 산山 이름이요, 또 현縣의 이름이다. 의 동쪽에서 크게 격파하니, 죽은 자가 만 명으로 헤아려지고 60여 리에 시신이 널렸다.
장영張永 등이
심유지沈攸之와 함께 겨우 몸만 빠져나와 죽음을 면하니, 이로 말미암아
회북淮北의 네
주州注+[頭註]네 주州는 청주靑州‧기주冀州‧서주徐州‧연주兗州이다. 와
예주豫州의
회서淮西注+[頭註]회서淮西는 여남군汝南郡‧신채군新蔡郡‧남돈군南頓郡‧영천군潁川郡 등이다. 지역을 잃었다.
○
송주宋主가
소도성蕭道成注+[頭註]소도성蕭道成은 건강령建康令이니, 자字가 소백紹伯이다. 그 선조가 동해東海 난릉현蘭陵縣에 살았으니, 이가 바로 제齊나라 태조太祖이다. 을 보내어 천 명을 거느리고
회음淮陰에 진주하게 하자,
소도성蕭道成이 호걸들을 거두어 기르니
문하門下의
빈객賓客들이 비로소 많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