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己卯] 〈齊主寶卷永元元年이요 魏太和二十三年이라〉
魏高祖殂
하니 太子恪
이 卽位
注+[原註]是爲世祖宣武皇帝라하다
○ 齊主在東宮에 不好學하고 唯嬉戲無度러니 及卽位에 不與朝士相接하고 專親信宦官及左右하다
是時
에 始安王遙光
注+[頭註]鸞兄鳳之子也라等
이 直內省
注+[頭註]在禁中이라하야 分日帖勅
注+[頭註]於勅後에 聯紙書行이니 所謂也라이어늘 雍州刺史蕭衍
이 聞之
하고 謂張弘策
注+[頭註]衍之從舅니 錄事參軍也라曰
이온 況
注+[頭註]始安王遙光, 尙書令徐孝嗣, 右僕射江祏, 左將軍蕭坦之, 侍中江祀, 衛尉劉暄이라同朝
하니 勢必相圖하야 亂將作矣리니
避禍圖福은 無如此州라하고 乃密與弘策으로 修武備하고 聚驍勇하야 以萬數러라
東昏旣立에 嬉戲無度하야 所寵左右嬖臣을 至呼爲阿父, 阿兄而不恥하고 親信宦官하야 不與朝士相接하고 誅鋤大臣을 發於倉卒하야 人人이 不能自保矣하니 未幾遇弑 豈偶然哉아
기묘(499) - 제주齊主 소보권蕭寶卷의 영원永元 원년元年이고, 위魏나라 태화太和 23년이다. -
위魏나라
고조高祖가 죽으니,
태자太子 원각元恪이 즉위하였다.
注+[原註]태자太子 원각元恪이 즉위卽位하니, 이가 바로 세조世祖 선무황제宣武皇帝이다.
○ 제주齊主가 동궁東宮에 있을 적에 학문을 좋아하지 않고 오직 놀고 희롱하여 한도가 없었는데, 즉위하게 되자 조정의 선비들과 접견하지 않고, 오로지 환관과 좌우의 근신近臣들만 친애하고 믿었다.
이때에
시안왕始安王 소요광蕭遙光注+[頭註]소요광蕭遙光은 소란蕭鸞의 형인 소봉蕭鳳의 아들이다. 등이 번갈아
내성內省注+[頭註]내성內省은 궁궐 안에 있다. 에서 숙직하고 날짜를 나누어
칙서勅書 뒷면에 종이를 붙여 의견을 쓰자,
注+[頭註]칙서勅書 뒷면에 종이를 붙여서 쓴 것이니, 이른바 화칙畫勅이라는 것이다. 옹주자사雍州刺史 소연蕭衍이 이것을 듣고
장홍책張弘策注+[頭註]장홍책張弘策은 소연蕭衍의 종구從舅이니 벼슬이 녹사참군錄事參軍이었다. 에게 이르기를
“한 나라에
삼공三公이 있는 것도 오히려 감당하기 어려운데 여섯
귀인貴人注+[頭註]여섯 귀인貴人은 시안왕始安王 소요광蕭遙光‧상서령尙書令 서효사徐孝嗣‧우복야右僕射 강석江祏‧좌위장군左衛將軍 소탄지蕭坦之‧시중侍中 강사江祀‧위위衛尉 유훤劉暄이다. 이 조정에 함께 있으니, 형편상 반드시 서로 쟁탈하여 장차 난리가 일어날 것이다.
화禍를 피하고 복福을 도모하는 데는 이 옹주雍州 만한 곳이 없다.” 하고, 마침내 은밀히 장홍책張弘策과 함께 무비武備를 닦고 날래고 용맹스러운 자를 모아, 만 명으로 헤아려졌다.
“동혼후東昏侯(蕭寶卷)는 즉위하자 놀고 희롱하는 것이 한도가 없어서 총애하는 좌우의 폐신嬖臣을 심지어 아부阿父‧아형阿兄이라 부르면서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환관宦官들을 가까이하고 신임해서 조정의 선비들을 접견하지 않았으며, 대신大臣을 죽이는 것을 창졸간에 결정하여 사람마다 자기 몸을 보전하지 못하였으니, 얼마 되지 않아 시해당한 것이 어찌 우연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