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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6)

통감절요(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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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庚辰] 〈齊永元二年이요 魏世宗宣武帝恪景明元年이라
正月 齊豫州刺史裴叔業 聞齊主數誅大臣하고 心不自安하야 하야 問蕭衍以自安之計하야 曰 天下大勢 可知
恐無復自存之理하니 不若回面向北注+[頭註] 謂魏也하야 不失作河南公注+[頭註]言若降魏 則不失爵賞也이리라 衍報曰 群小用事하니 豈能及遠이리오
若意外相逼이면 當勒馬步二萬하야 直出橫江注+[頭註]在和州界하니 往來齊渡處하야 以斷其後 則天下之事 一擧可定이라
若欲北向이면 彼必遣人相代注+[頭註]言代守其任이라하고 以河北一州相處하리니 河南公 寧可復得耶注+[通鑑要解]叔業 沈疑未決하야 遣其子芬之하야 入建康爲質하고 亦遣信詣魏豫州刺史薛眞度하야 問以入魏可否之義하니 眞度勸其早降이라 叔業 遂遣使奉表降魏하니 魏遣彭城王勰, 將軍王肅하야 帥騎十萬赴之하다 復以勰爲司徒, 領揚州刺史하야 이러니 叔業 尋卒하다
齊蕭衍 集僚佐하야 謂曰 昏主暴虐하야 惡踰於紂하니 當與卿等으로 共除之하리라
是時 南康王寶融 爲荊州刺史
乃以寶融敎注+[頭註]用寶融之敎令이라 以衍爲使持節都督前鋒諸軍事하고 移檄建康하야 數寶卷罪惡하고
稱奉宣德皇太后注+[頭註]廢帝海陵王昭文之母也 廢居宣德宮故 假以稱之 海陵王 見上甲戌年이라하야 南康王 宜纂承皇祚라하고 廢寶卷하야 爲涪陵王하다


경진(500) - 나라 영원永元 2년이고, 나라 세종世宗 선무제宣武帝 원각元恪경명景明 원년元年이다. -
정월正月나라 예주자사豫州刺史 배숙업裴叔業제주齊主대신大臣들을 자주 주륙한다는 말을 듣고 내심 스스로 불안해하여 사람을 양양襄陽에 보내 소연蕭衍에게 자기 몸을 보전할 계책을 물으며 말하기를 “천하의 대세大勢를 알 만하다.
다시는 스스로 몸을 보존할 방법이 없을 듯하니, 전향하여 나라에 투항해서注+[頭註]북쪽은 나라를 이른다. 하남공河南公이 됨을 잃지 않는 것만 못하다.注+[頭註]만약 나라에 항복하면 작상爵賞을 잃지 않을 것임을 말한다. ” 하니, 소연蕭衍이 대답하기를 “소인의 무리가 용사用事하고 있으니, 어찌 장구長久할 수 있겠는가.
만약 뜻밖에 서로 핍박하면 마땅히 보병과 기병 2만 명을 무장시켜 곧바로 횡강橫江注+[頭註]횡강橫江화주和州 경계에 있으니, 나라를 왕래할 때에 건너는 곳이다. 으로 출동해서 건강建康후원後援을 끊어야 하니, 이렇게 하면 천하의 일을 일거에 평정할 수 있다.
만약 북쪽을 향하여 나라에 투항하고자 한다면 저들이 반드시 다른 사람을 보내어 후임자로 삼고注+[頭註]상대相代는 대신 그 직임을 맡게 함을 말한다. 당신에게는 하북河北의 한 를 가지고 상대할 것이니, 하남공河南公을 어찌 다시 얻을 수 있겠는가.注+[通鑑要解]河南公 영가복득야寧可復得耶:배숙업裴叔業이 의심하고 결정하지 못하여 아들 분지芬之를 보내어 건강建康에 들어가 인질이 되게 하고, 또한 사신을 보내어 나라 예주자사豫州刺史 설진도薛眞度에게 찾아가 나라에 입조하는 것이 의리에 옳은가, 그른가를 묻자, 설진도薛眞度는 일찍 항복할 것을 권하였다. 배숙업裴叔業이 마침내 사자를 보내어 표문表文을 올리고 나라에 항복하니, 나라는 팽성왕彭城王 원협元勰장군將軍 왕숙王肅을 보내어 기병 10만 명을 거느리고서 달려가게 하였다. 〈나라에서 조명詔命을 내려 배숙업裴叔業을 토벌하게 하자〉 다시 원협元勰사도司徒, 영양주자사領揚州刺史로 삼아 수양壽陽에 진주하게 하였는데, 배숙업裴叔業이 얼마 뒤에 죽었다. ” 하였다.
○ 10월에 나라 소연蕭衍요좌僚佐들을 모아 놓고 이르기를 “어두운 군주가 포학해서 악함이 주왕紂王보다 더하니, 경들과 함께 그를 제거하겠다.” 하였다.
이때 남강왕南康王 소보융蕭寶融형주자사荊州刺史로 있었다.
이에 소보융蕭寶融교령敎令으로注+[頭註]소보융蕭寶融교령敎令을 사용한 것이다. 소연蕭衍사지절도독전봉제군사使持節都督前鋒諸軍事로 삼고, 건강建康격문檄文을 돌려서 소보권蕭寶卷의 죄악을 나열하고
선덕황태후宣德皇太后注+[頭註]선덕황태후宣德皇太后폐제廢帝 해릉왕海陵王 소소문蕭昭文의 어머니이다. 폐위되어 선덕궁宣德宮에 거하였기 때문에 이를 빌려서 선덕황태후宣德皇太后라 칭한 것이다. 해릉왕海陵王은 앞의 갑술년조甲戌年條(494)에 보인다. 의 명령을 받들었다고 칭하여 “남강왕南康王황제皇帝대통大統을 이어야 한다.” 하고는 소보권蕭寶卷을 폐하여 부릉왕涪陵王으로 삼았다.


역주
역주1 遣人至襄陽 : 蕭衍은 당시 雍州刺史로서 襄陽을 鎭守하였다.
역주2 鎭壽陽 : 裴叔業은 豫州刺史로 壽陽에 주둔하였는데, 北魏에 항복할 때 壽陽을 가지고 항복하였다.
역주3 十月 : 《資治通鑑》에는 이 이하의 내용이 11월과 12월 기사에 보이며, 蕭寶卷을 폐하여 涪陵王으로 삼은 내용은 辛巳年(501) 3월 기사에 보인다.

통감절요(6)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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