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月
에 魏主殂
하고 太子詡卽皇帝位
注+[原註]宣武(長)[第二]子니 (世)[肅]宗孝明皇帝라하니 胡太后
注+[頭註]宣武帝恪之后而帝詡母라臨朝
하다
于忠
注+[頭註]姓名이니 侍中, 領軍將軍이라이 居門下
하야 하야 遂專朝政
하다
○ 初
에 魏世宗
이 作瑤光寺
라가 未就
러니 是歲
에 胡太后 又作永寧寺
하니 皆極土木之美
하야 爲九層浮圖
호되 掘地築基
하야 下及黃泉
하고 浮圖
注+[頭註]見二十九卷이라高九十丈
에 上刹
注+[頭註]梵言刹은 華言竿이니 卽라復高十丈
이라
每夜靜
에 이 聞十里
하고 僧房千間
에 珠玉錦繡 駭人心目
하니 自佛法入中國
으로 塔廟
注+[頭註]佛弟子 收奉舍利를 號爲塔이라하니 猶華言宗廟也라之盛
이 未之有也
러라
을미(515) - 양梁나라 천감天監 14년이고, 위魏나라 연창延昌 4년이다. -
정월에
위주魏主가 죽고
태자太子 원후元詡가 〈6세의 나이로〉
황제皇帝에 즉위하니,
注+[原註]태자太子 원후元詡는 선무제宣武帝의 둘째 아들이니, 이가 바로 숙종肅宗 효명황제孝明皇帝이다. 호태후胡太后注+[頭註]호태후胡太后는 선무제宣武帝 원각元恪의 후비后妃이고, 황제 원후元詡의 모후母后이다. 가 조정에
임어臨御하여
제制를 칭하였다.
우충于忠注+[頭註]우충于忠은 성명姓名이니, 시중侍中‧영군장군領軍將軍이었다. 이
문하성門下省에
시중侍中으로 있으면서 또
숙위宿衛를 총괄하여 마침내 조정의 정사를 전횡하였다.
○ 처음에
위魏나라
세종世宗이
요광사瑤光寺를 짓다가 완성하지 못했는데, 이해에
호태후胡太后가 또다시
영녕사永寧寺를 지으니, 두 절 모두 건축의 아름다움을 지극히 하여 9층의
부도浮圖(佛塔)를 만들되 땅을 파서 기반을 다져 아래로
황천黃泉에까지 미쳤고,
부도浮圖注+[頭註]부도浮圖는 해설이 29권에 보인다. 의 높이가 90길인데
부도浮圖 위에 다시 10길 높이의
注+[頭註]범어梵語의 찰刹은 중국어로 장대이니, 곧 번주幡柱이다. 이 있었다.
매일 밤 고요할 때에는
부도浮圖 위의
영탁鈴鐸(風磬) 소리가 10리 밖에까지 들렸고,
승방僧房 천 칸에
주옥珠玉과
금수錦繡가 휘황찬란하여 사람의 마음과 눈을 놀라게 하니,
불법佛法이 중국에 들어온 이후로
탑묘塔廟(寺塔)
注+[頭註]불제자佛弟子가 사리舍利를 거두어 봉안한 것을 탑塔이라고 이름하니, 중국어의 종묘宗廟와 같다. 의 성함이 이와 같은 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