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丁酉]〈陳太建九年이요 齊幼主恒承光元年이요 周建德六年이라
壬辰에 周師至鄴城下하야 圍之하고 燒城西門하니 齊人이 出戰이어늘 周師奮擊하야 大破之하다
齊主從百騎東走
어늘 追及
하야 擒之
注+[附註]齊王緯 從百騎東走러니 其日에 幼主禪位于大丞相任成王(階)[湝]하니 尊上皇緯爲無上皇하고 幼主爲(宗)[宋]國天王하다 無上皇이 與皇后로 携幼主하고 走靑州어늘 周將遲綱이 擒之하다 其後에 周人이 誣緯與宣州刺史穆提婆謀反이라하야 延宗等數十人을 無少長히 賜死하다 (階)[湝]는 歡之(二十人)[第十子]라하다
神武
注+[頭註]高歡이라以高世之略
으로 平爾朱之亂
하야 功大勢盛
하야 爲魏武
注+[頭註]脩라所疑
하야 雖有逐君之慙
이나 而能惓惓盡恭
하야 以事靜帝
注+[頭註]善見이라하야 沒身不怠
하니 此其可稱者也
라
文襄
注+[頭註]歡子澄이라은 有俊才而無重德
하야 悖慢無禮
하야 終隕身於奴隸
하고 文宣
注+[頭註]洋이니 澄之弟라은 淫湎
注+[頭註]湎은 沈於酒也라殘暴
가 甚於桀紂
로되 而能信用賢臣
하야 委之以政
하야 威加隣敵
하고 終其天年
하니 蓋亦有以得之矣
라
孝昭
注+[頭註]演이니 洋之弟라는 明達愷悌
하야 實有齊之令主
러니 享國不永
하니 惜哉
라
武成
注+[通鑑要解]湛이니 演之弟라은 驕淫奢縱
하야 齊業始衰
하고 後主
注+[頭註]緯니 演之長子라繼之
에 昏狂尤甚
하야 誅翦忠良
注+[頭註]忠良은 太尉趙郡王叡라하고 信用讒邪
注+[頭註]讒邪는 和士開라하니 十年而亡
이 已爲幸矣
니라
정유(577) - 진陳나라 태건太建 9년이고, 제齊나라 유주幼主 고항高恒의 승광承光 원년元年이고, 주周나라 건덕建德 6년이다.
진陳나라와 주周나라 등 대국大國이 둘이고 후량後梁 등 소국小國이 하나이니, 모두 세 나라이다. -
임진일壬辰日(정월 18일)에 주周나라 군대가 업성鄴城 아래에 이르러 포위하고 업성鄴城의 서문西門을 불태우니 제齊나라 사람들이 나와서 싸웠는데, 주周나라 군대가 맹렬히 공격하여 대파하였다.
제주齊主가 백 명의
기병騎兵을 거느리고 동쪽으로 도망하자 추격하여 사로잡았다.
注+[附註]제왕齊王 고위高緯가 백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동쪽으로 도주하였는데, 그날 유주幼主 고항高恒이 대승상大丞相인 임성왕任成王 고시高湝에게 양위讓位하니, 상황上皇 고위高緯를 높여서 무상황無上皇이라 하고 유주幼主를 송국천왕宋國天王이라 하였다. 무상황無上皇이 황후皇后와 함께 유주幼主를 데리고 청주靑州로 도망하였는데, 주周나라 장수 울지강尉遲綱이 사로잡았다. 그 후에 주周나라 사람이 고위高緯가 선주자사宣州刺史 목제파穆提婆와 함께 반역을 도모했다고 모함하여 고연종高延宗 등 수십 명을 젊은이와 늙은이 할 것 없이 사사賜死하였다. 고시高湝는 고환高歡의 열 번째 아들이다.
“
동위東魏의
신무제神武帝(高歡)
注+[頭註]신무제神武帝는 고환高歡이다. 는 세상에 뛰어난 지략으로써
이주씨爾朱氏의 난리를 평정하여 공이 크고 세력이 성대해지자
북위北魏의
무제武帝(元脩)
注+[頭註]위무제魏武帝는 원수元脩이다. 에게 의심을 받아 군주를 축출한 부끄러운 일이 있었으나
권권惓惓히 공손함을 다하여
정제靜帝(元善見)
注+[頭註]정제靜帝는 원선견元善見이다. 를 섬겨서 종신토록 게을리 하지 않았으니, 이는 칭찬할 만한 것이다.
문양제文襄帝(高澄)
注+[頭註]문양제文襄帝는 고환高歡의 아들 고징高澄이다.는 뛰어난 재주가 있었으나 후중한
덕德이 없어서 패역하고 오만하고 무례하여 끝내 노예의 손에 죽었고,
북제北齊의
문선제文宣帝(高洋)
注+[頭註]문선제文宣帝는 고양高洋이니, 고징高澄의 아우이다.는
주색酒色에 빠지며
注+[頭註]면湎은 술에 빠지는 것이다. 잔악하고 포악함이
걸桀‧
주紂보다 심하였으나 어진 신하를 믿고 등용하여 정사를 맡겨서 이웃하고 있는 적국에게 위엄이 가해지고
천수天壽를 누렸으니, 또한 정치할 줄을 안 것이다.
효소제孝昭帝(高演)
注+[頭註]효소제孝昭帝는 고연高演이니, 고양高洋의 아우이다. 는 밝게 통달하고 화락하여 실로
제齊나라의 훌륭한 군주였는데 나라를 향유한 것이 길지 못하였으니, 애석하다.
무성제武成帝(高湛)
注+[通鑑要解]무성제武成帝는 고담高湛이니, 고연高演의 아우이다. 는 교만하고 음탕하고 사치하고 방종해서
제齊나라의 기업이 비로소 쇠하였고,
후주後主(高緯)
注+[頭註]후주後主는 고위高緯이니, 고연高演의 장자이다. 가 계승하자 사리에 어둡고 광포함이 더욱 심해서 충성스럽고 어진 신하를 죽이며
注+[頭註]충성스럽고 어진 신하는 태위太尉인 조군왕趙郡王 고예高叡이다. 참소하고 간사한 자들을 신임하고 등용하였으니,
注+[頭註]참소하고 간사한 자는 화사개和士開이다. 10년 만에 망한 것도 이미 요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