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 上
이 指殿屋
하야 謂侍臣曰 治天下如建此屋
하야 營構旣成
이면 勿
改移
니 苟易一
注+[通鑑要解]榱는 音催니 秦謂之椽하고 周謂之榱하고 齊謂之桷이라, 正一瓦
면 踐履動搖
에 必有所損
이라
若慕奇功하야 變法度하고 不恒其德이면 勞擾實多니라
比年豐
하야 長安斗粟
이 直(値)三四錢
하니 一喜也
요 北虜久服
하야 邊鄙無虞
하니 二喜也
요
治安則驕侈易生하고 驕侈則危亡立至하니 此一懼也니라
○ 幷州大都督長史
이 在州十六年
에 令行禁止하니 夷民懷服이라
上曰 隋煬帝勞百姓
하야 築長城
注+[頭註]見三十四卷丁卯年이라 하야 以備突厥
호되 卒無所益
이러니
朕이 唯置李世勣於晉陽하야 而邊塵不驚하니 其爲長城이 豈不壯哉아하고 乃以世勣으로 爲兵部尙書하다
○ 上問魏徵
호되 比來
에 朝臣
이 何殊
注+[頭註]殊는 絶也라 不論事
오 對曰 陛下
虛心采納하시면 必有言者
하리이다
凡臣이 徇國者寡하고 愛身者多하니 彼畏罪故로 不言이니이다
人臣이 開說忤旨면 動及刑誅하니 與夫蹈湯火, 冒白刃者로 亦何異哉아
○ 上
이 嘗臨朝
에 謂侍臣曰 朕爲人主
하야 常兼行將相之事
로라 給事中張行成
이 退而上書
하야 以爲
禹不矜伐注+[頭註]矜은 誇其能이요 伐은 誇其功也라 이나 而天下莫與之爭
하니이다
陛下撥亂反正하시니 群臣이 誠不足望淸光이나 然不必臨朝言之하야 以萬乘之尊으로 乃與群臣校功爭能이니 臣은 竊爲陛下不取하노이다
○ 上
이 以近世陰陽雜書 訛僞尤多
라하야 命太常博士呂才
하야 刊定
注+[頭註]刊은 削也라 上之
하니 才皆爲之敍
하고 質以經史
하다
其序宅經曰 近世
에 巫
注+[通鑑要解]覡은 音檄이라 在男曰覡이요 在女曰巫라 이 妄分
하니
如張王爲商하고 武庾爲羽는 似取諧韻이어니와 至於以柳爲宮하고 以趙爲角하야는 又復不類요
或同出一姓
이나 分屬宮, 商
하고 或複姓數字
에 莫辨
, 羽
注+[通鑑要解]徵音은 也라 하니 此則
事不稽古하고 義理乖僻注+[通鑑要解]近世相傳에 以字學分五音하야 只在脣舌齒調之하니 舌居中者爲宮이요 口開張者爲商이요 舌縮却者爲角이요 舌拄齒者爲徵요 脣撮聚者爲羽라 陰陽家以이 說正如此라 者也
라
敍
曰 祿命之書
多言或中하야 人乃信之
나 然
長平坑卒注+[釋義]秦將白起攻趙할새 時에 趙軍長平이러니 秦殺其將趙括하고 坑其降卒四十萬하니 事在周赧王五十五年이라이 未聞共犯三刑注+[附註]十二辰有無恩之刑, 無禮之刑, (時)[恃]勢之刑하니 卽子刑卯하고 卯刑子하고 寅刑巳하고 巳刑申之類라 太歲若與生月相刑이면 主非命而死라 五行精記에 丑未戌刑名恃勢요 寅申巳位是無恩이요 (丁)[子]與卯刑曰無禮라 辰午酉亥自相刑이라하니 辰刑辰하고 午刑午하고 酉刑酉하고 亥刑亥也라이요 南陽貴士注+[釋義]漢光武時에 彭寵, 李通, 鄧晨, 來歙, 鄧禹, 岑彭, 賈復, 吳漢, 陳俊, 任光, 朱祜, 杜茂, 馬成, 馬武, 劉隆, 韓歆, 趙熹, 張堪, 馮魴, 蔡少公, 李軼, 李守, 尹敏等이 皆南陽人이니 竝貴士也라何必俱當이리오
今亦有同年同(錄)[祿]이나而貴賤懸殊하고 共命共胎나 而夭壽更異하니 此皆祿命不驗之著明者也라
其敍葬曰 古者에 卜葬은 蓋以朝市遷變하고 泉石交侵하야 不可前知라 故로 謀之龜筮러니 近代엔 或選年月하고 或相墓田하야 以爲窮達壽夭 皆因卜葬所致라
按禮
에 天子, 諸侯, 大夫 葬
하니 是
는 古人不擇年月也
요
春秋에 九月丁巳에 葬定公할새 雨하야 不克葬하고 戊午에 日下昃할새 乃克葬이라하니 是는 不擇日也요
鄭葬簡公
할새 司墓之室
注+[釋義]鄭掌公墓大夫니 徒屬之家라이 當路
라 毁之則朝而窆
이요 不毁則日中而窆
注+[頭註]窆은 陂驗切이니 葬下棺也라 左昭十二年에 毁之則道直이라 故早朝而下棺하고 不毁則道迂라 故日中而下棺이라하니라 迂는 曲也라이어늘 子産不毁
하니 是
는 不擇時也
요
古之葬者 皆於國都之北
하야 兆域
注+[通鑑要解]兆는 與同하니 域也라 有常處
하니 是
는 不擇地也
라
今에 以妖巫妄言으로 遂於擗踊之際에 擇地選時하야 以希富貴하며
或云辰日不可哭泣
이라하야 遂(筦)[莞]爾
注+[頭註]莞은 音晥이니 小笑貌라 而對弔客
하며 或云同屬忌於臨壙
注+[通鑑要解]壙은 音曠이니 墓穴也라 이라하야 遂吉服
으로 不送其親
하니
傷敎敗禮莫斯爲甚이라하니 識者以爲確論
注+[頭註]確은 堅也라 이러라
정월正月에
상上이 궁전의 지붕을 가리키면서
시신侍臣에게 이르기를 “천하를 다스림은 이 집을 세우는 것과 같아서 경영하여 구조가 이루어진 뒤에는 자주 고치거나 옮기지 말아야 하니, 만일 한 개의 서까래를 갈고
注+[通鑑要解]최榱는 음이 최이니, 진秦나라는 연椽이라 하고 주周나라는 최榱라 하고 제齊나라는 각桷이라 하였다. 한 장의 기와를 바로잡으면 밟고 동요함에 반드시 파손하는 바가 있게 된다.
만약 기이한 공功을 사모하여 마음대로 법도法度를 바꾸고 그 덕(마음)을 일정하게 지키지 않으면 수고롭고 번거로운 일이 실로 많아지게 된다.” 하였다.
상上이 시신侍臣에게 말하기를 “짐朕은 두 가지 기쁜 일과 한 가지 두려운 일이 있다.
근년에 풍년이 들어서 장안長安의 곡식 한 말의 값이 3, 4전이니 이것이 첫 번째 기쁜 일이요, 북쪽의 오랑캐들이 오랫동안 복종하여 변방에 근심이 없으니 이것이 두 번째 기쁜 일이다.
나라가 다스려지고 편안하면 교만함과 사치함이 쉽게 생겨나고, 교만하고 사치하면 위태로움과 멸망이 당장 이르니, 이것이 한 가지 두려운 일이다.” 하였다.
병주대도독장사幷州大都督長史이세적李世勣이 병주幷州에 있는 16년 동안 명령하는 것이 행해지고 금하는 것이 중지되니, 오랑캐 백성들이 마음으로 복종하였다.
상上이 이르기를 “
수隋나라
양제煬帝는 백성을 노역시켜
장성長城을 쌓아서
注+[頭註]장성長城을 쌓은 일은 34권 정묘년조丁卯年條(607)에 보인다. 돌궐突厥을 방비하였으나 끝내 유익한 바가 없었다.
짐朕은 오직 이세적李世勣을 진양晉陽에 두었을 뿐인데 변방이 안정되어 동요가 없으니 그 장성長城이 됨이 어찌 장대하지 않겠는가.” 하고는 마침내 이세적李世勣을 병부상서兵部尙書로 삼았다.
상上이
위징魏徵에게 묻기를 “근래에 조정의 신하들이 어찌하여 국가의 일을 전혀
注+[頭註]수殊는 절대로이다. 논하지 않는가?” 하니,
위징魏徵이 대답하기를 “폐하께서 마음을 비우고 신하들의 말을
채납採納하시면 반드시 말하는 자가 있을 것입니다.
무릇 신하들이 국가를 위해 희생하려는 자는 적고 자기 몸을 아끼는 자는 많으니, 저들이 죄를 범할까 두려워하기 때문에 간언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였다.
신하가 정사를 의논하다가 군주의 뜻을 거스르면 번번이 형벌과 죽음에 이르니, 끓는 물과 타오르는 불을 밟고 시퍼런 칼날을 무릅쓰는 것과 또한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러므로 우禹임금이 창언昌言에 절하신 것이니, 진실로 이 때문이다.” 하였다.
상上이 일찍이 조정에 임어하여
시신侍臣에게 이르기를 “
짐朕이 비록 군주이지만 항상
장상將相의 일을 겸하여 행하였다.” 하니,
급사중給事中장행성張行成이 물러가 글을 올려서 아뢰기를 “
우禹임금은 자신의 재능과 공로를 자랑하지 않았으나 천하에
우禹임금과 재능과 공로를
注+[頭註]긍矜은 재능을 자랑하는 것이고, 벌伐은 공을 자랑하는 것이다. 다툴 자가 없었습니다.
폐하께서 난을 평정하여 바른 데로 돌아오게 하시니, 여러 신하들이 진실로 청광淸光(임금의 얼굴)을 우러러볼 수 없으나 굳이 조회에 임하여 이것을 말씀하시어 만승萬乘의 존귀한 군주로서 마침내 여러 신하들과 공功을 비교하고 능력을 다툴 필요는 없으니, 신은 삼가 폐하를 위하여 취하지 않습니다.” 하였다.
상上이 근세에
음양陰陽에 관한
잡서雜書가 거짓됨이 특히 많다고 해서
태상박사太常博士여재呂才에게 명해서 세상에 유행하는 서적을
간정刊定하여
注+[頭註]간刊은 깎아냄이다. 올리게 하니,
여재呂才가 부분별로 모두 서문을 짓고
경서經書와
사서史書로써 질정하였다.
《
택경宅經》에 서문을 쓰기를 “근세에 무당들이
注+[通鑑要解]격覡은 음이 격이다. 남자는 격覡이라 하고 여자는 무巫라 한다. 함부로
오성五姓을 나누는데,
예를 들면 장씨張氏와 왕씨王氏를 상商이라 하고 무씨武氏와 유씨庾氏를 우羽라 한 것은 운韻이 맞음을 취한 듯하나, 유씨柳氏를 궁宮이라 하고 조씨趙氏를 각角이라 함에 있어서는 또 유사하지 않으며,
혹은 똑같이 한
성姓에서 나왔는데 나누어서
궁宮과
상商에 속하게 하고, 혹은
복성複姓이라서 몇 자가 되는 것은
징徵에 속하는지
우羽에 속하는지 구분하지 못하니,
注+[通鑑要解]징음徵音은 화음火音이다. 이것은 일이 옛것에 부합하지 않고 의리에도 어긋난다.” 하였다.
注+[通鑑要解]근세에 서로 전해오는 설에 자학字學으로 오음五音을 나누어 단지 입술과 혀와 이로 조절하는 데에 달려 있으니, 혀가 가운데 있게 발음하는 것을 궁宮이라 하고, 입을 벌려 발음하는 것을 상商이라 하고, 혀를 오므려 말고 발음하는 것을 각角이라 하고, 혀가 이를 떠받치고 발음하는 것을 징徵라 하고, 입술을 오므린 채 발음하는 것을 우羽라고 한다. 음양가陰陽家가 오성五姓을 오음五音에 분속시킨 것도 그 설說이 이와 같다.
《
녹명祿命》에 서문을 쓰기를 “
녹명祿命(사람이 타고난 운명)에 관한 책은 말을 많이 하여 간혹 맞을 때가 있으므로 사람들이 마침내 믿고 있으나
장평長平에 매장당한 병사들이
注+[釋義]진秦나라 장수 백기白起가 조趙나라를 공격했을 때에 조趙나라 군대가 장평長平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진秦나라가 조趙나라 장수 조괄趙括을 죽이고 항복한 병졸 40만 명을 묻어 죽였으니, 이 일은 주周나라 난왕赧王 55년年(B.C.260)에 있었다. 모두
삼형三刑을
注+[附註]12지支에는 무은살無恩殺과 무례살無禮殺과 시세살恃勢殺이 있으니, 곧 자子는 묘卯를 형살刑殺하고 묘卯는 자子를 형살하고 인寅은 사巳를 형살하고 사巳는 신申을 형살하는 따위이다. 태세太歲가 만약 생월生月과 서로 형살이 되면 비명횡사하게 된다. 《오행정기五行精記》에 “축丑‧미未‧술戌의 형살刑殺을 시세恃勢라 이름하고, 인寅‧신申‧사巳의 자리는 무은無恩이며, 자子와 묘卯의 형살을 무례無禮라 한다. 진辰‧오午‧유酉‧해亥는 자기들끼리 서로 형살하니, 진辰이 진辰을 형살하고 오午가 오午를 형살하고 유酉가 유酉를 형살하고 해亥가 해亥를 형살한다.” 하였다. 범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으며,
남양南陽의 귀한 선비들이
注+[釋義]한漢나라 광무제光武帝 때에 팽총彭寵‧이통李通‧등신鄧晨‧내흡來歙‧등우鄧禹‧잠팽岑彭‧가복賈復‧오한吳漢‧진준陳俊‧임광任光‧주호朱祜‧두무杜茂‧마성馬成‧마무馬武‧유륭劉隆‧한흠韓歆‧조희趙熹‧장감張堪‧풍방馮魴‧채소공蔡少公‧이일李軼‧이수李守‧윤민尹敏 등이 모두 남양南陽 사람이었으니, 모두 귀한 선비들이었다. 어찌 반드시 모두
육합六合의 운명을 타고났겠는가.
지금 또한 같은 해에 태어나 복록福祿이 같은데도 귀천貴賤이 크게 다르고, 명운命運이 같고 한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어났는데도 요수夭壽가 다시 다른 경우가 있으니, 이는 모두 녹명祿命이 증명되지 않음이 분명한 것이다.” 하였다.
《장경葬經》에 서문을 쓰기를 “옛날 장례葬禮할 때에 묏자리를 점치는 것은 조시朝市가 변천하고 천석泉石이 서로 침식하는 것을 미리 알 수 없기 때문에 거북껍질과 시초로 길흉을 점쳤는데, 근래에는 혹 술사術士를 불러다 매장할 연월年月을 가리고 혹은 묏자리를 보고는 곤궁하고 영달하고 장수하고 요절함이 모두 장지葬地와 장일葬日을 점친 소치라고 한다.
《예禮》를 살펴보면 천자와 제후와 대부의 장례가 모두 정해진 개월 수가 있었으니 이는 옛사람이 장례할 때에 연월年月을 가리지 않은 것이요,
《춘추春秋》 정공定公 15년조에 ‘9월 정사일丁巳日(9일)에 정공定公을 장례할 적에 비가 내려 장례할 수가 없어서 무오일戊午日(10일) 해가 기울 때에야 비로소 장례하였다.’ 하였으니 이는 날짜를 가리지 않은 것이요,
정鄭나라
간공簡公을 장례할 적에
사묘司墓의 집이
注+[釋義]정鄭나라의 공묘公墓를 관장하는 대부大夫의 도속徒屬이 사는 집이다. 장례하러 가는 길을 막고 있어서 이 집을 헐면 아침에 묘를 쓸 수 있고 헐지 않으면 정오에 묘를 쓸 수 있었는데
注+[頭註]훼지즉조이폄毁之則朝而窆불훼즉일중이폄不毁則日中而窆:폄窆은 陂驗切(폄)이니, 장사 지낼 때 하관下棺하는 것이다. 《춘추좌전春秋左傳》 소공昭公 12년에 “〈정鄭나라 간공簡公을 장례할 적에 사묘司墓의 집이 길을 막고 있었다.〉이 집을 헐면 길이 곧기 때문에 아침에 하관下棺할 수 있고, 헐지 않으면 길이 돌아가기 때문에 정오에 하관下棺할 수 있었다.” 하였다. 우迂는 굽은 것이다. 자산子産이 헐지 않았으니 이는 때를 가리지 않은 것이요,
옛날에 장례하는 자들은 모두 도성의 북쪽에 매장하여 묘역이
注+[通鑑要解]조兆는 조垗와 같으니, 묘역이다. 일정한 곳이 있었으니 이는 장소를 가리지 않은 것이다.
지금은 요망한 무당의 말을 따라 마침내 상주들이 슬퍼서 가슴을 치고 발을 구를 때에 땅을 고르고 시일時日을 가려서 부귀하게 되기를 바란다.
혹은
진일辰日에 곡하고 울어서는 안 된다 하여 마침내 빙그레 웃으면서
注+[頭註]완莞은 음이 환(완)이니, 조금 웃는 모습이다. 조문객을 대하며, 혹은 같은 띠는
광중壙中에 임하는 것을 꺼린다 하여
注+[通鑑要解]광壙은 음이 광이니, 무덤의 구덩이이다. 마침내
길복吉服을 입고서 그 어버이를 장송하지 않으니,
교화敎化를 손상시키고
예속禮俗을 무너뜨림이 이보다 더 심한 것이 없다.” 하니,
식자識者들이 확고한 의론이라고 하였다.
注+[頭註]확確은 확고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