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曰
蘇文
注+[附註]蓋은 音盍이니 高麗東部大人이라 或號蓋金하니 自云生水中이라하야 以惑人이라 故로 姓泉氏라 凶暴多不法이어늘 其主及大臣이 議誅之한대 蓋蘇文이 知之하고 勒兵盡殺諸大臣하고 手弑其主하다 立王弟子藏爲王하고 自爲莫離支하니 其官은 如中國吏部尙書也라 이 하고 殘虐其民
이러니 今又違詔命
하니 不可不討
라한대
褚遂良曰 陛下
指麾注+[頭註]麾는 與揮通이라 示意曰指요 誡勅曰揮라則中原淸晏하고 顧則四夷服注+[頭註]讋은 之涉切이니 失氣也라하야 威望大矣
어늘
今乃渡海하야 遠征小夷라가 萬一蹉跌이면 傷威損望이요 更興忿兵이면 則安危難測矣리이다
○ 上嘗謂侍臣曰 於今
에 名將
은 惟世勣, 道宗, 萬徹
注+[頭註]道宗은 江夏王也니 高祖從兄之子요 萬徹은 薛萬徹이라 三人而已
니
世勣, 道宗은 不能大勝이요 亦不大敗어니와 萬徹은 非大勝이면 則大敗矣라하더라
○ 上이 好文學而辯敏하야 群臣言事者를 上引古今以折之하니 多不能對라
劉洎上書諫曰 帝王之與凡庶
와 聖哲之與庸愚
는 上下懸絶하니 是知以
至愚而對至聖하고 以極卑而對極尊하야 徒
注+[頭註]本傳에 作雖라 思自彊
이나 不可得也
라
陛下降恩旨, 假慈顔
하야 凝旒注+[附註]旒는 冕飾垂玉也니 天子十二旒요 上公九旒요 三公八旒요 侯伯七旒요 子男五旒요 王之大夫與諸侯之孤四旒라 垂皆過目하니 所以蔽明也라以聽其言하고 虛襟注+[釋義]謂虛其襟懷니 不自滿假也라 以納其說이라도 猶恐群下未敢對敭
注+[釋義]對는 答也요 敭은 通作揚이니 答受天子之命而稱揚之라이어든 況動神機, 縱天辯
하야 飾辭以折其理하고 引古以排其議하시니 欲令凡庶
로 何階應答
이니잇고
且多記則損心하고 多語則損氣하니 心氣內損하고 形神外勞면 初雖不覺이나 後必爲累리이다
上
이 飛白
注+[釋義]字體也니 白은 通作帛이라 歸田錄曰 凡飛白은 以點畫象物形하니 惟點이 最難工이라하니라 答之曰
非慮면 無以臨下요 非言이면 無以述慮나 比有談論
하야 遂致煩多
하니 輕物驕人
이 恐由玆道
라
形神心氣 非此爲勞나 今聞讜言하니 虛懷以改호리라
○ 八月
에 上
이 謂長孫無忌等曰
人苦不自知其過니 卿可爲朕明言之
하라 對曰 陛下武功文德
을 臣等
이 將順之不暇注+[通鑑要解]孝經云 君子之事上也에 將順其美하고 匡救其惡이라한대 註云 將은 大也, 奉也라하니라 어니 又何過之可言
이리잇고
上曰 朕問公以己過
어늘 公等
이 乃曲相諛說(悅)
注+[釋義]諛는 諂也요 說은 讀曰悅이라 하니
朕欲面擧公等得失하야 以相戒而改之하노니 何如오 皆拜謝하다
上曰 長孫無忌는 善避嫌疑하고 應物敏速하야 決斷事理는 古人不過나 而摠兵攻戰은 非其所長이요
高士廉
은 涉獵古今하야 心稍明達
하며 臨難不改節하고 當官無朋黨이나 所乏者는 骨鯁注+[頭註]鯁은 與骾通이라 遇事에 敢刺骾하야 不從容也라 一說에 有言難受가 如骨之咈咽也니 堅剛正直之義라하니라 規諫耳요
唐儉은 言辭辯捷하야 善和解人이나 事朕三十年에 遂無言及於獻替요
楊師道는 性行純和하야 自無愆違로되 而情實怯懦하야 緩急에 不可得力이요
岑文本은 性質敦厚하고 文章華贍하며 而持論이 恒據經遠하니 自當不負於物이요
劉洎는 性最堅貞하야 有利益이나 然其意尙然諾하야 私於朋友요
馬周는 見事敏速하고 性甚貞正하야 論量人物에 直道而言하니 朕比任使에 多能稱意요
褚遂良
은 學問稍長
하고 性亦堅正
하며 每寫(瀉)
注+[頭註]輸也라 忠誠
하야 親附於朕
하니 譬如
飛鳥依人에 人自憐之니라
君臣은 以道相與하고 以義相正하야 有朋友之義요 非徒以分相使而已라
太宗이 欲聞過어늘 而無忌納諂以悅之하니 其罪大矣라
遂良이 直道犯顔하고 盡忠無隱하니 王, 魏之比也어늘 而譬之飛鳥하야 輕侮其臣하니 不恭이 孰甚焉고
高麗臣屬於唐이어늘 而其主爲賊臣所弑하니 爲大國者 不可不討라
太宗이 若從褚遂良之言하야 遣將伐之런들 雖不克이라도 未大失也리라
상上이 이르기를 “
개소문蓋蘇文이
注+[附註]개蓋은 음이 합이니 고구려高句麗동부대인東部大人이다. 혹은 개금蓋金이라고 이름하니, 스스로 물속에서 나왔다고 말하여 사람들을 의혹시켰다. 그러므로 성姓을 천씨泉氏라 하였다. 흉포하여 불법을 많이 저지르자 군주(榮留王 건무建武)와 대신들이 그를 주벌할 것을 모의하였는데, 개소문蓋蘇文이 이것을 알고 병력을 동원하여 여러 대신大臣들을 다 죽이고 직접 군주를 시해하였다. 아우(太陽王)의 아들 장藏(또는 보장寶藏)을 세워 왕王으로 삼고 자신은 막리지莫離支가 되니, 그 관직이 중국中國의 이부상서吏部尙書와 같다. 군주를 시해하고 백성을 잔인하게 학대하였는데 지금 또다시 나의
조명詔命을 어기니 토벌하지 않을 수 없다.” 하니,
저수량褚遂良이 아뢰기를 “폐하께서 지휘하시면
注+[頭註]휘麾는 휘揮와 통한다. 뜻을 보이는 것을 지指라 하고, 경계하여 타이르는 것을 휘揮라 한다. 중국이 깨끗이 평안하고, 돌아보시면 사방 오랑캐들이 두려워하고 복종해서
注+[頭註]접讋은 之涉切(접)이니, 용기를 잃은 것이다. 위엄과 명망이 큽니다.
그런데 이제 마침내 바다를 건너가서 멀리 작은 오랑캐를 정벌하시다가 만일 차질이 있게 되면 위엄과 명망을 손상하게 될 것이요, 작은 일을 참지 못하여 분노하여 군대를 출동하신다면 국가의 안위安危를 측량하기 어렵게 됩니다.” 하였다.
이세적李世勣이 상上에게 정벌할 것을 권하니, 상上이 직접 고구려를 정벌하고자 하였다.
저수량褚遂良이 상소하여 간하였으나 상上이 듣지 않았다.
상上이 일찍이
시신侍臣에게 이르기를 “지금에
명장名將은 오직
이세적李世勣‧
이도종李道宗‧
설만철薛萬徹注+[頭註]이도종李道宗은 강하왕江夏王이니 고조高祖의 종형의 아들이요, 만철萬徹은 설만철薛萬徹이다. 세 사람뿐이니,
이세적李世勣과 이도종李道宗은 크게 이기지도 못하고 또한 크게 패하지도 않지만, 설만철薛萬徹은 크게 이기지 않으면 크게 패한다.” 하였다.
상上이 문학文學을 좋아하며 말을 잘하고 민첩해서 여러 신하 중에 상서上書하여 일을 아뢰는 자를 상上이 고금古今의 일을 인용하여 꺾으니, 대답하지 못하는 자가 많았다.
유계劉洎가 상소하여 간하기를 “
제왕帝王과 일반 서민,
성철聖哲과 용렬하고 어리석은 자는 상하가 현격하니, 이로 말미암아 지극히 어리석은 몸으로 지극히 성스러운 분을 대하고 지극히 비천한 몸으로 지극히 높은 분을 대함에 비록
注+[頭註]도徒는 《신당서新唐書》 〈유계전劉洎傳〉에 ‘수雖’로 되어 있다. 스스로 힘쓸 것을 생각하나 될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폐하께서 은혜로운 말씀을 내리고 안색을 온화하게 하여 면류관의 술을 움직이지 않고
注+[附註]유旒는 면류관冕旒冠에 장식으로 드리운 주옥珠玉이니, 천자天子는 12유旒, 상공上公은 9유旒, 삼공三公은 8유旒, 후侯와 백伯은 7유旒, 자子와 남男은 5유旒이고, 왕王의 대부大夫와 제후諸侯의 고孤는 4유旒이다. 술이 늘어진 것이 모두 눈앞을 지나가니 밝음을 가리기 위한 것이다. 그들의 간언하는 말을 경청하시며 흉금을 비우고
注+[釋義]허금虛襟은 흉금胸襟을 비움을 이르니, 스스로 자만하거나 잘난 체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의 말을 받아들이시더라도 행여 아랫사람들이 감히 황제에게 제대로 응대하지 못할까 두려운데,
注+[釋義]대對는 답하는 것이고 양敭은 통용하여 양揚으로도 쓰니, 대양對敭은 천자天子의 명령을 답하고 받들어 널리 펴는 것이다. 더구나
상上께서
신기神機를 발동하고 뛰어난 언변을 구사하여 말을 꾸며서 그 논리를 꺾고 옛것을 인용하여 그 의론을 배척하시면서, 어떻게 일반 서민들로 하여금 응답하게 하고자 하십니까.
또 기억을 많이 하면 마음을 손상시키고 말을 많이 하면 기운을 손상시키니, 마음과 기운이 안에서 손상되고 형체와 정신이 밖에서 수고로우면 처음에는 비록 깨닫지 못하나 뒤에는 반드시 해가 될 것입니다.” 하였다.
상上이
비백체飛白體로
注+[釋義]비백飛白은 글씨체이니, 백白은 통용하여 백帛으로도 쓴다. 구양수歐陽脩의 《귀전록歸田錄》에 이르기를 “무릇 비백飛白은 점과 획으로 물건의 모양을 형상하니, 점을 공교롭게 하기가 가장 어렵다.” 하였다. 답하기를 “생각하지 않으면 아랫사람에게 임할 수가 없고 말하지 않으면 생각을 펼 수 없으나 근래에 국사를 담론할 때에 마침내 번다함을 초래하였으니, 사물(사람)을 경시하고 남들에게 교만함이 이
도道 때문인 듯하다.
형체와 정신과 마음과 기운이 이 때문에 수고로워지는 것은 아니나 이제 그대의 충성스러운 말을 들었으니, 짐朕이 마음을 비워 고치겠다.” 하였다.
- 《신당서新唐書유계전劉洎傳》과 《정관정요貞觀政要》에 나옴 -
8월에
상上이
장손무기長孫無忌 등에게 이르기를 “사람은 자신의 허물을 알지 못하는 것이 괴로우니,
경卿은
짐朕을 위하여 분명히 말하라.” 하니, 대답하기를 “폐하의
무공武功과
문덕文德을 신들이 받들어 따르기에도 겨를이 없으니,
注+[通鑑要解]《효경孝經》 〈사군장事君章〉에 이르기를 “군자가 윗사람을 섬길 적에 아름다운 점은 받들어 따르고 나쁜 점은 바로잡는다.” 하였는데, 주註에 이르기를 “장將은 큼이며 받듦이다.” 하였다. 또 어찌 허물을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상上이 이르기를 “
짐朕이
공公에게 자신의 허물을 물었는데, 공들은 마침내 뜻을 굽혀 아첨하여 나를 기쁘게 하는구나.
注+[釋義]유諛는 아첨함이요, 열說은 열悅로 읽는다.
짐이 공들의 득실得失을 면전에서 열거하여 서로 경계하여 고치고자 하니 어떠한가?” 하자, 모두 절하고 사례하였다.
상上이 이르기를 “장손무기長孫無忌는 혐의를 잘 피하며 사물에 대응하기를 민첩하고 신속히 하며 사리를 결단함은 고인古人도 그보다 잘할 수 없으나 군대를 총괄하여 공격하고 전쟁함은 그의 소장所長이 아니요,
고사렴高士廉은
고금古今의 서적을 섭렵하여마음이 밝고 통달하며
위난危難에 임해서도 절개를 변치 않고 관직을 맡아도
붕당朋黨이 없으나 부족한 점은 직언으로
注+[頭註]경鯁은 경骾과 통通한다. 일을 만났을 때에 과감하게 풍자하고 반대하여 순순히 따르지 않는 것이다. 일설一說에는 말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 마치 가시 뼈가 목구멍에 걸린 것과 같으니, 강직하고 정직하다는 뜻이라 한다. 규간規諫하는 것이요,
당검唐儉은 언변이 뛰어나고 민첩하여 사람들과 잘 어울리나 짐朕을 섬긴 30년 동안 끝내 착한 일을 하도록 권하고 악한 일을 하지 않도록 하는 일에 대해 말함이 매우 적고,
양사도楊師道는 성품과 행실이 순수하고 온화하여 자연 허물이 없었으나 속마음은 실로 겁이 많고 나약해서 급할 때에 힘을 얻을 수 없고,
잠문본岑文本은 성질이 돈후하고 문장이 화려하나 지론持論이 항상 떳떳하고 원대함에 근거하여 자연 시무時務에 적절하지 못하고,
유계劉洎는 성품이 가장 꿋꿋하고 곧아서 유익하게 함이 있으나 그 뜻이 승낙한 말을 숭상해서 붕우朋友에게 사정私情을 두고,
마주馬周는 일을 봄에 민첩하고 신속하며 성품이 매우 곧고 발라서 인물을 품평할 때에 흉중의 생각을 그대로 드러내어 짐이 근래에 그에게 일을 맡기고 부림에 뜻에 맞는 일이 많으며,
저수량褚遂良은 학문이 다소 뛰어나고 성품 또한 꿋꿋하고 발라서 매번 충성을 기울여
注+[頭註]사寫는 바침이다. 짐을 친근히 따르니 비유하면 나는 새가 사람에 의지함에 사람이 절로 사랑하게 되는 것과 같다.” 하였다.
- 《신당서新唐書장손무기전長孫無忌傳》에 나옴 -
“군신간은 도道로써 서로 함께하고 의리로써 서로 바로잡아 붕우간의 의리가 있고 다만 분수(신분)로써 서로 부릴 뿐만이 아니다.
태종太宗이 과실을 듣고자 하였는데 장손무기長孫無忌가 아첨하는 말을 올려 기쁘게 하였으니, 그 죄가 크다.
그러나 태종太宗이 여러 신하들의 득실을 논한 것도 어찌 모두 도리에 맞겠는가.
저수량褚遂良은 정직한 도로 군주의 안색을 범하면서 간하며 충성을 다하고 속임이 없어서 왕규王珪와 위징魏徵의 무리였는데 그를 나는 새에 비유하여 신하를 경시하고 업신여겼으니, 불공不恭함이 무엇이 이보다 더 심하겠는가.”
12월에 제군諸軍에 명하여 길을 나누어 고구려를 공격하게 하였다.
“고구려가 당唐나라에 신하로 복속하였는데 군주가 적신賊臣(淵蓋蘇文)에게 시해당하였으니, 대국大國이 이를 토벌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어찌 스스로 정벌하기까지 한단 말인가.
태종太宗이 만약 저수량褚遂良의 간언諫言을 따라 장수를 보내어 정벌하게 했더라면 비록 승리하지 못했더라도 크게 잘못하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