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
이 幸翠微宮
할새 冀州進士張昌齡
이 獻翠微宮頌
이어늘 上愛其文
하야 命於通事舍人裏供奉
注+[釋義]未命以官이라 故로 令於通事舍人裏供奉하니 若馬周起布衣에 詔令於監察御史裏行이 是也라 厥後에 專以裏行名官하니라하다
初에 昌齡이 與進士王公謹으로 皆善屬文하야 名振京師러니 考功員外郞王師旦이 知貢擧하야 黜之하니 擧朝莫曉其故러라
師旦對曰 二人이 雖有辭華나 然其體輕薄하야 終不成令器하리니
若置之高第면 恐後進效之하야 傷陛下雅道니이다 上이 善其言이러라
○ 上이 御翠微殿하야 問侍臣曰 自古帝王이 雖平定中夏나 不能服戎, 狄이어늘 朕은 才不逮古人이로되 而成功過之하니 自不諭其故라
群臣皆稱호되 陛下功德이 如天生萬物하야 不得而名言이니이다 上曰 不然하다
自古帝王이 多疾勝己者어늘 朕은 見人之善이면 若己有之하며
人之行能이 不能兼備어늘 朕은 常棄其所短하고 取其所長하며
人主往往進賢則欲寘(置)諸懷하고 退不肖則欲墜諸壑이어늘 朕은 見賢者則敬之하고 不肖者則憐之하야 賢不肖各得其所하며
人主多惡正直
하야 陰誅顯戮
이 無代無之
어늘 朕
은 踐阼
注+[頭註]阼는 主階也라 以來
로 正直之士 比肩於朝
호되 未嘗黜責一人
하며
自古
로 皆貴中華
하고 賤夷狄
이어늘 朕獨愛之如一
이라 故
로 其種落
注+[頭註]落은 居也라이 皆依朕如父母
하니
顧謂褚遂良曰 公
이 嘗爲史官
하니 如朕言
이 得其實乎
아 對曰 陛下盛德
을 不可勝載
注+[頭註]載는 記載也라어늘 獨以此五者自與
注+[頭註]與는 許也라하시니 蓋謙謙之志耳
니이다
○ 骨利幹
注+[頭註]見上勅勒注라[通鑑要解] 骨利幹은 居瀚海北이라 晝長夜短하니 蓋近日出處라 이 遣使入貢
하니 骨利幹
은 於鐵勒
注+[頭註]卽勅勒也라 諸部
에 爲最遠
이라
注+[釋義]日入也라 이요 煮羊
注+[釋義]胛은 古狎反이니 闔也라 與胸脅相會闔이라[通鑑要解] 考異曰 實錄, 唐曆에 皆作羊胛이요 僧一行大衍曆義及舊天文志, 唐統紀에 皆作脾요 新天文志云 胹라하니 按正言羊脾者는 取其易熟故也라 若煮羊胛及髀면 則雖中國이라도 通夕亦未爛矣니 今從大衍曆義하노라 適熟
이면 日已復出矣
러라
○ 齊州人段志沖이 上封事하야 請上致政於皇太子하니 太子聞之하고 憂形於色하야 發言流涕라
長孫無忌等
이 請誅志沖
한대 上手詔曰
五岳陵霄하고 四海注+[頭註]橫亘也라 地하야 納汚藏疾注+[釋義]左傳에 川澤納汚하고 山藪藏疾이라하니라호되 無損高深이라
志沖이 欲以匹夫로 解位天子하니 朕若有罪면 是其直也요 若其無罪면 是其狂也니
譬如尺霧障天에 不虧於大하고 寸雲點日에 何損於明이리오
상上이
취미궁翠微宮에 행차했을 적에
기주冀州의
진사進士인
장창령張昌齡이
취미궁송翠微宮頌을 바치자,
상上이 그의 문장을 아껴서
통사사인通事舍人의 반열에서 봉직하도록 명하였다.
注+[釋義]관직에 정식으로 임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통사사인通事舍人의 반열에서 봉직하도록 명령한 것이니, 마주馬周가 평민 출신으로 발신發身하였을 때에 조명詔命을 내려 감찰어사이행監察御史裏行으로 삼은 것이 바로 이 경우이다. 그 뒤로는 단지 이행裏行으로 관직을 이름하였다.
처음에 장창령張昌齡이 진사 왕공근王公謹과 함께 모두 글을 잘 엮어 명성이 경사京師에 진동하였는데, 고공원외랑考功員外郞왕사단王師旦이 공거貢擧를 맡아 그를 물리치고 등용하지 않자 온 조정이 그 이유를 깨닫지 못하였다.
진사進士에 급제及第한 자의 명단을 아뢸 적에 상上이 두 사람의 이름이 없는 것을 괴이하게 여겨서 힐문詰問하자,
왕사단王師旦이 대답하기를 “두 사람이 비록 문장은 화려하지만 문체文體가 경박하여 끝내 훌륭한 그릇이 되지 못할 것이니,
만약 이들을 높은 등급에 둔다면 후진後進들이 이를 본받아서 폐하의 바른 도를 해칠까 두렵습니다.” 하니, 상上이 그의 말을 좋게 여겼다.
상上이 취미전翠微殿에 납시어 시신侍臣에게 묻기를 “예로부터 제왕帝王이 비록 중하中夏를 평정하였으나 융戎과 적狄을 복종시키지는 못했는데, 짐朕은 재주는 옛사람에게 미치지 못하면서도 공업을 이룸은 옛사람보다 더하니, 나 스스로도 그 이유를 깨닫지 못하노라.
제공諸公들은 각기 뜻에 따라 솔직히 사실대로 말하라.” 하였다.
여러 신하들이 모두 칭찬하기를 “폐하의 공덕은 하늘이 만물을 낳는 것과 같아서 말로 형용할 수가 없습니다.” 하니, 상上이 이르기를 “그렇지 않다.
짐朕이 이러한 경지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다만 다섯 가지 일에서 연유되었다.
예로부터 제왕帝王들은 자신보다 나은 자를 대부분 미워하였으나 짐朕은 남의 선을 보면 나에게 있는 것처럼 기뻐하였으며,
사람의 행실과 능력은 겸비할 수 없는데, 짐朕은 항상 사람들의 부족한 점을 버리고 뛰어난 점을 취하였으며,
군주가 왕왕 어진 자를 등용할 때에는 사랑하여 품안에 두고자 하고 불초한 자를 물리칠 때에는 미워하여 골짜기에 떨어뜨리고자 하는데, 짐朕은 어진 자를 보면 공경하고 불초한 자를 보면 가엽게 여겨 어진 자와 불초한 자가 각각 제자리를 얻게 하였으며,
군주가 대부분 정직한 자를 미워하여 음으로 양으로 죽인 일이 없었던 시대가 없는데,
짐朕은 즉위한 뒤로
注+[頭註]조阼는 주인이 오르는 계단이다. 정직한 선비가 조정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였으나 일찍이 한 사람도 내치거나 꾸짖은 적이 없으며,
예로부터 모두
중화中華를 귀하게 여기고
이적夷狄을 천하게 여겼으나
짐朕은 홀로
중화中華와
이적夷狄을 똑같이 사랑하였기 때문에 그 종족과 부락들이
注+[頭註]낙落은 거주함이다. 모두
짐朕을 부모처럼 의지하였으니,
이 다섯 가지가 짐朕이 오늘날의 공을 이루게 된 까닭이다.” 하였다.
저수량褚遂良을 돌아보고 이르기를 “공은 일찍이
사관史官이었으니,
짐朕의 말이 사실과 부합하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폐하의 성대한 덕을 이루 다 기재할 수가 없는데
注+[頭註]재載는 기재함이다. 오직 이 다섯 가지를 가지고 스스로 자신의 장점이라고 허여하시니,
注+[頭註]여與는 허여(인정)함이다. 이는 겸손하고 겸손한 뜻입니다.” 하였다.
골리간骨利幹이
注+[頭註]골리간骨利幹은 앞의 칙륵勅勒에 대한 주注에 보인다. [通鑑要解]골리간骨利幹은 한해瀚海의 북쪽에 거주하였다. 이곳은 낮이 길고 밤이 짧으니, 해가 뜨는 곳에 가깝기 때문이다. 사신을 보내어
조공朝貢을 바치니,
골리간骨利幹은
철륵鐵勒의
注+[頭註]철륵鐵勒이 바로 칙륵勅勒이다. 여러 부족 중에서 중국과 가장 멀었다.
낮이 길고 밤이 짧아서 해가 진 뒤에도 하늘이 노을빛으로 밝고,
注+[釋義]훈曛은 해가 진 것이다. 양羊의 어깨뼈를 삶아서
注+[釋義]갑胛은 古狎反(갑)이니, 합闔(어깨뼈)이다. 가슴과 옆구리 부위와 서로 만난 것이 합闔이다. [通鑑要解] 《자치통감고이資治通鑑考異》에 말하였다. “《실록實錄》과 《당력唐曆》에는 모두 양羊의 갑胛(어깨뼈)으로 되어 있고, 승僧일행一行의 《대연력의大衍曆義》와 《구당서舊唐書》 〈천문지天文志〉및 《당통기唐統紀》에는 모두 비脾(지라)로 되어 있고, 《신당서新唐書》 〈천문지天文志〉에는 이胹(양의 넓적다리)라고 하였으니, 살펴보건대 양羊의 비脾(지라)를 바로 말한 것은 쉽게 익기 때문이다. 만일 양羊의 갑胛과 비髀를 삶는다면 비록 중국에서 밤새 삶아도 푹 삶아지지 않을 것이니, 이제 《대연력의大衍曆義》를 따른다.” 양고기가 알맞게 익을 때면 해가 다시 떠올랐다.
제주齊州 사람 단지충段志沖이 봉사소封事疏를 올려 태자에게 정사를 물려줄 것을 상上에게 청하니, 태자가 이 말을 듣고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여 말을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장손무기長孫無忌 등이
단지충段志沖을 죽일 것을 청하자,
상上이 손수 쓴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
오악五岳은 하늘 높이 솟아있고
사해四海는 사방으로 육지 끝까지 뻗어 있어서
注+[頭註]긍亘은 가로로(四方으로) 뻗침이다. 더러운 것을 받아들이고 나쁜 것을 감추되
注+[釋義]《춘추좌전春秋左傳》에 “내와 못은 더러운 것을 받아들이고 산과 수풀은 나쁜 것을 감춘다.” 하였다. 산과 바다의 높고 깊음에 어떠한 손상도 없다.
단지충段志沖이 필부匹夫로서 천자의 지위를 해임하고자 하였으니, 짐朕이 만약 죄가 있다면 이는 그가 정직한 것이요, 짐朕이 만약 죄가 없다면 이는 그가 미친 것이다.
비유하면 한 자의 안개가 하늘을 가림에 큰 하늘에 손상이 없는 것과 같고, 한 치의 구름이 해를 가림에 밝은 해에 손상이 없는 것과 같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