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或告
注+[頭註]金吾大將軍丘神勣이 以罪誅라 文昌
注+[頭註]太后改尙書省爲文昌臺라 右丞周興
이 與丘神勣
으로 通謀
라하야늘 太后命來俊臣
하야 鞠之
하다
俊臣이 與興으로 方推事對食할새 謂興曰 囚多不承하니 當爲何法고 興曰 此甚易爾니
取大甕
하야 以炭
으로 四周
之
하고 令囚入中
이면 何事不承이리오
俊臣이 乃索大甕하야 火圍如興法하고 因起謂興曰 有內狀推兄하니 請兄入此甕하라한대
太后原之
注+[頭註]赦罪曰原이라 하고 二月
에 流興嶺南
이러니 在道
에 爲仇家所殺
하다
興이 與索元禮, 來俊臣으로 競爲暴刻하니 興, 元禮所殺이 各數千人이요 俊臣所破千餘家라
사성嗣聖 8년(신묘 691) - 주周나라 무씨武氏천수天授 2년 -
혹자가
문창文昌注+[頭註]태후太后가 광택光宅 원년(684)에 상서성尙書省을 문창대文昌臺로 고쳤다. 右丞
주흥周興이
구신적丘神勣과 함께 모반했다고 고하자,
注+[頭註]혹자가 고발한 것은 금오대장군金吾大將軍구신적丘神勣이 모반죄로 주벌되었기 때문이다. 태후太后가
내준신來俊臣에게 명하여 국문하게 하였다.
내준신來俊臣이 주흥周興과 함께 안건을 심리하다가 마주앉아 밥을 먹을 적에 주흥周興에게 말하기를 “죄수들 중에 승복하지 않는 자가 많으니, 마땅히 무슨 방법을 써야 합니까?” 하니, 주흥周興이 대답하기를 “이는 매우 간단하다.
큰 독을 가져다가 숯불을 사방 둘레에 피워놓고 죄수로 하여금 그 속으로 들어가게 하면 무슨 일인들 자복하지 않겠는가.” 하였다.
내준신來俊臣은 마침내 큰 독을 구해다가 주흥周興이 말한 방법대로 사방 둘레에 불을 피워놓고, 인하여 일어나서 주흥周興에게 말하기를 “조정 안에 소송장訴訟狀이 있어 형을 추국하라고 요구하니, 형께서는 이 독 속으로 들어가시오.” 하였다.
주흥周興이 두려워하여 머리를 찧으며 죄를 자복하니, 형법상 사형에 해당하였다.
태후가 그를 용서하고
注+[頭註]죄를 사면해주는 것을 원原이라 한다. 2월에
주흥周興을
영남嶺南으로 유배 보냈는데, 도중에 원수의 집안에게 살해당하였다.
주흥周興이 삭원례索元禮‧내준신來俊臣과 함께 다투어 잔혹하고 각박한 짓을 하니, 주흥周興과 삭원례索元禮가 죽인 자가 각각 수천 명이었고 내준신來俊臣이 패망하게 한 집안이 천여 가호였다.
삭원례索元禮가 잔혹함이 더욱 심하니, 태후가 그를 죽여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