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月
에 初令兩京諸州
로 各置太公廟
하야 以張良配饗
하고 選古名將
하야 以備十哲
注+[通鑑要解]張良, 田穰苴, 孫武, 吳起, 樂毅, 白起, 韓信, 諸葛亮, 李靖, 李勣也라 하고 以二八月上戊
注+[頭註]用戊日者는 戊在之位하야 兵衛之象이라 故로 字從戈하니라 로 致祭
하야 如孔子禮
하다
經緯天地之謂文
注+[釋義]緯는 橫絲也니 南北爲經이요 東西爲緯라[頭註] 經緯天地하야 相錯而成이 如織之成文也라 이요 注+[釋義]勝也라 定禍亂之謂武
니 自古
로 不兼斯二者而稱聖人
은 未之有也
라
故로 黃帝, 堯, 舜, 禹, 湯, 文, 武, 伊尹, 周公이 莫不有征伐之功이요
孔子雖不試
나 猶能兵萊夷
注+[釋義]萊는 齊東夷也라 孔子魯定公하야 會齊侯于夾谷이러니 齊使萊人으로 以兵劫公이어늘 孔子以公退曰 士兵之하라 兩君爲好에 敢以兵亂之하니 非齊君所以命諸侯라하시니 齊侯心怍하니라[頭註] 令士官으로 以兵擊萊夷라 , 却費人
注+[附註]左定十二年에 仲由爲季氏宰하야 將할새 公山不狃 帥費人攻魯하야 及公側이어늘 仲尼命下하야 伐之하니 費人敗走하니라 하시고 曰
이라하시니
自生民以來로 未有如孔子者하니 豈太公得與之抗衡哉아
古者
에 有發
注+[釋義]謂徵發也라 이면 則命大司徒
하야 敎士以車甲
하고 臝(裸)股肱
注+[頭註]臝는 與裸通하니 裸衣而出其股肱者는 欲以決勝負하야 而示武勇이라 , 決射御
하고 受成獻
注+[釋義]馘은 所格者之左耳라[頭註] 受成은 將出兵할새 定兵謀也요 獻馘은 及其反也에 釋奠于學而獻馘也라 이 莫不在學
하니 所以然者
는 欲其先禮義而後勇力也
라
君子有勇而無義면 爲亂이요 小人有勇而無義면 爲盜니 若專訓之以勇力하고 而不使之知禮義면 奚所不爲矣리오
自孫, 吳
注+[頭註]孫臏, 吳起라 以降
으로 皆以勇力相勝
하고 狙詐相高
注+[頭註]各尙權謀也니 言兵法權謀家流 用此巧詐之計라 하니 豈足以數於聖賢之門而謂之武哉
아
乃復誣引하야 以偶十哲之目하야 爲後世學者之師하니 使太公有神이면 必羞與之同食矣리라
3월에
양경兩京(洛陽과
장안長安)과 여러
주州로 하여금 각각
강태공姜太公의 사당을 설치하고
장량張良을 배향하게 하였으며, 옛날
명장名將을 뽑아
십철十哲을 구비하되
注+[通鑑要解]십철十哲은 장량張良‧전양저田穰苴‧손무孫武‧오기吳起‧악의樂毅‧백기白起‧한신韓信‧제갈량諸葛亮‧이정李靖‧이적李勣이다. 매년 2월과 8월의 첫 번째
무일戊日에
注+[頭註]무일戊日을 사용하는 것은 무戊가 북극성北極星과 구진성勾陳星의 자리에 있어서 군대가 호위하는 형상이기 때문에 글자가 과戈를 따른 것이다. 제사를 지내어
공자孔子를 제사하는
예禮와 같이 하였다.
“
천지天地를
경륜經綸하는 것을
문文이라
注+[釋義]위緯는 베를 짤 때 가로 방향으로 놓인 실(씨실)이니, 남북을 경經이라 하고 동서를 위緯라 한다. [頭註] 천지를 경위經緯하여 서로 섞여서 이루어짐이 직물이 무늬를 이루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르고
화란禍亂을 안정시키는
注+[釋義]감戡은 이김이다. 것을
무武라 이르니, 예로부터 이 두 가지를 겸비하지 않고
성인聖人이라 일컬어진 경우는 있지 않았다.
그러므로 황제黃帝‧요堯‧순舜‧우禹‧탕湯‧문文‧무武‧이윤伊尹‧주공周公은 정벌하는 공이 없는 분이 없었고,
공자孔子는 비록 당시에 쓰이지 못했으나 오히려
내이萊夷를 공격하고
注+[釋義]내萊는 제齊나라 동쪽 오랑캐이다. 공자孔子가 노魯나라 정공定公을 도와 제齊나라 임금과 협곡夾谷에서 회맹하였는데, 제齊나라가 내인萊人을 시켜 병기를 가지고 정공定公을 위협하자, 공자孔子가 정공定公을 모시고 물러가며 말씀하기를 “사관士官들은 저들을 공격하라. 두 군주가 우호를 닦는데 오랑캐 포로들이 감히 병기를 가지고 어지럽히니, 제齊나라 군주가 제후들에게 명령하는 도리가 아니다.”라고 하니, 제齊나라 임금이 내심 부끄러워하였다. [頭註]병兵은 사관士官으로 하여금 병기를 가지고 내이萊夷를 공격하게 한 것이다. 비인 費人을 물리치셨고
注+[附註]《좌전左傳》 정공定公 12년에 중유仲由가 계씨季氏의 재宰(家臣의 우두머리)가 되어 장차 삼도三都를 허물려고 할 적에, 공산불뉴公山不狃가 비읍費邑의 사람들을 거느리고 노魯나라를 공격하여 화살이 무자대武子臺에 올라가 있던 정공定公의 곁에 이르자, 중니仲尼가 신구수申句須에게 명하여 무자대武子臺를 내려가 치게 하니, 비읍費邑의 사람들이 패주하였다. 말씀하기를 ‘나는 싸우면 이긴다.’ 하였으니,
어찌 공자孔子는 문文만 오로지 하고 태공太公은 무武만 오로지 하였겠는가.
공자孔子를 학궁學宮에서 제사하는 까닭은 예禮(禮記) 중에 선성先聖과 선사先師에게 제사하는 예禮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생긴 이래로 공자孔子와 같은 분이 있지 않으니, 어찌 태공太公이 공자孔子와 대등할 수 있겠는가.
옛날에 군대가 출동하면
注+[釋義]발發은 징발함을 이른다. 대사도大司徒에게 명하여 군사들에게 수레를 몰고 갑옷을 입는 방법을 가르치고, 다리와 팔뚝을 걷어붙이고
注+[頭註]나臝는 나裸와 통하니, 옷을 벗어 팔다리를 드러내는 것은 승부를 결정지어 무용武勇을 보이고자 한 것이다. 활 쏘고 말 타는 것을 익히며, 이미 이루어진 계책을 받아 출정했다가 돌아와 적의
수급首級을 바치는 것을
注+[釋義]괵馘은 때려잡은 자의 왼쪽 귀이다. [頭註]수성受成은 출병할 적에 학궁學宮에서 군대의 계책을 정하는 것이요, 헌괵獻馘은 전쟁에서 돌아왔을 적에 학궁學宮에서 석전제釋奠祭를 지내고 적의 수급首級을 바치는 것이다. 학궁에서 행하지 않음이 없었으니, 이렇게 하는 까닭은
예의禮義를 먼저 하고
용력勇力을 뒤로 하고자 해서였다.
군자君子가 용력勇力만 있고 의義가 없으면 난을 일으키고 소인小人이 용력勇力만 있고 의義가 없으면 도적질을 하니, 만약 오로지 용력勇力만을 가르치고, 그들로 하여금 예의를 알지 못하게 한다면 무슨 짓인들 하지 않겠는가.
손무孫武와
오기吳起注+[頭註]손오孫吳는 손빈孫臏과 오기吳起이다. 이후로 모두
용력勇力으로 서로 이기기를 다투고 속임수로 서로 높였으니,
注+[頭註]저사상고狙詐相高는 각각 권모술수를 높이는 것이니, 병법가兵法家와 권모가權謀家의 부류가 이처럼 교묘하게 속이는 계책을 사용함을 말한다. 어찌
성현聖賢에 나열하여
무武라고 이를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도리어 다시 속여 끌어다가 십철十哲의 조목에 짝을 맞추어 후세 학자들의 스승으로 삼았으니, 만약 태공太公이 영혼이 있다면 반드시 이들과 함께 제사를 받는 것을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