春正月
에 改年曰載
注+[釋義]載는 音宰니 年也라 法堯舜時名年曰載하니라 라하다
禮部尙書席建侯 爲河北黜陟使
注+[釋義]黜은 降也요 陟은 升也라 하야 稱祿山公直
이어늘 李林甫, 裴寬
이 皆順旨稱其美
하니 二人
이 皆上所信任
이라
○ 初
에 武惠妃
注+[附註]武惠妃는 武攸止女也라 王皇后廢에 進冊惠妃하고 遂專寵하야 欲立爲后한대 衛史潘好禮上疏曰 禮에 父母讐는 不共戴天하고 春秋에 子不復讐면 不子也하니이다 陛下欲以武氏爲后하시니 何以見天下士니잇고 妃之再從叔三思와 從父延秀가 皆干紀亂常하야 天下共疾이니이다 夫하나니 匹夫匹婦도 尙相擇이어든 況天子乎잇가 願愼選華族하야 稱神之心하소서 今太子는 非惠妃所生이요 妃有子어늘 若一儷宸極이면 則儲位將不安하리니 古人所以諫其漸也니이다하니 乃不立하다 薨
에 上
이 悼念不已하야 後宮數千
에 無當意者
러니
或言 壽王妃楊氏
注+[頭註]은 名瑁니 玄宗第三子也라 楊氏는 故蜀州司戶楊玄琰女也라 之美
絶世無雙이라하야늘
上이 見而悅之하야 乃令妃로 自以其意로 乞爲女官하야 號太眞이라하고
更爲壽王하야 娶左衛郞將韋昭訓女하고 潛內(納)太眞宮中하다
太眞
이 肌態豐艶하고 曉音律
하고 性警穎
注+[頭註]警은 悟也요 穎은 卽也라 하야 善承迎上意
하니 不朞(期)歲
에 寵遇如惠妃
라
明皇이 殺三子, 納子婦하고 用李林甫爲相하야 使族滅無罪之人하니 三綱絶矣라
上이 從容謂高力士曰 朕이 不出長安이 近十年이로되 天下無事라
朕이 欲高居無爲하야 悉以政事委林甫하노니 何如오
對曰 天子巡守
注+[頭註]巡所守라 는 古之制也
요 且
天下大柄은 不可假人이니 彼威勢旣成
이면 誰敢復議之者
리잇고
봄 정월에
연年을 고쳐
재載라 하였다.
注+[釋義]재載는 음音이 재이니, 연年이다. 요순堯舜 때 연年을 이름하기를 재載라 한 것을 본받은 것이다.
3월에 안녹산安祿山으로 범양절도사范陽節度使를 겸하게 하였다.
예부상서禮部尙書석건후席建侯가
하북출척사河北黜陟使가 되어
注+[釋義]출黜은 강등함이요, 척陟은 올림이다. 안녹산安祿山이 공평하고 정직하다고 칭찬하자,
이임보李林甫와
배관裴寬이 모두
상上의 뜻을 따라
안녹산安祿山의 아름다운 덕을 칭찬하니,
이임보李林甫와
배관裴寬 두 사람은 모두
상上이 신임하는 자들이었다.
이로 인해 안녹산安祿山의 총애가 더욱 확고하여 흔들리지 않았다.
이전에
무혜비武惠妃가
注+[附註]무혜비武惠妃는 무유지武攸止의 딸이다. 왕황후王皇后가 폐위되자, 지위를 올려 혜비惠妃에 책봉하고 마침내 오로지 그녀를 총애하여 그녀를 세워 황후皇后로 삼고자 하였다. 위사衛史반호례潘好禮가 상소하기를 “ 《예기禮記》에 ‘부모의 원수와는 같은 하늘 아래에서 함께 살 수 없다.’고 하였고, 《춘추春秋》에 ‘자식이 복수하지 않으면 아들이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폐하께서 무씨武氏를 황후皇后로 삼고자 하시니, 어떻게 천하의 선비들을 보실 수 있겠습니까? 무혜비武惠妃의 재종숙再從叔인 무삼사武三思와 종부從父인 무연수武延秀가 모두 기강을 범하고 떳떳한 윤리를 어지럽혀 천하 사람들이 모두 미워하고 있습니다. 악목惡木이 그늘을 드리워도 충성스러운 선비는 그 아래에서 쉬지 않고, 도천盜泉이 넘쳐흘러도 청렴한 지아비는 그 물을 마시지 않는 법이니, 필부匹夫와 필부匹婦도 오히려 서로 가리는데, 하물며 천자天子야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바라건대 명문거족名門巨族을 신중히 선발하여 천지신명天地神明의 마음에 걸맞게 하소서. 지금 태자太子는 혜비惠妃의 소생이 아니고 혜비惠妃는 자기 아들이 따로 있는데, 만약 혜비惠妃를 한 번 황제의 배필로 삼는다면 태자太子의 자리가 장차 불안해질 것이니, 옛사람들이 이 때문에 조짐을 간한 것입니다.”라고 하니, 마침내 수왕壽王모瑁를 태자로 세우지 않았다. 죽자,
상上은 그녀를 슬피 생각하고 마지않아서 수천 명의 후궁 중에
상上의 마음에 드는 자가 없었다.
혹자가 말하기를 “
수왕壽王의
비妃인
양씨楊氏의
注+[頭註]수왕壽王은 이름이 모瑁이니 현종玄宗의 셋째 아들이다. 양씨楊氏는 고故촉주사호蜀州司戶양현염楊玄琰의 딸이다. 아름다움이 세상에 뛰어나 필적할 만한 자가 없습니다.”라고 하자,
상上이 그녀를 보고 기뻐하여 마침내 수왕壽王의 비妃로 하여금 자의自意로 여관女官이 되겠다고 청하게 해서 태진太眞이라 이름하고,
다시 수왕壽王을 위해서는 좌위 낭장左衛郞將위소훈韋昭訓의 딸에게 장가들게 한 다음 은밀히 태진太眞을 궁중에 들어오게 하였다.
태진太眞은 살결과 태도가 풍만하고 요염하며 음률에 밝고 품성이 기민하고 영특하여
注+[頭註]경警은 깨달음이요, 영穎은 바로 영탈穎脫이다. 상上의 뜻을 잘 받들고 영합하니,
기년期年이 못 되어 상에게 총애와 대우를 받음이
혜비惠妃와 같았다.
궁중宮中에서는 낭자娘子라 이름하여 무릇 예의禮儀와 체제體制를 모두 황후皇后와 같게 하였다.
“명황明皇이 세 아들을 죽이고 며느리를 아내로 들이며 이임보李林甫를 등용하여 정승으로 삼아서 죄 없는 사람을 죽여 삼족三族을 멸하게 하였으니, 삼강三綱이 끊어졌다.
이러하니 어떻게 천하를 다스릴 수 있겠는가.”
注+[頭註]위爲는 다스림이다.
상上이 조용히 고역사高力士에게 이르기를 “짐朕이 장안長安을 나가지 않은 지가 거의 10년이지만 천하가 무사하다.
짐朕이 높이 임금의 자리에 거하여 하는 일이 없고 모든 정사를 이임보李林甫에게 맡기고자 하니, 어떠한가?” 하니,
고역사高力士가 대답하기를 “천자가 천하를
순수巡狩하는 것은
注+[頭註]순수巡守는 제후諸侯가 지키는 경내境內를 천자天子가 순행하는 것이다. 옛날의 제도이고, 천하의 큰
권병權柄은 남에게 빌려 줄 수가 없으니, 저
이임보李林甫의 위엄과 권세가 이미 이루어지고 나면 누가 감히 다시 그를 의논(비난)할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상上이 기뻐하지 않으니, 고역사高力士가 이때부터 감히 천하의 일을 깊이 말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