以李抱眞
으로 爲澤潞節度副使
注+[釋義]澤潞는 卽昭義藩鎭也라 有州五하니 曰彬, 汾, 晉, 澤, 潞라 하다
抱眞以山東有變하고 上黨爲兵衝이어늘 而荒亂之餘에 土瘠民困하야 無以贍軍이라하야
乃籍民三丁
하고 選一壯者
하야 免其租徭
하고 給弓矢
하야 使農隙習射
하고 歲暮都試
注+[釋義]都試는 謂總閱試習武備也라 하야 行其賞罰
하니 比三年
에 得精兵二萬
이라
旣不費廩給하고 府庫充實하야 遂雄視山東하니 由是로 天下稱澤潞步兵하야 爲諸道最하니라
○ 吐蕃
이 遣使請和어늘 詔元載, 杜鴻漸
注+[頭註]兵部侍郞이라 하야 與盟於興唐寺
하다
上
이 問郭子儀
호되 吐蕃
이 請盟
하니 何如
오 對曰 吐蕃
이 利我不虞
注+[釋義]利는 幸이요 虞는 也니 不虞는 猶言不意也라 我不虞度이면 則彼之利라 하니 若不虞而來
면 國不可守矣
리이다
乃相繼遣河中兵하야 戍奉天하고 又遣兵巡涇原하야 以覘之하다
○ 時
에 成德節度使李寶臣
과 魏博節度使田承嗣
와 相衛節度使薛嵩
과 盧龍節度使李懷仙
이 收安史餘黨
하야 各擁勁卒數萬
하야 治兵完城하고 自署文武將吏
注+[頭註]署는 謂署置之也라 하고 不供貢賦
호되 朝廷
이 專事姑息하야 不能復制
하니 雖名藩臣
이나 羇縻
注+[頭註]羇는 馬絡頭也요 縻는 繫也라 而已
러라
○ 九月
에 僕固懷恩
이 誘回紇, 吐蕃, 吐
渾, 党項, 奴
注+[頭註]剌音이니 卽渾剌奴也라 吐谷渾이 自稱渾王이라 故로 以渾奴剌名之하니라數十萬衆
하야 俱入寇
하고 懷恩
이 又以朔方兵繼之
어늘
郭子儀使諸道節度使로 各出兵하야 以扼其衝要하니 上이 從之하다
懷恩
이 中途
에 遇暴疾而歸
라가 死於鳴沙
하니 范志誠
注+[頭註]懷恩之將이라 이 領其衆
하니라
○ 懷恩이 拒命三年에 再引胡寇하야 爲國大患호되 上이 猶爲之隱하야 前後制勅에 未嘗言其反이러니
及聞其死하고 憫然曰 懷恩이 不反이요 爲左右所誤耳라하니라
○ 丙寅에 回紇, 吐蕃이 合兵圍涇陽이어늘 子儀命諸將하야 嚴設守備而不戰하다
是時에 回紇, 吐蕃이 聞僕固懷恩死하고 爭長不相睦하야 分營而居하니 子儀知之라
回紇
이 在城西
어늘 子儀使牙將
注+[頭註]牙는 見二十六卷註하니라 李光瓚等
으로 往說之
하야 欲與之共擊吐蕃
이러니 回紇
이 不信
하고 曰 郭公
이 固在此乎
아
光瓚이 還報한대 子儀曰 今에 衆寡不敵하니 難以力勝이라
昔
에 與回紇
로 契約甚厚
하니 不若
挺身注+[頭註]挺은 直也요 特也라 往說之
니
可不戰而下也라하고 遂與數騎로 開門而出하야 使人傳呼曰 令公來라하니 回紇이 大驚이러라
執弓注矢하고 立於陳前이어늘 子儀免冑釋甲하고 投槍而進하니 回紇諸酋長이 相顧曰 是也라하고 皆下馬羅拜라
子儀亦下馬
하야 前執藥葛羅手
注+[頭註]前은 進也라 하고 讓之
注+[頭註]讓은 責也라 曰
汝回紇
이 有大功於唐
注+[頭註]大功於唐은 謂擧兵助唐하야 平安史也라 하고 唐之報汝
도 亦不薄
이어늘
奈何負約
하고 深入吾地
하야 (浸)[侵]逼
하야 棄前功
하고 結怨仇
하야 背恩德而助叛臣
하니 何其愚也오
且懷恩
이 叛君棄母注+[通鑑要解]謂懷恩阻兵汾州러니 旣而요 叛歸靈武하야 棄母於汾州也라 하니 於汝國
에 何有
리오
今吾挺身而來하야 聽汝執我而殺之하노니 我之將士必致死하야 與汝戰矣리라
藥葛羅曰 懷恩
이 欺我
하야 言天可汗
注+[頭註]見三十四卷하니 太宗因四夷之請하야 稱天可汗하니라 이 已晏駕
하고 令公
이 亦捐館
注+[頭註]不欲斥言死故로 託云捐館하니 館은 舍라 하야 中國無主
라하야늘 我是以
로 敢與之來
러니
今知天可汗在上都하시고 令公이 復摠兵於此하고 懷恩이 又爲天所殺하니 我曹豈肯與令公戰乎잇가
子儀乃說之曰 吐蕃
이 無道
하야 乘我國有亂
하야 不顧舅甥之親
注+[頭註]貞觀二十年에 以文成公主로 嫁吐蕃하니라하고 呑噬我邊鄙
注+[頭註]鄙亦邊也라 하고 焚蕩我畿甸
하니 其所掠之財
를 不可勝載
라
藥葛羅曰 吾爲懷恩所誤하야 負公誠深하니 今請爲公하야 盡力擊吐蕃하야 以謝過호리이다
回紇觀者 左右爲兩翼稍前이어늘 子儀麾下亦進한대 子儀揮手却之하고 因取酒하야 與其酋長共飮하다
子儀遺之絹三千匹하고 竟與定約而還하니 吐蕃이 聞之하고 夜引兵遁去하다
藥葛羅帥衆追吐蕃
이어늘 子儀使白元光
으로 帥精騎
하야 與之俱戰於靈臺
注+[頭註]縣名이라 西原
하야 大破之
하고 殺吐蕃萬計
하다
孔子謂 言忠信, 行篤敬이면 雖蠻貊之邦이라도 行矣라하시니
子儀輕騎見虜로되 非惟虜不敢害라 又聽其言하야 講解而去하야 賢於數十萬衆力戰之功은 惟忠信足以感動之而已矣라
積之旣久하고 行之旣著하야 名發於實而效見乎遠이면 則其音聲容貌 亦將有孚於人하나니 此回紇諸酋 所以釋兵下馬而拜者也라
在易之師曰 師貞, 丈人吉이라하니 子儀其庶幾歟인저
○ 初
에 肅宗
이 以內侍魚朝恩
으로 領神策軍使
하야 悉以其軍歸禁中
이라 然
이나 尙未得與北軍齒
注+[頭註]齒는 謂竝列如齒也라 言猶在北軍之下하니 北軍은 羽林及萬騎也라 見三十九卷丁未年註하니라 러니 至是
하야 魚朝恩
이 以神策軍
으로 從上屯苑中
하니 其勢浸盛이라 分爲左右廂
하야 居北軍之右矣
러라
이포진李抱眞을
택로절도부사澤潞節度副使로 임명하였다.
注+[釋義]택로澤潞는 곧 의 번진藩鎭이다. 다섯 개의 주州를 보유하였으니, 빈주彬州, 분주汾州, 진주晉州, 택주澤州, 노주潞州이다.
이포진李抱眞은 ‘산동山東 지방에 변란이 있고 상당上黨은 군대의 요충지인데, 흉년이 들고 난리를 겪은 뒤에 토지가 척박하고 백성들이 곤궁하여 군량을 공급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백성 3
정丁을 장부에 올리고, 이 가운데 한 명의 건장한 자를 선발하여 조세와 요역(부역)을 면제해준 다음 활과 화살을 지급하여 농한기에 활쏘기를 익히게 하고
세모歲暮(年末)에 모두 시험하여
注+[釋義]도시都試는 모두 사열하여 무비武備를 시험하고 훈련시킴을 이른다. 상벌賞罰을 시행하니, 3년 만에 정예병 2만 명을 얻었다.
그리하여 이미 국고로 지급하는 것을 허비하지 않고 또 부고府庫가 충실해져서 마침내 산동山東 지방의 으뜸이 되니, 이로 말미암아 천하가 택로澤潞의 보병을 칭하여 여러 도의 으뜸이라 하였다.
토번吐蕃이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하자,
원재元載와
두홍점杜鴻漸에게 명하여
注+[頭註]두홍점杜鴻漸은 병부시랑兵部侍郞이다. 토번吐蕃과 함께
흥당사興唐寺에서 맹약하게 하였다.
상上이
곽자의郭子儀에게 묻기를 “
토번吐蕃이 맹약을 청하니, 어떠한가?” 하니, 대답하기를 “
토번吐蕃은 우리가 적의 침략을 대비하지 않는 것을 이롭게 여기니,
注+[釋義]이利는 요행으로 여기는 것이요, 우虞는 헤아림이니 불우不虞는 불의不意라는 말과 같다. 우리가 적의 침공에 대비할 것을 헤아리지 않으면 저들의 이익인 것이다. 만약 대비하지 않고 있다가 뜻밖에 적들이 쳐들어온다면 나라를 지킬 수 없을 것입니다.” 하였다.
이에 서로 이어 하중河中의 군대를 보내어 봉천奉天을 지키게 하고, 또 군대를 보내어 경원涇原 지방을 순시하면서 엿보게 하였다.
이때에
성덕절도사成德節度使 이보신李寶臣과
위박절도사魏博節度使 전승사田承嗣와
상위절도사相衛節度使 설숭薛嵩과
노룡절도사盧龍節度使 이회선李懷仙이
안녹산安祿山과
사사명史思明의 남은 무리를 수습해서 각각 강성한 병졸 수만 명을 보유하여 군대를 다스리고 성을 완전하게 하고는 스스로
문무文武의 장수와 관리들을 임명하고
注+[頭註]서署는 서치署置(관리 임명)하는 것을 이른다. 공부貢賦를 바치지 않았으나
조정朝廷에서는 오로지
고식姑息을 일삼아서 더 이상 통제하지 못하니, 비록
번신藩臣이라고 이름하였으나 겉으로만 매여 있을
注+[頭註]기羇는 말굴레이고, 미縻는 얽어매는 것이다. 뿐이었다.
9
월月에
복고회은僕固懷恩이
회흘回紇,
토번吐蕃,
토욕혼吐谷渾,
당항党項,
노랄奴剌注+[頭註]날剌은 음이 랄이니, 바로 혼랄노渾剌奴이다. 토욕혼吐谷渾이 스스로 혼왕渾王이라 칭하였다. 그러므로 혼노랄渾奴剌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등 수십만의 병력을 유인하여 함께 쳐들어와 침략하였으며,
복고회은僕固懷恩이 또
삭방朔方의 군대를 거느리고 뒤이어 왔다.
곽자의郭子儀가 여러 도의 절도사節度使로 하여금 각각 군대를 내어 요충지를 굳게 지키게 하니, 상上이 그의 말을 따랐다.
복고회은僕固懷恩이 도중에
폭질暴疾(갑작스럽게 앓는 병)에 걸려 돌아가다가
명사鳴沙에서 죽으니,
범지성范志誠이
注+[頭註]범지성范志誠은 복고회은僕固懷恩의 장수이다. 그 무리를 거느렸다.
복고회은僕固懷恩이 황제의 명령에 항거한 3년 동안 두 번 오랑캐들을 이끌고 침략하여 나라의 큰 환란이 되었으나 상上은 오히려 그를 위해 숨겨주어서 전후에 내린 제칙制勅에 일찍이 그의 반란을 언급하지 않았었는데,
그가 죽었다는 말을 듣자 측은히 여겨 말하기를 “복고회은僕固懷恩은 배반하지 않았고 좌우의 사람들 탓에 잘못되었을 뿐이다.” 하였다.
병인일丙寅日(10월 8일)에 회흘回紇과 토번吐蕃이 병력을 연합하여 경양涇陽을 포위하자, 곽자의郭子儀가 제장諸將들에게 명하여 엄하게 수비하고 싸우지 않게 하였다.
이때 회흘回紇과 토번吐蕃은 복고회은僕固懷恩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우두머리 자리를 다투어 서로 화목하지 못해서 진영을 나누어 거처하고 있었는데, 곽자의郭子儀가 이것을 알았다.
회흘回紇의 군대가 성 서쪽에 있었는데
곽자의郭子儀가
아장牙將注+[頭註]아牙는 26권卷 아문牙門의 주註에 보인다. 이광찬李光瓚 등으로 하여금 가서 설득하여
회흘回紇과 함께
토번吐蕃을 공격하고자 하였으나
회흘回紇이 믿지 않고 말하기를 “
곽공郭公이 참으로 이곳에 있는가?
만약 과연 이 곳에 있다면 만나볼 수 있는가?” 하였다.
이광찬李光瓚이 돌아와 보고하자, 곽자의郭子儀가 말하기를 “지금 적들은 병력이 많고 우리는 병력이 적어 대적하지 못하니, 힘으로는 이기기 어렵다.
옛날에 우리가
회흘回紇과 맹약하기를 매우 친하게 하였으니, 내가 혼자 가서 설득하는 것만 못하다.
注+[頭註]정挺은 곧음이고 혼자이다.
이렇게 하면 싸우지 않고 항복시킬 수 있다.” 하고는 마침내 몇 명의 기병과 함께 성문을 열고 나가서 사람을 시켜 전달하여 고함치게 하기를 “영공令公이 오신다.” 하니, 회흘回紇이 크게 놀랐다.
그의 태수太帥 약갈라藥葛羅는 가한可汗의 아우였다.
활을 잡고 화살을 메기고 진영의 앞에 서 있었는데, 곽자의郭子儀가 투구를 벗고 갑옷을 벗고는 창을 던지고 전진하니, 회흘回紇의 여러 추장酋長들이 서로 돌아보고 말하기를 “영공令公이 맞다.” 하고는 모두 말에서 내려 늘어서서 절하였다.
곽자의郭子儀 또한 말에서 내려 앞으로 나아가
약갈라藥葛羅의 손을 잡고
注+[頭註]전前은 앞으로 나아감이다. 꾸짖기를
注+[頭註]양讓은 꾸짖음이다.
“너희
회흘回紇은
당唐나라에 큰 공이 있고
注+[頭註]당唐나라에 큰 공이 있다는 것은 군대를 일으켜 당唐나라를 도와서 안녹산安祿山과 사사명史思明을 평정하였음을 말한다. 당唐나라가 너희에게 보답한 것 또한 박하지 않은데,
어찌하여 맹약을 저버리고 우리 땅에 깊이 쳐들어와서 기현畿縣을 침략하고 핍박하여 전날의 공을 버리고 원한을 맺어 은덕恩德을 저버리고 배반한 신하(僕固懷恩)를 도우니, 어쩌면 그리도 미련한가.
복고회은僕固懷恩이 군주를 배반하고 어머니를 버렸으니,
注+[通鑑要解]군주를 배반하고 어머니를 버렸다는 것은 복고회은僕固懷恩이 분주汾州에서 군대를 믿고 있었는데, 얼마 후 배반하여 영무靈武로 돌아가면서 어머니를 분주汾州에 버림을 이른다. 너희 나라에 무슨 상관이 있는가.
지금 내가 혼자 와서 너희가 나를 붙잡아 죽이도록 맡기노니, 너희가 나를 죽이면 우리 장병들이 사력을 다하여 너희와 싸울 것이다.” 하였다.
약갈라藥葛羅가 말하기를 “
복고회은僕固懷恩이 우리들을 속여 말하기를 ‘
천가한天可汗(당나라 황제)이
注+[頭註]천가한天可汗은 34권卷에 보이니, 태종太宗이 사이四夷의 청원請願으로 인하여 자신을 천가한天可汗이라 칭하였다. 이미 승하하셨고
영공令公 또한 죽어서
注+[頭註]죽음을 곧바로 지척하여 말하려 하지 않으므로 가탁하여 연관捐館이라 하였으니, 관館은 관사이다. 중국에 군주가 없다.’ 하므로 내가 이 때문에 감히
복고회은僕固懷恩과 함께 중국에 왔었는데,
이제 천가한天可汗이 상도上都에 계시고 영공令公이 다시 이곳에서 군대를 통솔하심을 알았으며 복고회은僕固懷恩이 또 하늘에게 죽임을 당하였으니, 우리들이 어찌 영공令公과 싸우기를 즐겨 하겠습니까.” 하였다.
곽자의郭子儀가 마침내 설득하기를 “
토번吐蕃이
무도無道하여 우리나라에 난리가 있는 틈을 타서
구생舅甥간의 친함을 돌아보지 않고,
注+[頭註]구생舅甥(장인과 사위)의 친함이란 정관貞觀 20년年에 문성공주文成公主를 토번吐蕃에게 시집보냈으므로 말한 것이다. 우리의
변비邊鄙(변경)를 삼키고
注+[頭註]비鄙 또한 변방이다. 우리
기전畿甸을 분탕질하니, 그들이 노략질한 재물을 이루 다 싣고 갈 수 없을 정도이다.
이는 하늘이 너에게 주시는 것이니,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하였다.
약갈라藥葛羅가 말하기를 “우리가 복고회은僕固懷恩 탓에 잘못되어 공公을 저버림이 실로 깊으니, 지금 공을 위하여 힘을 다해 토번吐蕃을 공격해서 사과할 것을 청합니다.” 하였다.
회흘回紇의 구경하는 자들이 양 날개처럼 좌우로 나뉘어 점점 앞으로 나오자 곽자의郭子儀의 휘하 또한 앞으로 나오니, 곽자의郭子儀가 손을 저어 퇴각시키고 인하여 술을 가져다가 그 추장酋長들과 함께 술을 마셨다.
곽자의郭子儀가 비단 3천 필을 회흘回紇에 보내고 끝내 그들과 맹약을 정하고 돌아오니, 토번吐蕃이 이 소식을 듣고 밤에 군대를 이끌고 도망갔다.
약갈라藥葛羅가 군대를 이끌고
토번吐蕃을 추격하였는데,
곽자의郭子儀가
백원광白元光으로 하여금 정예 기병을 인솔하게 하여
회흘回紇과 함께
영대현靈臺縣의
注+[頭註]영대靈臺는 현縣의 이름이다. 서원西原에서
토번吐蕃과 교전하여 크게 격파하고
토번吐蕃을 죽인 것이 만 명으로 헤아려졌다.
“공자孔子께서 이르시기를, ‘말이 충신忠信하고 행실이 독경篤敬(篤厚하고 공경恭敬)하면 비록 오랑캐 나라라도 행해진다.’ 하셨다.
곽자의郭子儀가 경무장輕武裝한 기병으로 오랑캐를 만났으나, 오랑캐가 감히 해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또 그의 말을 듣고서 강해講解하고 떠나가서 수십만 명이 힘써 싸운 공功보다 나았던 것은 오직 충신忠信이 그들을 충분히 감동시켰기 때문일 뿐이다.
그러나 충신忠信은 하루 아침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쌓기를 오랫동안 하고 행한 것이 이미 드러나서 이름이 실제에 나타나고 효과가 먼 곳에 드러나면, 그 음성音聲과 용모容貌가 또한 장차 남에게 믿어지게 될 것이니, 이것이 회흘回紇의 여러 추장들이 병기를 버리고 말에서 내려서 곽자의郭子儀에게 절한 이유이다.
어찌 거짓으로 설득하여 요행僥倖을 바랄 수 있었겠는가.
《주역周易》의 사괘師卦에 이르기를, ‘군대의 출동 명분이 바르고 장인丈人(노련한 장수)이 통솔하여야 길하다.’ 하였으니, 곽자의郭子儀가 이에 가까울 것이다.”
처음에
숙종肅宗이
내시內侍인
어조은魚朝恩을
영신책군사領神策軍使로 임명하여 그 군대를 모두
금중禁中에 귀속시켰으나 아직도
북군北軍과 나란히 나열될 수가 없었는데,
注+[頭註]치齒는 나란히 나열된 것이 이[齒]와 같음을 말한 것이다. 신책군神策軍은 북군北軍의 아래에 있었으니, 북군北軍은 우림羽林과 만기萬騎의 등속이다. 39권卷 정미년丁未年(707) 천기千騎의 주註에 보인다. 이때에 이르러
어조은魚朝恩이
신책군神策軍을 이끌고
상上을 따라
원중苑中에 주둔하니, 그 형세가 점점 강성해져서
신책군神策軍을
좌상左廂과
우상右廂으로 나누어
북군北軍의 위에 있게 되었다.
- 그 후 환관들이 병권을 맡아서 끝내 당唐나라가 멸망하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