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月
에 上
이 崩
하고 德宗
이 卽位
러니 在諒陰
注+[頭註]諒은 古作梁하고 陰은 古作闇하니 謂廬也니 卽之廬也라 在諒陰은 言也니라 中
하야 動遵禮法이러라
即位之初에 餘妖未殄이러니 乃能仗郭李之精忠하고 憑諸將之戮力하야 剪除凶醜하고 克復京師하니 厥功懋矣라
然帝性仁而不勇하고 委靡太過하야 而剛斷不足하야 遂使太阿之柄으로 倒移於下라
故
로 雖能罪
하고 誅元載
나 其初亦由寵任之過
요 而其末
에 又皆未得爲盡善焉
이라
至於專事姑息하야 逐殺主帥를 命爲主帥하야 遂爲後來故事하니 綱目에 尤深咎之라
而當時之所加意者는 不過置百高座하고 講仁王經하며 作章敬寺하고 廣度僧尼하며 出盂蘭盆하야 褒贈亡僧하니 唐室大壞가 實基於此라
故로 司馬公論肅代二帝에 以爲此兩君者는 明不足以燭理하고 武不足以決疑하니
向微郭子儀之忠과 李光弼之智면 則天下已非唐有라하니 意謂是夫인저
○ 初
에 至德
注+[頭註]肅宗年號라 以後
로 天下用兵
하니 諸將
이 競論功賞
이라
故
로 官爵
이 不能無濫
이러니 及常袞爲相
에 思革其弊
하야 杜絶僥倖하야 四方奏請
을 一切不與
하고 而無所甄別
注+[頭註]甄은 察也라 하야 賢愚同滯하다
崔祐甫代之에 欲收時望하야 推薦引拔을 常無虛日하니 作相未二百日에 除官八百人이라
前後相矯
注+[頭註]矯는 之矯也니 變改也라 에 終不得其適
이러라
上이 嘗謂祐甫曰 人或謗卿所用이 多涉親故라하니 何也오
對曰 臣爲陛下하야 選擇百官에 不敢不詳愼하오니 苟平生之未識이면 何以諳其才行而用之리잇고
臣聞用人者는 無親疎新故之殊요 惟賢不肖之爲察이니 其人이 未必賢也어늘 以親故而取之면 固非公也요 苟賢矣어늘 以親故而捨之도 亦非公也라
夫天下之賢은 固非一人所能盡也니 若必待素識熟其才行而用之면 所遺亦多矣라
古之爲相者則不然하야 擧之以衆하고 取之以公하야 衆曰賢矣어든 己雖不知其詳이라도 姑用之하야 待其無功然後에 退之하고 有功則進之하며 所擧得其人則賞之하고 非其人則罰之하야 進退賞罰이 皆衆人所共然也요 己不置毫髮之私於其間하니
○ 澤州刺史李
이 上慶雲圖
注+[頭註]慶雲은 天官書에 若烟非烟이요 若雲非雲이라 郁郁紛紛하고 蕭索輪囷하니 是爲卿雲이라 亦云景雲하니 此喜氣也라하니라 卿은 音慶이라 晉天文志에 瑞氣는 一曰慶雲이니 太平之應也라하니라 어늘 詔曰 朕
이 以時和年豐으로 爲嘉祥하고 以進賢顯忠으로 爲良瑞하노니
如慶雲, 靈芝, 珍禽, 奇獸, 怪草, 異木이 何益於人이리오
○ 內莊宅使上言호되 諸州에 有官租萬四千餘斛이라한대 上이 令分給所在하야 充軍儲하다
先是
에 諸國
이 累獻馴象
注+[通鑑要解]擾習也라 安南出象處曰象山이니 歲一捕之호되 縛欄道傍하고 中爲大穽하야 以雌象前行爲媒하고 遺甘蔗於地하고 傅藥蔗上하면 雄象來食蔗라가 漸引入欄이어늘 閉其中하고 就穽中하야 敎習馴擾之하니 始甚咆哮나 穽深不可出이라 牧者以言語喩之하니 久則漸解人意也니라 하니 凡四十有二
라
上曰 象
은 費豢養
注+[通鑑要解]穀食曰豢이니 音宦이라 以穀食獸于圈中이니 牛馬曰芻요 犬豕曰豢이라 而違物性
하니 將安用之리오하고 命縱於荊山之陽
하고
及豹
注+[釋義]豹, 貀은 竝獸名이라 豹는 花如錢黑而小於虎文이요 貀은 女猾反이니 爾雅註에 似狗豹文이라 或云 似虎而黑이라하니라 鬪鷄獵犬之類
를 悉縱之
하고 又出宮女數百人
하니 於是
에 中外皆悅
이라
淄靑
注+[頭註]李正己라 軍士 至投兵相顧曰 明主出矣
시니 吾屬
이 猶反乎
아하니라
○ 先是에 劉晏, 韓滉이 分掌天下財賦하야 晏은 掌河南, 山南, 江淮, 嶺南하고 滉은 掌關內, 河東, 劍南이러니 至是하야 晏이 始兼之하니라
上
이 素聞滉
克注+[通鑑要解]詩曰 曾是掊克이라하니 謂聚斂也라 過甚이라 故
로 罷其利權
하야 出爲晉州刺史
하다
至德初에 第五琦 榷鹽以佐軍用이러니 及劉晏代之에 法益精密하야
初歲
에 入錢
이 六十萬緡
이러니 末年所入
이 逾十倍
호되 而
人不厭苦하고 大曆
注+[頭註]代宗年號라 末
에 計一歲征賦
注+[通鑑要解]征은 取也라 孟子有布縷之征과 粟米之征과 力役之征也니라 所入
하니 總一千二百萬緡
에 而鹽利居其太半
이라
以鹽爲漕傭
注+[釋義]水運曰漕요 雇直(値)曰傭이라 하니 自江淮
로 至渭橋
히 率萬斛
에 傭七千緡
이라
自淮以北
에 列置巡院
하고 擇能吏主之
하니 不煩州縣而集事
注+[頭註]集은 成也라 하니라
崔祐甫請遣使하야 慰勞淄靑將士하고 因以正己所獻錢賜之하야 使將士로 人人戴上恩하고
○ 上之在東宮也에 國子博士河中張涉이 爲侍讀이러니 卽位之夕에 召涉入禁中하야 事無大小히 皆咨之하고 明日에 置於翰林하야 爲學士하니 親重無比러라
○ 八月에 以道州司馬楊炎으로 爲門下侍郞하고 懷州刺史喬琳으로 爲御史大夫하야 竝同平章事하다
卜相於崔祐甫
한대 祐甫薦炎器業
注+[釋義]器局功業也라 하고 上亦素聞其名
이라 故
로 自遷謫中
注+[頭註]元載待炎親重無比러니 載敗에 坐貶道州司馬하니라 用之
하다
琳
은 太原人
이니 性粗率
注+[釋義]猶言疎略이라 하야 喜詼諧
注+[釋義]喜는 悅也니 悅爲詼諧也라 詼는 譏戲也요 諧는 和韻之言이라하고 無他長
이로되 與張涉善
이라
涉
이 稱其才可大用
이라한대 上
이 信涉言而用之
하니 聞者無不駭愕注+[頭註]愕은 驚也라 이러라
○ 舊制
에 天下金帛
을 皆貯於左藏大府
注+[釋義]左藏庫는 蓋起於周하니 職內는 主賦入하고 職歲는 主賦出하고 而邦布之入出은 則外府又主之하니 皆其職也라[頭註] 大府는 唐制에 掌廩藏財貨出納이라 하고 四時
로 上其數
하야 比部覆其出入
注+[頭註]比部는 掌句會內外賦斂經費俸祿之物하니라 覆은 審也라 이러니 及第五琦爲度支鹽鐵使
하니 時
에 京師
에 多豪將
하야 求取無節이라
琦不能制
하야 乃奏盡貯於大盈
注+[頭註]庫名이니 始於玄宗하니라 內庫
하고 使宦官掌之
하니 天子亦以取給爲便
이라
由是
로 以天下公賦
로 爲人君私藏
하야 有司不復得窺其多少, 校其贏縮
注+[頭註]贏은 益也라 이 殆二十年
이요 宦官領其事者 三百餘員
이라
楊炎이 頓首於上前曰 財賦者는 國之大本이요 生民之命이니 重輕安危 靡不由之니이다
是以로 前世皆使重臣掌其事호되 猶或耗亂不集이어늘 今獨使中人으로 出入盈虛하고 大臣은 皆不得知하니 政之蠹敝(弊) 莫甚於此라
請出之
하야 以歸有司
하고 (官)[宮]中歲用幾何
하야 量數奉入
이면 不敢有乏
이니 如此然後
에 可以爲政
이리이다
上이 卽日下詔하야 凡財賦를 皆歸左藏하야 一用舊式하고 歲於數中에 擇精好者三五千匹하야 進入大盈庫하다
5월에
상上이 죽고
덕종德宗이 즉위하였는데,
양음諒陰(여막) 안에 있으면서
注+[頭註]양諒은 고문古文에 양梁으로 되어 있고 음陰은 고문古文에 암闇으로 되어 있으니, 여막廬幕을 이르니, 즉 의려倚廬의 여廬이다. 양음諒陰에 있다는 것은 양음諒陰에서 거상居喪함을 말한 것이다. 모든 행동에
예법禮法을 따랐다.
“대종代宗이 어려서 난리를 만나고 군대에서 늙었다.
즉위하던 초기에 남은 재앙이 아직 다 없어지지 않았는데, 마침내 곽자의郭子儀와 이광필李光弼의 깨끗한 충성에 의지하고 여러 장수들이 힘을 다함에 의뢰해서 흉악한 무리들을 제거하고 능히 경사京師를 수복하였으니, 그 공功이 크다.
그러나 황제는 성품이 인자하기만 하고 용감하지 못하며 나약함이 너무 지나쳐서 강단剛斷이 부족하여 마침내 태아太阿의 칼자루[政柄]를 거꾸로 쥐어 아랫사람에 옮겨주었다.
이 때문에 비록 세 환관宦官을 처벌하고 원재元載를 목베었으나 처음에 또한 이들을 너무 지나치게 총애하고 중용重用하였고, 종말에도 극진히 선善하게 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오로지 고식姑息을 일삼아서 주수主帥를 축출하거나 죽인 자를 명하여 주수主帥로 삼아 마침내 후래後來의 고사故事가 되게 함에 이르렀으니,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에 더더욱 깊이 이것을 허물하였다.
당시當時에 유념한 것은 백고좌百高座를 설치하고 《인왕경仁王經》을 강講하며 장경사章敬寺를 짓고 승려僧侶와 여승女僧을 널리 도첩度牒하며 우란분盂蘭盆을 내어서 도망해온 승려僧侶를 표창해 줌에 지나지 않았으니, 당唐나라가 크게 무너짐이 실로 여기에 기인하였다.
그러므로 사마공司馬公이 숙종肅宗과 대종代宗 두 황제에 대하여 논하기를, ‘이 두 군주는 총명聰明은 이치를 밝게 보지 못하고 무武는 의심을 결단하지 못하였으니,
지난번에 만일 곽자의郭子儀의 충성과 이광필李光弼의 지혜가 없었더라면 천하天下는 이미 당唐나라의 소유가 아니었을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생각건대 이것을 말함일 것이다.”
최우보崔祐甫를 문하시랑門下侍郞 동평장사同平章事로 임명하였다.
처음에
지덕至德 연간
注+[頭註]지덕至德은 숙종肅宗의 연호年號이다. 이래로
천하天下가
용병用兵을 하니,
제장諸將들이 다투어
공功과
상賞을 논하였다.
이 때문에
관작官爵이 범람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상곤常袞이 재상이 되자 이 폐단을 개혁할 것을 생각하여 요행으로 승진하는 길을 막아서 사방의
주청奏請을 일체 들어주지 않고 선별하는 바가 없어서
注+[頭註]견甄은 살핌이다. 어진 이와 어리석은 이가 함께 적체되었다.
그러다가 최우보崔祐甫가 그를 대신하여 재상이 되자, 당시의 명망을 거두고자 하여 어느 날이고 인재를 추천하고 이끌어 발탁하지 않는 날이 없게 하니, 재상이 된 지 200일이 못되어 관직에 제수된 자가 800명이었다.
그리하여 두 재상이
전후前後로 서로 바로잡음에
注+[頭註]교矯는 교왕과직矯枉過直의 교矯이니, 바꾸고 고치는 것이다. 끝내 그 마땅함을 얻지 못하였다.
상上이 일찍이 최우보崔祐甫에게 이르기를 “사람들은 혹 경이 등용한 바가 많이 친고親故(친척과 친구)에 해당된다고 비방하니, 어떠한가?” 하니,
최우보崔祐甫가 대답하기를 “신臣이 폐하陛下를 위하여 백관百官을 선발할 적에 감히 자세하고 삼가지 않을 수 없으니, 만일 평소 알지 못하는 사람이면 어떻게 그의 재주와 행실을 알아 등용하겠습니까?” 하였다.
“내가 들으니 인재를 등용하는 자는 친소親疎와 신구新舊의 구별이 없이 오직 어진가, 불초不肖한가를 살펴야 하니, 그 사람이 반드시 어질지는 않은데 친고親故라 하여 취한다면 진실로 공정한 방법이 아니요, 만약 어진데 친고親故라 하여 버리는 것도 공정한 방법이 아니다.
천하의 어진 자는 진실로 한 사람이 다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만일 반드시 평소부터 잘 알고 그의 재주와 행실을 익숙히 알기를 기다린 뒤에야 등용한다면 버려지는 자가 또한 많을 것이다.
옛날에 재상이 된 자들은 그렇지 아니하여, 여러 사람이 천거하고 공정하게 취해서 여러 사람이 어질다고 말하면 비록 자신이 그 상세한 것을 알지 못하더라도 우선 등용해서 그가 공功이 없기를 기다린 뒤에 물리치고 공이 있으면 승진시키며, 천거한 바가 그 적임자이면 천거한 자에게 상을 주고 적임자가 아니면 천거한 자에게 벌을 주어서 진進‧퇴退와 상賞‧벌罰이 모두 여러 사람들이 함께 옳게 여기는 바이고, 재상 자신은 털끝만한 사사로움도 그 사이에 두지 않았다.
만일 이 마음을 미루어 인재를 등용한다면 어찌 어진 이를 버리고 직무를 태만히 하는 것을 걱정할 것이 있겠는가.”
택주자사澤州刺史 이안李鷃이
경운도慶雲圖를
注+[頭註]경운慶雲은 《사기史記》 〈천관서天官書〉에 “연기 같으나 연기가 아니고, 구름 같으나 구름도 아니다. 성대하고 분분하고 스산하고 높고 크니, 이것을 경운卿雲이라 한다. 또한 경운景雲이라고도 하니, 이것은 좋은 기운(구름)이다.” 하였다. 경卿은 음이 경이다. 《진서晉書》 〈천문지天文志〉에 “상서로운 기운은 첫 번째가 경운慶雲이니, 세상이 태평해질 응험(징조)이다.” 하였다. 올리자,
상上이 조서를 내리기를 “짐은 시절(기후)이 순조로워
연사年事가 풍년드는 것을 아름다운 상서로 여기고, 어진 이를 등용하고 충신을 드러내는 것을 좋은 상서로 여기노니,
경사스러운 구름과 영지靈芝와 진귀한 새와 기이한 짐승과 기이한 풀과 특이한 나무가 어찌 사람에게 유익하겠는가.
이것을 천하에 고해서 지금부터는 이런 것이 있거든 올리지 말게 하라.” 하였다.
내장택사內莊宅使가 상언하기를 “여러 주州에서 거둔 관조官租가 1만 4천여 곡斛이 있습니다.” 하니, 상上은 소재지에 나누어 주어서 군량의 저축에 충당하게 하였다.
이보다 앞서 여러 나라에서 자주 길들인 코끼리를 올리니,
注+[通鑑要解]순馴은 길들이는 것이다. 안남安南(越南)에 코끼리가 나오는 곳을 상산象山이라 하니, 해마다 한번 코끼리를 잡되 코끼리 우리를 길옆에 묶어놓고 가운데에 큰 함정을 만든 다음 암코끼리를 앞에 가게 하여 매개물로 삼고 감자甘蔗(사탕수수)를 땅에 버려 놓으며, 감자甘蔗 위에 약藥을 발라놓으면 수코끼리가 와서 감서를 먹다가 점점 유인되어 우리로 들어간다. 그러면 그 가운데를 닫고 함정 속에 넣어 코끼리를 가르치고 길들이니, 처음에는 매우 포효하나 함정이 깊어 나올 수가 없다. 코끼리를 사육하는 자가 말로 가르치니, 시간이 오래되면 점점 사람의 뜻을 알게 된다. 모두 42마리였다.
상上은 말하기를 “코끼리는 기르는 비용이 들고
注+[通鑑要解]곡식穀食을 먹는 가축(개와 돼지)을 환豢이라 하니, 음은 환이다. 곡식을 가지고 우리 가운데에서 짐승을 먹이는 것이니, 소와 말을 추芻라 하고 개와 돼지를 환豢이라 한다. 〈가두어 두면〉동물의 천성을 어기는 것이니, 장차 어디에 쓰겠는가.” 하고는
형산荊山의 남쪽에 놓아주게 하였으며,
표범과
놜貀과
注+[釋義]표豹와 놜貀은 모두 짐승의 이름이다. 표豹는 무늬가 돈[錢]과 같고 검은데 범의 무늬보다 작다. 놜貀은 녀활반女猾反(눌)이니, 《이아爾雅》의 주註에 “개와 비슷하고 표범의 무늬이다.” 하였다. 혹자는 말하기를 “호랑이와 비슷한데 검다.” 하였다. 투계鬪鷄와 사냥개 따위를 모두 놓아주고 또 궁녀 수백 명을 내보내니, 이에
중외中外가 모두 기뻐하였다.
치청淄靑의
注+[頭註]치청군淄靑軍의 절도사節度使는 이정기李正己이다. 군사들은 심지어 병기를 버리고 서로 돌아보며 말하기를 “
명주明主가 나오셨으니, 우리들이 아직도 배반한단 말인가?” 하였다.
이보다 앞서 유안劉晏과 한황韓滉이 천하天下의 재부財賦를 나누어 관장하여, 유안劉晏은 하남河南, 산남山南, 강회江淮, 영남嶺南을 관장하고, 한황韓滉은 관내關內, 하동河東, 검남劍南을 관장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유안劉晏이 처음으로 겸하였다.
상上은 평소
한황韓滉이 가렴주구가
注+[通鑑要解]부극掊克은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일찍이 부극掊克(苛斂誅求)하는 자들”이라고 하였으니, 백성에게서 취렴聚斂함을 이른다. 너무 심하다는 말을 들었으므로 그의 이권을 파하여
진주자사晉州刺史로 내보냈다.
지덕至德 초년에 제오기第五琦가 소금을 전매하여 군대의 비용을 보충하였는데, 유안劉晏이 대신하게 되자 전매하는 법이 더욱 정밀하였다.
그리하여 초년에는 수입한 돈이 60만
민緡이었는데 말년에는 수입이 열 배를 넘었으나 백성들이 싫어하고 괴로워하지 않았으며,
대력大曆注+[頭註]대력大曆은 대종代宗의 연호年號이다. 말년에는 1년에 부세로 징수한
注+[通鑑要解]정征은 취함이다. 《맹자孟子》 〈진심盡心 하下〉에 “삼베와 실에 대한 세금과 곡식에 대한 세금과 힘으로 부역하는 세금이 있다.” 하였다. 수입을 계산해 보니, 총 1천 2백만
민緡이었는데 그 중 소금의 이익이 태반을 차지하였다.
유안劉晏은 소금을 가지고
조운漕運하는 품삯으로 삼으니,
注+[釋義]물길로 운반하는 것을 조漕라 하고, 품삯을 용傭이라 한다. 강江‧
회淮로부터
위교渭橋에 이르기까지 대략 소금 1만
곡斛에 품삯이 7천
민緡이었다.
회수淮水로부터 이북에는
연로沿路에
순원巡院을 설치하고 유능한 관리를 선발하여 주관하게 하니,
주현州縣을 번거롭게 하지 않고도 일이 잘 이루어졌다.
注+[頭註]집集은 이룸이다.
이정기李正己는 상上의 위엄과 명성을 두려워하고 표문을 올려 돈 30만 민緡을 바쳤다.
상은 이것을 받고자 하였으나 기만당할까 두렵고, 이것을 물리치자니 명분이 없었다.
최우보崔祐甫가 청하기를 “사자를 보내어 치청淄靑의 장병들을 위로하고 인하여 이정기李正己가 바친 돈을 그들에게 하사해서 장병들로 하여금 사람마다 상上의 은혜를 추앙하게 하고,
또 여러 도에서 이 소식을 들으면 조정朝廷에서 재화를 중히 여기지 않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였다.
상上이 기뻐하여 따르니, 이정기李正己가 크게 부끄러워하여 복종하였다.
천하에서는 태평太平의 정치를 거의 바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였다.
상上이 동궁東宮에 있을 적에 국자박사國子博士 하중河中 장섭張涉이 시독관侍讀官이 되었었는데, 즉위卽位하는 날 저녁에 장섭張涉을 불러 금중禁中으로 들어오게 하여 크고 작은 정사 할 것 없이 모두 자문하고 다음날에 한림원翰林院에 두어 학사學士로 삼으니, 친애하고 소중히 여김이 견줄 자가 없었다.
8월에 도주사마道州司馬 양염楊炎을 문하시랑門下侍郞으로 삼고 회주자사懷州刺史 교림喬琳을 어사대부御史大夫로 삼아서 함께 동평장사同平章事에 임명하였다.
상上은 이때 막 정신을 가다듬어 나라를 잘 다스리려고 해서 관계官階의 차례를 따르지 않고 인물을 등용하였다.
재상감을
최우보崔祐甫에게 묻자,
최우보崔祐甫가
양염楊炎의 기국과 공업을
注+[釋義]기업器業은 기국器局과 공업功業이다. 천거하였고
상上 또한 평소 그의 명성을 들었으므로 좌천되어 있던 그를 등용하였다.
注+[頭註]원재元載가 양염楊炎을 친애하고 소중히 여김이 견줄 자가 없었는데, 원재元載가 패하자 양염楊炎이 도주사마道州司馬로 좌천되었다.
교림喬琳은
태원太原 사람이니, 성품이 거칠고 소략하여
注+[釋義]조솔粗率은 소략疎略이라는 말과 같다. 회해詼諧(詼謔)를 좋아하고
注+[釋義]희喜는 좋아함이니, 회해詼諧를 좋아하는 것이다. 회詼는 기롱하고 놀림이요, 해諧는 운韻에 맞는 말이다. 다른 장점이 없었으나
장섭張涉과 친하였다.
장섭張涉은 그의 재주가 크게 쓸 만하다고 칭찬하였는데,
상上이
장섭張涉의 말을 믿고 그를 등용하니, 듣는 자들이 놀라지 않는 이가 없었다.
注+[頭註]악愕은 놀람이다.
옛 제도에
천하天下의 금과 비단을 모두
좌장左藏의 큰 창고에
注+[釋義]좌장고左藏庫는 주周나라 때 시작되었으니, 직내職內는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것을 주관하고 직세職歲는 지출하는 것을 주관하였으며, 나라의 삼베의 출입은 외부外府가 또 주관하였으니, 모두 그 직책이다. [頭註]대부大府는 당唐나라 제도에 창고에 보관된 재화財貨의 출납出納을 관장하였다. 보관하고,
사시四時로 그 숫자를 올려서
비부比部에서 그 출납을
구복句覆(조사)하였는데,
注+[頭註]비부比部는 내외內外의 세금과 경비經費와 봉록俸祿의 물건을 조사하고 계산하는 일을 관장하였다. 복覆은 살핌이다. 제오기第五琦가
탁지염철사度支鹽鐵使가 되니 이때
경사京師에 호걸스러운 장수가 많아서 요구하고 취하는 것이 절도가 없었다.
제오기第五琦는 이들을 제재하지 못하여 마침내 아뢰어 이것을
대영大盈의
注+[頭註]대영大盈은 창고 이름이니, 현종玄宗 때에 시작되었다. 내고內庫에 모두 보관하고 환관을 시켜 관장하게 하니, 천자 또한 취하고 공급하는 것을 편하게 여겼다.
이로 말미암아 천하의 공적인 세금을 가지고 인군의 사사로운 창고로 삼아서
유사有司가 다시는 그 많고 적음을 엿보고 그 남고 부족함을 따지지 못한 것이
注+[頭註]영贏은 더함(남음)이다. 거의 20년이었고,
환관宦官으로서 이 일을 맡은 자가 300여 명이었다.
이들이 모두 이 가운데에서 잠식하여 또아리를 틀고 뿌리를 내려서 견고하여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양염楊炎이 상上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기를 “재부財賦라는 것은 나라의 큰 근본이요 생민生民의 목숨이니, 국가의 경중輕重과 안위安危가 여기에 말미암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전대前代에는 모두 중신으로 하여금 이 일을 관장하게 하였으나 오히려 혹 소모되고 혼란하여 제대로 모이지 못하였는데, 지금은 홀로 환관으로 하여금 내고 들이고 채우고 비우게 하며 대신大臣은 전혀 알지 못하니, 정사의 폐단이 이보다 더 심한 것이 없습니다.
청컨대 이것을 내놓아서 유사有司에게 돌리고, 궁중에서 해마다 쓰는 것이 얼마인가를 헤아려서 숫자를 헤아려 받들어 들이면 감히 궁핍함이 있지 않을 것이니, 이와 같이 한 뒤에야 제대로 된 정사를 할 수 있습니다.” 하였다.
상上은 당일로 조칙을 내려 모든 재부財賦를 다 좌장고左藏庫로 돌려서 한결같이 옛 법식을 따르고, 해마다 그 숫자 안에서 정교하고 좋은 비단 3천 필 내지 5천 필을 가려서 대영고大盈庫로 받들어 올리게 하였다.
양염楊炎이 한 마디 말로써 군주의 뜻을 바꾸니, 의논하는 자들이 칭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