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로 백 전 어치의 물건을 가지고 백성들의 수천 전 어치의 물건을 샀으며, 값을 지불하되 대부분 홍색과 자주색으로 염색한 헌옷과 낡은 비단을 한 자나 한 치쯤 찢어 주고 인하여
진봉문호전進奉門戶錢과
注+[頭註]진봉문호進奉門戶는 진봉進奉할 때에 경유하는 문호門戶를 말한다. 문호마다 모두 비용이 있으니, 한영제漢靈帝 때에 도득비道得費라고 이르는 것과 같다. 각가전脚價錢을
注+[附註]각가전脚價錢은 인원人員을 사서 진봉進奉할 물건을 메고 궁궐에 들어갈 때 드는 비용을 이른다. 어떤 농부가 나귀에다가 나무를 싣고 팔러 갔는데, 환관들이 궁시宮市를 구실삼아 이것을 빼앗고 진봉문호전進奉門戶錢을 요구하자, 농부가 말하기를 “나는 부모와 처자식이 있어서 이것을 팔아 먹고 산다. 나는 이 나무를 너희들에게 주고 나무값도 받지 못하고 돌아가는데, 너희들은 오히려 그대로 돌려보내려 하지 않으니, 나는 죽음만이 있을 뿐이다.” 하고는 마침내 환관을 구타하였다. 도로를 순찰하던 관리가 그를 붙잡아 조정에 아뢰니, 황제가 명하여 환관을 내쫒고 농부에게 비단 10필을 하사하였다. 그러나 궁시宮市를 파하지 않으니 간관諫官이 자주 간하였고, 서주절도사徐州節度使 장건봉張建封이 들어와 조회하면서 또한 자세히 아뢰었는데, 판탁지判度支 소변蘇弁이 환관들의 뜻에 맞추어 아뢰기를 “경사京師의 노는 백성 만여 가호가 정착하여 생업에 종사하지 않고 궁시宮市에 의뢰하여 공급을 받습니다.” 하니, 상上이 그 말을 믿었다. 그러므로 궁시宮市를 말할 때에 상上이 모두 따르지 않은 것이다. 요구하여, 사람들이 물건을 가지고 시장에 팔러 나갔다가 심지어 빈손으로 돌아오는 자가 있으니, 명색은
궁시宮市라 하였으나 실제로는 강탈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