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上問宰相호되 人言外間朋黨大(太)盛이라하니 何也오
何則고 朋黨은 言之則可惡요 尋之則無跡故也니이다
東漢之末에 凡天下賢人君子를 宦官이 皆謂之黨人而禁錮之하야 遂以亡國하니
夫君子는 與君子合이니 豈可必使之與小人合然後에 謂之非黨耶잇가
君子之類는 或以道德, 或以學行, 以氣節, 以議論하야 窮則相益하고 達則相推하니 可以名之曰朋이요 而不可謂之黨이라
小人之類는 或以才智, 以邪慝, 以恩(知)[私], 以勢利하야 窮則相疏하고 達則相親하니 可以名之曰黨이요 而不可謂之朋이라
然이나 小人欲害君子者는 幷二名하야 而一以目之하니
(干)[于]其時에 臨其事者 惑於眞僞賢不肖之辨하야 而聽夫牽合羅織疑似之言하야 謂所治者小人而治之者君子也나
自後世觀焉
하면 乃大相繆(謬)戾
注+[頭註]繆는 亦戾也니 又名與實爽曰繆라 라
故로 前漢之黨을 指蕭望之, 劉向, 張猛, 周堪하야 而治之者 元帝與弘恭石顯也요 後漢之黨을 指李膺, 范滂二百餘人하야 而治之者 桓靈與中常侍也요 唐之黨을 指獨孤損, (崔)[翟]遠等三十餘人하야 而治之者 朱全忠與柳燦, 李振也니 此三黨者는 係宗社存亡하야 使天下振動者也라
而高祖之臣은 皆自豐沛하고 光武諸將은 (半)[悉]出南陽하고 宣帝圖形於麒麟하고 太宗延士于瀛洲하야 于以興起治功하야 計安天下하니 又安可以其衆多而指爲朋黨耶아
然欲一二而罪之면 則君子飭躬勵操하야 鮮可瑕疵일새 惟以朋黨目之하면 則人君之暗惑忌克者必信이라
故로 朋黨一字 可以空人之國하야 至有擧網竭澤之喩焉이라
凡其謂君子者
를 曰同詘(屈)上
注+[頭註]詘은 與屈同이니 短也라 이라하고 曰同惑衆
이라하고 甚則加以民心背叛
하고 人君暗惑而忌克
이라하니 欲不信
이나 得乎
아
以憲宗有意於治
로도 事功未半
에 逸欲漸生
하야 邪說乘之
하야 遂疑君子
하야 始以朋黨疑李絳
하고 又以朋黨疑裴度
하고 而於程
, 皇甫鎛
엔 則不疑也
하니 所以然者
는 絳度數諫
하고 异鎛順從
이라
太宗이 以克己納諫으로 親致太平이로되 晩而稍怠에 遂疑魏徵阿黨하니 憲宗은 固不能免矣라
太甲師伊尹
하고 成王師周公
하고 武丁師傅
하야 所學者正
하야 心不違理
라
위박절도사魏博節度使 전흥田興에게 홍정弘正이라는 이름을 하사하였다.
상上이 재상들에게 묻기를 “사람들의 말에 ‘외간外間에 붕당朋黨이 크게 성하다.’고 하니, 어째서인가?” 하였다.
“예로부터 임금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신하들이 붕당을 하는 것보다 더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소인小人들이 군자君子를 참소하려고 하면 반드시 군자君子들이 붕당을 한다고 말합니다.
어째서인가 하면 붕당은 말하면 가증스럽고 찾아보면 자취가 없기 때문입니다.
동한東漢 말기에 천하의 현인賢人과 군자君子들을 환관宦官들이 모두 당인黨人이라고 몰아붙여 그들을 금고禁錮시켜서 마침내 나라를 망하게 하였습니다.
이는 모두 여러 소인들이 군자를 해치고자 하는 말이니,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깊이 살피소서.
군자는 군자와 서로 합하니, 어찌 군자로 하여금 소인들과 합하게 한 뒤에야 당이 아니라고 말하겠습니까?”
“내 일찍이 옛날 일을 상고하여 그 말을 더욱 확대한다.
군자의 무리는 혹은 도덕道德으로, 혹은 학행學行으로, 혹은 기절氣節로, 혹은 의론議論으로 모여서 곤궁하면 서로 유익하게 하고 영달하면 서로 미루어 주니, 이를 붕朋이라고 이름할 수는 있고 당黨이라고 이름할 수는 없다.
소인의 무리는 혹은 재주와 지혜로, 혹은 사특함으로, 혹은 은혜와 사사로움으로, 혹은 세력과 이익으로 모여서 곤궁하면 서로 소원해지고 영달하면 서로 친하니, 이를 당黨이라고 이름할 수는 있고 붕朋이라고 이름할 수는 없다.
그러나 소인들이 군자를 해치고자 하면 붕朋과 당黨 두 가지 명칭을 아울러서 한결같이 붕당朋黨이라고 지목하니,
그 당시에 그 일을 다스리는 자들이 진위眞僞와 현불초賢不肖의 구분에 현혹되어서 비슷한 말을 끌어다가 꿰어 맞추고 그물처럼 짜서 ‘다스려야 할 대상은 소인이고, 이들을 다스리는 것은 군자이다.’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후세의 입장에서 관찰하면 이는 바로
명名과
실實이 서로 뒤바뀌어 크게 잘못된 것이다.
注+[頭註]무繆도 어그러지는 것이니, 또 이름과 실상이 어그러지는 것을 무繆라 한다.
그러므로 전한前漢의 당黨으로 소망지蕭望之‧유향劉向‧장맹張猛‧주감周堪을 지목해서 이들을 다스린 자는 원제元帝와 홍공弘恭, 석현石顯이었고, 후한後漢의 당黨으로 이응李膺과 범방范滂 등 200여 명을 지목해서 이들을 다스린 자는 환제桓帝와 중상시中常侍들이었고, 당唐나라의 당黨으로 독고손獨孤損‧적원翟遠 등 30여 명을 지목해서 이들을 다스린 자는 주전충朱全忠과 유찬柳燦과 이진李振이었으니, 이 세 당黨은 종묘사직의 존망에 관계되어 천하를 진동하게 한 자들이다.
한漢나라 고조高祖의 신하는 모두 풍패豐沛에서 나왔고 광무제光武帝의 여러 장수들은 모두 남양南陽에서 나왔으며, 선제宣帝는 중흥한 공신들의 모습을 기린각麒麟閣에 그렸고 당唐나라 태종太宗은 선비들을 영주瀛洲로 맞이해서 이에 국가를 다스리는 공적을 크게 일으켜 천하를 편안히 할 것을 꾀하였으니, 또 어찌 그 무리가 많다 하여 붕당朋黨이라고 지목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한두 가지를 들어서 죄주고자 하면 군자들이 몸을 삼가고 조행을 힘써서 지적할 만한 하자가 드물기 때문에 오직 붕당을 한다고 지목하면 임금 중에 어둡고 미혹되고 시기하고 이기려는 자들이 반드시 그 말을 믿는다.
그러므로 붕당이라는 한 글자로 〈군자들을 모두 제거하여〉남의 나라를 공허하게 만들어서 ‘그물을 던져 못을 고갈시킨다.’는 비유가 있는 것이다.
소인들은 무릇 군자인 자들을 지목하여 이르기를 ‘함께 윗사람을 비방한다.’ 하고,
注+[頭註]굴詘은 굴屈과 같으니, 결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함께 사람들을 미혹하게 한다.’ 하고, 심하면 ‘민심이 배반하고 임금이 어둡고 혹하며 시기하고 능멸한다.’고 비난했다는 죄목을 가하니, 군주가 그들의 말을 믿지 않고자 하나 될 수 있겠는가.
헌종憲宗은 정치에 뜻이 있었는데도 사공事功이 절반도 이루어지기 전에 일욕逸欲이 점점 생겨나 간사한 말이 그 틈을 타고 일어나서 마침내 군자들을 의심하여 처음에는 붕당으로 이강李絳을 의심하고 또다시 붕당으로 배도裴度를 의심하고, 정이程异와 황보박皇甫鎛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았으니, 그러한 까닭은 이강李絳과 배도裴度는 자주 간하였고 정이程异와 황보박皇甫鎛은 순종하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헌종憲宗은 절로 당黨의 무리에 빠져서 스스로 알지 못한 것이다.
태종太宗은 자신의 사욕을 이기고 간언을 받아들임으로써 친히 태평성대를 이룩하였으나 만년晩年에 점점 해이해지자 마침내 위징魏徵이 아당한다고 의심하였으니, 헌종憲宗은 진실로 이를 면하지 못하였다.
태갑太甲은 이윤伊尹을 스승으로 삼았고 성왕成王은 주공周公을 스승으로 삼았고 무정武丁은 부열傅說을 스승으로 삼아서 배운 것이 정당하여 마음이 이치를 어기지 않았다.
그러므로 먼저는 밝고 뒤에는 어두우며, 처음은 부지런하고 뒤에는 게으른 잘못이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