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에 僧孺與李德裕로 皆有入相之望이러니 德裕出爲浙西觀察使하야 八年不遷한대 以爲李逢吉排己하고 引僧孺爲相이라하야
○ 五月
에 以尙書左丞柳公
으로 爲山南東道節度使
하다
公綽
이 過鄧縣
할새 有二吏
하야 一犯贓
하고 一舞文
注+[釋義]舞文은 謂舞弄文法也라 이라
衆謂公綽
이 必殺犯贓者
라하더니 公綽判曰 贓吏犯法
은 法在
어니와 奸吏亂法
은 法
라하고 竟誅舞文者
하니라
우승유牛僧孺를 중서시랑中書侍郞 동평장사同平章事로 임명하였다.
이때 우승유牛僧孺는 이덕유李德裕와 함께 모두 조정에 들어가 재상이 될 것이라는 인망이 있었는데, 이덕유李德裕가 외직으로 나가 절서관찰사浙西觀察使가 되어 8년 동안 승진하지 못하니, 이덕유李德裕는 이봉길李逢吉이 자신을 배제하고 우승유牛僧孺를 추천하여 재상으로 삼은 것이라고 여겼다.
그리하여 우승유牛僧孺와 이덕유李德裕의 원한이 더욱 깊어졌다.
5월에 상서좌승尙書左丞 유공작柳公綽을 산남동도절도사山南東道節度使로 임명하였다.
유공작柳公綽이
등현鄧縣을 지나갈 적에
현縣에 두 아전이 있어 한 사람은
장죄贓罪(부정축재)를 범하였고 한 사람은
문법文法(법조문)을 농간하였다.
注+[釋義]무문舞文은 법조문을 농간함을 이른다.
사람들은 유공작柳公綽이 반드시 장죄贓罪를 범한 자를 죽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유공작柳公綽이 판결하기를 “부정한 관리가 장죄贓罪를 범하는 것은 국법에 나와 있지만 간사한 아전이 법조문을 어지럽히는 것은 국법에 나와 있지 않다.” 하고는 마침내 법조문을 농간한 자를 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