春三月
에 裴度薨
注+[附註]度自憲宗時罷相으로 無意世事하야 治園池于集賢里하니 有子午橋, 綠野堂이라 與詩人觴詠하니라 하다
上
이 怪度無
하야 問其家
하야 得半藁
하니 以儲嗣未定爲憂
하고 言不及私러라
度身貌不踰中人호되 而威望이 遠達四夷하야 四夷見唐使하면 輒問度老少用捨하야
○ 十一月
에 上
이 有疾
이러니 少間
에 坐思政殿
하야 召當直學士周
하야 賜之酒
하고 因問曰 朕
이 可方前代何主
오
對曰 陛下는 堯舜之主也니이다 上曰 朕이 豈敢比堯舜이리오
上曰 赧, 獻
은 受制於彊諸侯
注+[頭註]謂秦昭襄, 魏曹操라 어니와 今朕
은 受制於家奴注+[頭註]家奴는 宦官이라 하니 以此言之
하면 朕殆不如
라하고 因
泣下襟이어늘 墀
伏地流涕라
봄 3월에
배도裴度가 죽었다.
注+[附註]배도裴度는 헌종憲宗 때 재상에서 파면된 뒤로 세상일에 뜻이 없어 집현리集賢里에 전원과 연못을 만드니, 자오교子午橋와 녹야당綠野堂이 있었다. 여기에서 시인詩人들과 술을 마시고 시를 읊었다.
상上은 배도裴度가 올린 유표遺表가 없는 것을 괴이하게 여겨 그의 집안 사람에게 물어서 절반쯤 쓴 유표遺表의 초고草藁를 얻어보니, 태자를 정하지 못한 것을 걱정하였고 사사로운 일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배도裴度는 신체와 용모가 중등인中等人을 넘지 않았으나 위엄과 명망이 멀리 사방 오랑캐들에게까지 도달해서 사방 오랑캐들이 당나라 사신을 보면 그때마다 배도裴度의 노쇠하고 젊음과 쓰여지고 버려짐을 물었다.
그리하여 곽자의郭子儀처럼 그 몸이 국가의 안위安危에 관계된 것이 20여 년이었다.
11월에 상上이 병환이 있었는데, 병환이 좀 덜하자 사정전思政殿에 앉아 당직 학사學士인 주지周墀를 불러 술을 하사하고 인하여 “짐은 전대前代의 어느 임금에게 비할 만한가?” 하고 물었다.
주지周墀가 대답하기를 “폐하는 요堯‧순舜과 같은 군주입니다.” 하니, 상上이 말하기를 “짐이 어찌 감히 요堯‧순舜에게 견주겠는가.
내가 경에게 물은 것은 주周나라 난왕赧王과 한漢나라 헌제獻帝와 비교하여 어떠한가이다.” 하였다.
주지周墀가 놀라며 말하기를 “저들은 망한 나라의 군주이니, 어찌 성덕聖德과 견줄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상上이 말하기를 “
난왕赧王과
헌제獻帝는 강한 제후들에게 제재를 받았지만
注+[頭註]강한 제후에게 제재를 받았다는 것은, 난왕赧王은 진秦나라 소양왕昭襄王에게 제재를 받았고, 헌제獻帝는 위魏나라 조조曹操에게 제재받은 일을 가리킨다. 지금 짐은
가노家奴(환관)들에게 제재를 받고 있으니,
注+[頭註]가노家奴는 환관宦官이다. 이것을 가지고 말한다면 짐은 그들만 못하다.” 하고 인하여 눈물을 흘려 옷깃을 적시니,
주지周墀가 땅에 엎드려 눈물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