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尉仇士良等
이 立穎王
注+[附註]文宗이 嘗立敬宗子成美하야 爲太子러니 宦者以立不由己라하야 廢之하고 立穎王하야 改名炎하고 殺成美하니라 하야 爲皇太弟
하니 是爲武宗
이러라
○ 九月에 以德裕로 爲門下侍郞同平章事하니 德裕入謝하고 言於上曰
致理之要는 在於辨群臣之邪正하니 夫邪正二者는 勢不相容이라
正人은 指邪人爲邪하고 邪人도 亦指正人爲邪하나니 人主辨之甚難이라
臣以爲 正人은 如松柏하야 特立不倚하고 邪人은 如藤蘿하야 非附他物이면 不能自起라
故로 正人은 一心事君하고 而邪人은 競爲朋黨이니이다
先帝深知朋黨之患이나 然所用이 卒皆朋黨之人이니 良由執心不定故로 姦邪得乘間而入也니이다
夫宰相
이 不能人人忠良
하야 或爲欺罔
注+[頭註]罔은 與誷通하니 欺也라 하니 主心始疑
하야 於是
에 旁詢小臣
하야 以察執政
하나니
如德宗末年에 所聽任者는 惟裴延齡輩요 宰相은 署敕而已니 此는 政事所以日亂也니이다
陛下誠能愼擇賢才하야 以爲宰相호되 有姦罔者어든 立黜去之하시고 常令政事로 皆出中書하야 推心委任하시고 堅定不移하시면 則天下何憂不理哉리잇고
先帝於大臣에 好爲形迹하사 小過를 皆含容不言하야 日累月積하야 以至禍敗하니이다
玆事大誤
하니 願陛下以爲戒
하사 臣等有罪
어든 陛下當面詰之
하시고 事苟無實
이어든 得以辨明
하시며 若其有實
하야 辭理自窮
이어든 小過則容其
改
하고 大罪則加之誅譴
하소서
太和之初
에 出宮女
하고 放鷹犬
하고 冗食
하고 策制擧
하며 戒宦者衣羅
하고 禁獻奇巧, 織纖麗
하야 凡前代宦官女子, 奢慾聚斂, 神仙浮屠之事
를 纖毫無有
하니 可謂賢矣
라
然이나 仁而少斷하야 委靡不立하니 議者以此少之라
嘗以累世變起禁闥
이라하야 尤側目於中官
하야 志欲除之
나 而任用非人
하야 欲以一朝譎詐之謀
로 剪除累世膠固之患
이라가 卒至
血禁門
하고 積尸省地
라
公卿大臣
이 死牢戶
하고 連頸赴戮
하며 天子陽
縱酒
하고 飮泣呑氣
하야 自比赧獻
하니 可悲也夫
인저
중위中尉仇士良 등이
영왕穎王을 세워
注+[附註]문종文宗이 일찍이 경종敬宗의 아들 이성미李成美를 태자太子로 세웠는데, 환관들이 태자를 세운 것이 자신들에게서 나오지 않았다 하여 태자를 폐위하고 영왕穎王 이전李瀍을 세워 이름을 염炎으로 고치고 성미成美를 죽였다. 황태제皇太弟로 삼으니, 이가
무종武宗이다.
9월에 이덕유李德裕를 문하시랑門下侍郞 동평장사同平章事로 임명하니, 이덕유李德裕가 조정에 들어와 사은謝恩하고 상上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훌륭한 정치를 이룩하는 요점은 여러 신하들의 간사함과 바름을 분별하는 데에 달려 있으니, 간사함과 바름 이 두 가지는 형세가 서로 용납하지 못합니다.
바른 사람은 간사한 사람을 가리켜 간사하다고 하고 간사한 사람도 바른 사람을 가리켜 간사하다고 하니, 군주가 그것을 분별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신이 생각하건대 바른 사람은 소나무와 측백나무와 같아 꼿꼿이 서서 다른 물건에 의지하지 않고, 간사한 사람은 등나무와 여라女蘿와 같아서 다른 물건에 붙지 않으면 스스로 일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바른 사람은 한 마음으로 군주를 섬기고, 간사한 사람은 다투어 붕당을 하는 것입니다.
선제先帝께서는 붕당朋黨의 폐해를 깊이 아셨으나 등용한 것이 마침내 모두 붕당朋黨한 사람이었으니, 이는 마음가짐이 정해지지 못했기 때문에 간사한 자들이 그 틈을 타고 들어온 것입니다.
재상宰相이 사람마다
충량忠良하지 못하여 혹은 군주를
기망欺罔하기도 하니,
注+[頭註]망罔은 망誷과 통용되니, 속이는 것이다. 군주의 마음에 처음으로 의심하기 시작하여 이에
소신小臣들에게 널리 물어서
집정대신執政大臣을 살핍니다.
예컨대 덕종德宗 말년에 황제가 신임한 자는 오직 배연령裴延齡의 무리였고 재상은 칙서에 서명만 할 뿐이었으니, 이것이 정사가 날로 혼란해진 까닭입니다.
폐하陛下께서 진실로 어질고 재주 있는 사람을 신중히 선발하여 재상을 삼으시되 간사하고 기망欺罔하는 자가 있으면 당장 쫒아내어 제거하시고 항상 정사로 하여금 모두 중서성中書省에서 나오게 하여, 마음을 미루어 위임하시고 굳게 정하여 옮기지 않으시면 천하가 어찌 다스려지지 않음을 근심하겠습니까?”
“선제先帝께서는 대신들에게 형적形迹(겉치레)을 내기를 좋아해서 작은 허물을 모두 포용하고 말씀하지 아니하여 날로 쌓이고 달로 쌓여서 화禍와 패망함에 이르렀습니다.
이 일이 크게 잘못되었으니,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이를 경계하시어 신 등이 죄가 있거든 폐하께서는 대면하여 힐책하시고, 일이 만약 사실이 없으면 분변하여 밝히게 하시며, 만약 실제로 있는 일이어서 말과 논리가 스스로 궁하거든 작은 허물은 고치도록 용납하시고 큰 죄는 주벌과 견책을 가하소서.
이와 같이 하면 군주와 신하 사이에 의심과 틈이 없을 것입니다.”
“문종文宗은 공손하고 검소하고 유아儒雅함이 천성天性에서 우러나왔다.
태화太和 초년에 궁녀宮女를 내보내고 사냥하는 매와 사냥개를 방출하였으며, 쓸데없이 녹봉을 먹는 자들을 줄이고 책문策文으로 과거시험을 치렀으며, 환관宦官들이 비단옷을 입는 것을 경계하고 기이한 재주를 바치거나 가늘고 고운 비단을 짜는 것을 금하여, 모든 전대前代의 환관宦官과 여색女色, 사욕奢慾과 취렴聚斂, 신선神仙과 부도浮屠(불교) 등의 일을 털끝만큼도 일삼음이 없었으니, 어질다고 말할 만하다.
그러나 인자하기만 하고 결단력이 부족해서 나약하여 자립하지 못하였으니, 의논한 자들이 이 때문에 부족하게 여긴다.
문종文宗은 일찍이 여러 대에 걸쳐 변란이 궁중宮中에서 일어났다 하여 중관中官(宦官)을 특히 미워해서 이들을 제거하려는 뜻을 품었으나 나쁜 사람을 임용하여 하루아침 간사한 속임수를 써서 여러 대에 고질이 된 우환을 제거하고자 했다가 끝내 궁문宮門에 유혈流血이 낭자하고 대성臺省에 시신이 쌓이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공경公卿과 대신大臣이 감옥문에서 나란히 죽어가고 목을 연하여 죽음에 나아갔으며, 천자天子는 거짓으로 벙어리가 되어 술을 퍼마시고 눈물을 흘리면서 숨을 삼켜 스스로 주周나라 난왕赧王과 후한後漢의 헌제獻帝에 견주었으니, 참으로 가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