春
에 沙陁兵馬使李國昌之子克用
이 起兵
하야 殺大同防禦使
注+[釋義]大同은 古雲中郡也라 漢爲鴈門郡平城縣이러니 今置大同府하니 東南至燕京八百里라 段文楚
하고 自稱留後
라하다
○ 招討使曾元裕 大破王仙芝於黃梅하야 殺五萬餘人하고 追斬仙芝하야 傳首하다
尙讓
注+[頭註]仙芝之將이라 이 仙芝餘衆
하고 歸之
하야 推巢爲主
하고 號衝天大將軍
이라하다
○ 王郢之亂
注+[附註]僖宗二年에 浙西鎭遏使王郢等이 戰有功이어늘 節度使趙隱이 賞以職名하고 而不給衣糧한대 郢等이 遂劫庫兵하고 作亂收衆하야 攻陷諸州하니 大爲人患하니라 에 臨安人董昌
이 以土團
注+[附註]土는 謂土着이요 團은 謂團結이라 代宗이 定諸州兵하야 〈皆有常數하고〉其招募에 給家糧春冬衣者를 謂之官建(健)이요 其差點土人하야 春夏歸農이라가 秋冬追集하야 給身糧醬菜者를 謂之團結이라하니라 으로 討賊有功
이어늘 補石鏡都知兵馬使
하다
봄에
사타병마사沙陁兵馬使 이국창李國昌의 아들
극용克用이 군대를 일으켜
대동방어사大同防禦使注+[釋義]대동大同은 옛날 운중군雲中郡이다. 한漢나라 때에는 안문군鴈門郡 평성현平城縣이었는데 이제 대동부大同府를 설치하니, 동남쪽으로 연경燕京까지 800리이다. 단문초段文楚를 죽이고 스스로
유후留後라 칭하였다.
초토사招討使 증원유曾元裕가 황매黃梅에서 왕선지王仙芝를 크게 격파하여 5만여 명을 죽이고, 왕선지王仙芝를 추격하여 목을 베어 수급首級을 조정에 파발마로 전달하였다.
황소黃巢가 막 박주亳州를 공격하였으나 함락시키지 못하였다.
상양尙讓이
注+[頭註]상양尙讓은 왕선지王仙芝의 장수이다. 왕선지王仙芝의 남은 무리를 거느리고
황소黃巢에게
귀부歸附하여
황소黃巢를 맹주로 추대하고
충천대장군衝天大將軍이라 칭호하였다.
왕영王郢의 난리에
注+[附註]희종僖宗 2년(875)에 절서진알사浙西鎭遏使 왕영王郢 등이 싸워서 공을 세웠는데, 절도사節度使 조은趙隱이 직명으로 상賞을 주고 옷과 양식을 지급하지 않자, 왕영王郢 등이 마침내 무기고의 병기를 탈취하고 난을 일으켜 병력을 모아 여러 주州를 공격해서 함락시키니, 백성들의 큰 폐해가 되었다. 임안臨安 사람
동창董昌이
토단병土團兵으로
注+[附註]토土는 토착민土着民을 이르고 단團은 단결을 이른다. 대종代宗이 여러 주州의 군대를 정하여 모두 정해진 수가 있게 하고 각주各州에서 이들을 불러 모집할 적에, 집안의 양식과 봄옷과 겨울옷을 공급해주는 병사를 일러 관건官健이라 하고, 토착민을 차견差遣하고 점고하여 봄과 여름에는 돌아가 농사를 짓다가 가을과 겨울에는 추집追集(召集)하여 관부官府에서 본인에게 필요한 양식과 장과 채소를 공급하는 것을 일러 단결團結이라 하였다. 적을 토벌하여 공을 세우자,
석경도지병마사石鏡都知兵馬使로 보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