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무정李茂貞이 경사京師를 침범하자 황제가 장차 태원太原으로 가려 하였는데, 한건韓建이 화주華州로 갈 것을 청하니,注+[頭註]화주華州는 한건韓建의 치소治所가 있는 곳이다. 한건韓建이 황제에게 화주華州로 갈 것을 청한 것은 마침내 이무정李茂貞을 제재하고자 한 것이다. 상上이 그의 말을 따랐다.
이무정李茂貞이 마침내 장안長安으로 쳐들어오니, 중화中和 연간注+[頭註]중화中和는 희종僖宗의 연호이다. 이래로 보수했던 궁실과 저자가 불에 타서 모두 없어졌다.
전류錢鏐가 월주越州를 점령하고 동창董昌을 목 베니,注+[附註]동창董昌은 의승절도사義勝節度使이니, 정사하는 것이 까다롭고 사나웠으며 가렴주구하여 공헌貢獻에 충당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총애하는 명령이 서로 이어졌다. 월왕越王으로 삼아줄 것을 청하였으나 조정에서 허락하지 않자, 동창董昌이 기뻐하지 않으니, 그에게 아첨하는 자가 말하기를 “월왕越王이 되는 것이 어찌 월제越帝가 되는 것만 하겠는가?” 하였다. 이에 월주越州에서 참람하게 황제를 칭하니, 황제가 제서制書를 내려 그의 관작을 삭탈하고 전류錢鏐에게 맡겨 토벌하게 하였다. 전류錢鏐를 진해절도사鎭海節度使로 임명하였다.
역주
역주1三上有丙辰二字 :
底本에는 ‘三年’이라고만 되어 있고 ‘三年’ 앞에 干支를 표시하지 않았는데, 《通鑑要解》에 근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2所葺宮室市肆 燔燒俱盡 :
黃巢의 난리에 궁실이 불에 탔는데, 中和 이래로 留守 王徽가 보수하여 대강 완비되었고, 襄王의 난리에 또다시 반란군에 의해 불태워졌는데, 僖宗이 서울로 돌아오자 다시 보수하였다. 昭宗이 石門을 나가자 거듭 화재를 만나 다시 보수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李茂貞에 의해 불태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