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茂貞
이 與朱全忠
으로 皆欲發兵
하야 迎天子
어늘 八月
에 車駕還京師
注+[頭註]朱全忠營洛陽宮하고 累表하야 欲迎駕어늘 茂貞與建聞之하고 皆懼하야 請修復宮闕하고 奉上歸長安하니라 하다
雖嘗跋扈나 而終不失臣節하니 若倚爲藩扞하야 使太原之勢常重이면 則諸鎭이 未敢窺唐也어늘
是以로 不競於汴而全忠獨强하야 呑噬諸鎭하야 卒滅唐室이라
自古로 忠者不見信하고 而所信者不忠이면 豈有不亡者乎아
이무정李茂貞과
주전충朱全忠이 모두 군대를 동원하여 천자를 맞이하려 하자, 8월에 황제의
거가車駕가
경사京師(長安)로 돌아왔다.
注+[頭註]주전충朱全忠이 낙양洛陽의 궁궐을 짓고 여러 차례 표문表文을 올려 어가御駕를 맞이하려 하자, 이무정李茂貞과 왕건王建이 이 소식을 듣고 모두 두려워하여 궁궐을 수복할 것을 청하고 상上을 받들어 장안長安으로 돌아왔다.
“당唐나라 말기에 번진藩鎭 중에 오직 이극용李克用이 가장 공이 있었다.
비록 일찍이 발호하였으나 끝내 신하의 절개를 잃지 않았으니, 만약 당唐나라가 그를 의지하여 나라를 지키는 울타리로 삼아서 태원太原의 형세로 하여금 항상 중하게 하였다면 여러 번진藩鎭이 감히 당唐나라를 엿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당唐나라가 이극용李克用을 의심하고 믿지 않았다.
이 때문에 변汴(朱全忠) 지방보다 강하지 못하고 주전충朱全忠이 홀로 강성해져서 여러 번진藩鎭을 집어삼켜 마침내 당唐나라 황실을 멸망하게 하였다.
예로부터 충성스러운 자가 신임을 받지 못하고 신임을 받은 자가 충성스럽지 못하다면 어찌 망하지 않은 자가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