初에 崔胤이 與上으로 密謀盡誅宦官하니 宦官이 益懼라
上이 自華州還으로 忽忽不樂하야 多縱酒하고 喜怒不常하니 左右尤自危라
於是
에 中尉劉季述, 王仲先
과 樞密使王彦範, 薛齊
等
이 陰謀廢立
注+[附註]上이 獵苑中이라가 夜醉歸하야 手殺黃門侍女數人하니라 明日에 宮門不開어늘 季述이 率禁兵하고 破門入하야 陳兵殿庭하고 請太子監國하니라 하고 乃引兵
하야 突入宣化門
하다
季述
이 進曰 陛下厭倦大寶
이실새 中外群情
이 願太子監國
하니 請陛下保頤東宮
注+[頭註]頤는 養也니 言於少陽院自保養也라 하소서하고
乃扶上하야 與后同輦하니 嬪御侍從者 纔十餘人이라
適少陽院
하니 季述
이 以銀檛
注+[頭註]銀捶也라 本傳에 以所持釦杖이라하니라 釦는 音口니 金飾也라 畫地
하야 數上罪數十
하고 乃鎖其門
하야 鎔鐵錮之
注+[釋義]錮는 音固니 鑄塞之也라 하고 穴墻
注+[釋義]謂穿墻爲穴也라 하야 以通飮食
하다
季述等이 矯詔하야 令太子裕로 監國하고 尋使卽皇帝位하다
朱全忠이 聞亂하고 至大梁하니 季述이 遣其養子希度하야 詣全忠하야 許以唐社稷輸之라
李振
注+[頭註]天平節度副使라 이 勸全忠誅季述
이어늘 全忠
이 乃囚希度
하고 遣振
하야 如京師詗事
注+[頭註]詗은 休正反이니 伺候采察之名이라 러니 崔胤
이 密遣人
하야 說神策指揮使孫德昭
하야 誅季述等
하다
故로 各倚强藩하야 以爲外援하고 而岐汴亦憑宦臣宰相하야 以制朝廷이라
故로 胤召全忠하고 而全誨劫帝西幸하니 唐室之亡은 由南北司相呑滅하야 而人主受其禍니
최윤崔胤을 문하시랑門下侍郞 동평장사同平章事로 임명하여 조정의 정사를 오로지 결정하게 하였다.
처음에 최윤崔胤이 상上과 함께 은밀히 환관들을 다 죽일 것을 모의하니, 환관들이 더욱 두려워하였다.
상上이 화주華州로부터 돌아온 뒤로 실의에 빠지고 즐겁지 않아서 술을 많이 마시고 기쁨과 노여움이 일정하지 않으니, 좌우의 신하들이 더욱 스스로 위태롭게 여겼다.
이에
중위中尉인
유계술劉季述,
왕중선王仲先과
추밀사樞密使인
왕언범王彦範,
설제악薛齊偓 등이 은밀히 황제를 폐위하고 새로 세울 것을 모의하고는
注+[附註]상上이 상림원上林苑에서 사냥을 하다가 한밤중에 술에 취하여 돌아와서 황문黃門(宦官)과 시녀侍女 몇 명을 직접 죽였다. 다음날 궁궐문이 열리지 않자, 유계술劉季述이 금병禁兵을 거느리고 궁궐문을 부수고 들어가 병사들을 대궐의 뜰에 진열하고 태자太子에게 감국監國할 것을 청하였다. 마침내 군대를 이끌고
선화문宣化門으로 돌입하였다.
유계술劉季述이 나아가 말하기를 “폐하께서
대보大寶(천자의 자리)를 싫어하여 권태를 느끼시므로
중외中外의
민심民心이
태자太子가
감국監國하기를 원하니, 청컨대 폐하께서는
동궁東宮에서 몸을
보양保養하여
천수天壽를 누리소서.” 하고는
注+[頭註]이頤는 기름이니, 소양원少陽院에서 스스로 몸을 보호하여 기름을 말한다.
마침내 상上을 부축하여 황후와 함께 연輦을 타게 하니, 빈어嬪御와 시종하는 자가 겨우 십여 명이었다.
상上이
소양원少陽院으로 가니,
유계술劉季述이 은채찍으로
注+[頭註]은과銀檛는 은채찍이다. 유계술劉季述의 본전本傳에 ‘이소지구장以所持釦杖(쥐고 있던 금테를 두른 지팡이)”이라고 하였다. 구釦는 음이 구이니, 금으로 장식한 것이다. 땅에 그으면서
상上의 죄 수십 가지를 열거하고 마침내
소양원少陽院의 문을 자물쇠로 잠근 다음 쇳물을 부어 자물쇠를 봉함하고
注+[釋義]고錮는 음이 고이니, 쇳물을 부어 구멍을 막은 것이다. 담장에 구멍을 뚫어서
注+[釋義]혈장穴墻은 담장을 뚫어서 구멍을 낸 것을 이른다. 음식을 통하게 하였다.
유계술劉季述 등이 황제의 조칙을 사칭하여 태자太子 이유李裕로 하여금 감국監國하게 하고, 얼마 후 황제에 즉위하게 하였다.
주전충朱全忠이 난리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대량大梁에 이르니, 유계술劉季述이 그의 양자인 유희도劉希度를 주전충朱全忠에게 보내어 당唐나라 사직社稷을 그에게 바칠 것을 허락하였다.
이진李振이
注+[頭註]이진李振은 천평절도부사天平節度副使이다. 주전충朱全忠에게
유계술劉季述을 죽일 것을 권하자,
주전충朱全忠은 마침내
유희도劉希度를 가두고
이진李振을 보내어
경사京師에 가서 일을 염탐하게 하였는데,
注+[頭註]형詗은 휴정반休正反(형)이니, 엿보고 살피는 것의 명칭이다. 최윤崔胤이 은밀히 사람을 보내어
신책지휘사神策指揮使 손덕소孫德昭를 설득해서
유계술劉季述 등을 죽였다.
“최윤崔胤이 본래 한전회韓全誨와 틈이 있었다.
그러므로 최윤崔胤과 한전회韓全誨가 각각 강한 번진藩鎭에게 의지하여 외부의 원조로 삼았고, 기岐의 이무정李茂貞과 변汴의 주전충朱全忠도 환관과 재상에게 기대어 조정을 제재하였다.
그러므로 최윤崔胤은 변汴의 주전충朱全忠을 불러오고 한전회韓全誨는 황제를 위협하여 서쪽(岐)으로 가게 하였으니, 당唐나라가 멸망한 것은 남사南司와 북사北司가 서로 병탄하고 멸망시킴으로 말미암아 군주가 그 화禍를 받은 것이다.
어찌 장래의 영원한 감계鑑戒가 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