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정월에 주전충朱全忠이 은밀히 표문表文을 올려 ‘최윤崔胤이 권력을 독단하여 나라를 어지럽히고 군신을 이간질한다.’고 하였다.注+[頭註]최윤崔胤이 당시 사도司徒겸판육군십이위사兼判六軍十二衛事였다.
그리하여 최윤崔胤의 무리인 정원규鄭元規, 진반陳班注+[頭註]정원규鄭元規는 형부상서刑部尙書겸경조윤兼京兆尹육군제위부사六軍諸衛副使였고, 진반陳班은 위원군사威遠軍使였다. 등과 함께 모두 죽이고 아장牙將구언경寇彦卿을 보내어 표문表文을 받들어 빈기邠岐(李茂貞)의 군대가 기전畿甸을 핍박한다고 칭하고는 상上에게 낙양洛陽으로 천도할 것을 청하였다.
임술일(26일)에 황제의 거가車駕가 장안長安을 출발하자, 주전충朱全忠이 장정범張廷範을注+[頭註]장정범張廷範은 주전충朱全忠의 장수이다. 어영사御營使로 삼고 장안長安의 궁실宮室과 백사百司와 민간의 집을 부수니, 장안長安이 이로부터 마침내 폐허가 되었다.
상上이 낙양洛陽에 이르니, 주전충朱全忠이 장현휘蔣玄暉로 하여금注+[頭註]장현휘蔣玄暉는 주전충朱全忠의 심복이니, 주전충朱全忠이 그를 추밀사樞密使로 삼았다. 황제를 시해하게 하고 휘왕輝王을 황태자皇太子로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