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丙子]〈晉, 岐, 吳는 稱唐天祐十三年하고 梁貞明二年이라
春二月에 梁主屢趣(促)劉鄩하야 與晉王戰이러니 鄩兵이 大敗라
王檀
注+[頭註]匡國節度使라 이 密疏
하야 請發關西兵
하야 襲晉陽
한대 梁主從之
하야 兵至晉陽
하야 夜急攻之
하니 城幾陷者數四
라
昭義節度使李嗣昭 遣牙將石君立하야 救之하니 梁兵死傷者什二三이라
梁主聞劉鄩敗하고 又聞王檀無功하고 歎曰 吾事去矣라하니라
병자(916) - 진晉‧기岐‧오吳는 당唐나라 천우天祐 13년을 칭하였고, 양梁나라는 정명貞明 2년이다.
○ 이해에 모두 다섯 나라이고 다섯 진鎭이다. -
봄 2월에 양주梁主가 여러 번 유심劉鄩을 재촉하여 진왕晉王과 싸우게 하였는데, 유심劉鄩의 군대가 크게 패하였다.
왕단王檀이
注+[頭註]왕단王檀은 광국절도사匡國節度使이다. 은밀히 상소하여
관서關西의 군대를 징발해서
진양晉陽을 습격할 것을 청하자,
양주梁主가 그의 말을 따라 군대가
진양晉陽에 이르러서 밤중에 맹렬히 공격하니,
진양성晉陽城이 거의 함락될 뻔한 것이 서너 번이었다.
소의절도사昭義節度使 이사소李嗣昭가 아장牙將 석군립石君立을 보내어 구원하게 하니, 양梁나라 군사들 중에 죽고 부상한 자가 10분에 2, 3이었다.
왕단王檀이 군대를 이끌고 가면서 크게 노략질하고 돌아왔다.
양주梁主는 유심劉鄩이 패했다는 말을 들었고 또 왕단王檀도 공이 없이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는 한탄하기를 “내 일이 글렀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