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尉繚子直解

울료자직해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울료자직해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原注
武議者 議論用武之道也 以内有武議二字故 取名篇하니라
凡兵 不攻無過之城하고 不殺無罪之人이니 夫殺人之父兄하고 利人之財貨하고 臣妾人之 此皆盗也니라
原注
凡行兵 不攻擊無過之城하고 不誅殺無罪之人이니 夫殺戮人之父兄하고 利他人之貨財하고 臣妾他人之子女 此皆謂之盗也
兵者 所以誅暴亂, 禁不義也
兵之所加者 農不離其田業하고 不離其肆宅하고 士大夫不離其官府하나니 由其武議在於一人이라
兵不血刃而天下親焉이니라
原注
兵者 所以誅戮暴亂之人하고 禁止爲不義者也
兵之所加 使爲農者 不離去其田業하고 爲賈衒者 不離去其肆宅하고 爲士大夫者 不離去其官府하니 所以然者 由其武議在於一人이라
兵不血刃而天下親附焉이라
焚僖負覊家而斬以徇하고 是也
萬乗 農戰이요 千乗 救守 百乗 事養이니 農戰 不外索權하고 救守 不外索助하고 事養 不外索資니라
原注
萬乗之國 務農戰이요 千乗之國 務救守 百乗之國 務事養이라
萬乗之國 其地可出兵車一萬乗者 千乗之國 其地可出兵車一千乗者 百乗之國 其地可出兵車一百乗者
農戰者 且耕且戰也 救守者 修整守備也 事養者 喜於養民也
務農戰者 不外索他人之權하니 言權自足也 務救守者 不外索他人之助하니 言器自備也 務事養者 不外索他人之資하니 言財自足也
夫出不足戰하고 入不足守者 治之以市하니 市者 所以給戰守也
萬乗 無千乗之助 必有百乗之市니라
原注
夫出而器械不足以戰하고 入而軍資不足以守者 治之以交易之市 收取財貨 所以供給城守之具也
萬乗之國 若無千乗之助 必有百乗之市하니 言市亦可以取貨而供百乗之用也
凡誅者 所以明武也
殺一人而三軍震者 殺之하고 殺一人而萬人喜者 殺之하니 殺之貴大하고 賞之貴小
當殺而雖貴重이나 必殺之 是刑上究也 賞其牛童馬圉者 是賞下流也
夫能刑上究하고 賞下流하면 將之武也
人主重將하나니라
原注
人主重將하니 凡誅殺者 所以彰明威武也
誅殺一人而三軍震動者 殺之하고 殺一人而萬人喜悅者 殺之하니 殺之 貴在大 賞之 貴在小
罪當殺而雖貴重之人이라도 必殺之 是所謂刑上究也 賞及牧牛之童 養馬之人者 是賞下流也
夫能刑上究하고 賞下流하면 將之威武也
爲人主者 當重將帥니라
夫將 提鼓揮하고 臨難決戰하여 接兵角刃하니 鼓之而當이면 則賞功立名하고 鼓之而不當이면 則身死國亡이라
興亡安危 應在(抱)[枹]端이니 奈何無重將也리오
原注
夫大將 提鼓揮枹하여 臨大難하여 決戰於目前하여 使士卒 兵相接而刃相角하니 若鼓之而得其當하여 軍必勝이면 則賞功於朝하고 立名於世 鼓之而不得其當하여 軍必敗 則身死於敵而國亦亡이라
國家之興亡 士衆之安危 應效在於枹端이니 人君 奈何無重將也리오
擊鼓
夫提鼓揮(抱)[枹]하여 接兵角刃하여 君以武事成功者 臣以爲非難也라하노라
原注
夫提鼓揮枹하여 兵相接而刃相角하여 人君 用武事하여 成大功者 臣以爲非難事也
人曰 無蒙衝而攻하고 無渠答而守 是謂無善之軍이라하니 視無見하고 聽無聞 由國無市也니라
原注
(故)[古]人有曰 無而攻敵하고 無渠答而守國하니 蒙衝 攻具也 渠答 鐡蒺藜也
無此二者 是謂不善攻守之軍이라 視無所見하고 聽無所聞 由國中無市也
蒙衝蒙衝
夫市也者 百貨之官也 市賤賣貴하여 以限士人이라
人食粟一斗하고 馬食菽三斗호되 人有飢色하고 馬有瘠形 何也
市有所出而官無主也일새라
夫提天下之節制하여 而無百貨之官이면 無謂其能戰也니라
原注
夫市也者 百貨之官也 百貨之官 平估物價하여 市物之賤者하고 賣物之貴者하여 以限節士人이라
人日食粟一斗하고 馬日食菽三斗로되 人猶有飢色하고 馬猶有瘠形者 是何也
市有所出而官無主典之法也일새라
夫提携天下之節制하여 而不置主典百貨之官이면 不可謂之能戰者也
原注
○愚謂 尉繚治市之說 不過克聚斂하여 以富國強兵耳 亦商鞅之學也
後世如漢武帝時 左庶長 令吏坐市列肆하여 販物求利하고
賣貴買賤하여 使富商大賈 無所牟大利하고 而萬物不得騰踊하여 遂致天下財用豐足이라
武帝巡狩 所過賞賜金帛 巨萬計 皆足取焉이로되
而卜式因旱하여 請誅弘羊者 誠以掊克之臣 爲國斂怨이니 聖帝明王 焉肯用之리오
起兵 必爲吾所效用也 鷙鳥逐雀 有襲人之懐하고 入人之室者 非出生也 後有憚也일새니라
原注
起兵 直使士卒 甲冑之中 生蟣蝨호되 必爲我所效用者 畏將之威而不敢不盡力也
如鷙鳥之逐雀 有襲人之懐者하고 有入人之室者 非出生而願就其死 亦後有所畏憚耳
太公望 年七十 屠牛朝歌하고 賣食盟津하며 過七十餘로되 而主不聽하니 人人謂之狂夫也러니
及遇文王하여는 則提三萬之衆하여 一戰而天下定하니 非武議 安能此合也리오
太公望太公望
原注
太公望 東海上人이라
本姓姜氏 先祖嘗封於呂 又曰呂尙이라
時年七十餘歲 屠牛於朝歌하니 朝歌 紂所都也 賣食於盟津하니 盟津 卽孟津也
過七十有餘로되 而主不聽用하여 人人皆謂之狂夫
聞文王作興하고 乃西歸於周하여 釣於渭水러니
西伯出獵이라가 遇太公하고 與語大悅하여
自吾으로 望子久矣 號曰 太公望이라하고
載與俱歸하여 立爲師하니라
文王崩하고 子武王立하여 乃東伐紂할새 提三萬之衆하여 一戰而天下定하니 非太公善於武議 安能與文王武王如此之合也리오
曰 良馬有策이라야 遠道可致 賢士有合이라야 大道可明이라하니라
原注
古人有言호되 良馬有鞭策이라야 則千里之遠道 可致 賢士有合於人君이라야 治世之大道 可明이라하니라
武王伐紂 師渡盟津 右旄左鉞하니 死士三百이요 戰士三萬이라
紂之陳 億萬이요 飛廉, 惡來 身先戟斧하고 陳開百里로되 武王士民하고 兵不血刃하고 而克商誅紂 無祥異也 人事修不修而然也니라
原注
하여 身先以戟斧하고 遇戰陣 開道百里로되
周武王 乃不罷士民하고 兵不血刃하고 而紂之兵前徒倒戈하여 自相攻殺하여 遂勝商而誅紂
無他祥異也 在人事之修與不修而然也
今世將 考孤虛하고 占咸池하고 合龜兆하여 視吉凶하고 觀星辰風雲之變하여 欲以成勝立功하니 臣以爲難이라하노라
原注
今世爲將者 不修人事하여 務考孤虛하고 占咸池하고 하고 觀星辰風雲之變動하여 欲以成勝立功하니 臣以爲之難也
孤虛者 日辰不全也 是也
咸池者 陰陽家 以寅午戌月忌卯 爲咸池하고 巳酉丑月忌午 爲咸池하고 申子辰月忌酉 爲咸池하고 亥卯未月忌子 爲咸池 是也
龜兆者 用龜하여 卜其吉凶之兆也
星辰者 風雲者 審其風之逆順하고 觀其雲之形狀也
夫將者 上不制於天하고 下不制於地하고 中不制於人이니라
原注
夫將者 上不制於天時之順逆하고 下不制於地勢之險易하고 中不制於人力之強弱이라
或曰 不制於人 謂不遙制於君也 是也
蓋前說 是無敵於前이요 後說 是無主於後 於義 皆通이라
兵者 凶器也 爭者 逆德也 將者 死官也 不得已而用之하니
無天於上하고 無地於下하고 無主於後하고 無敵於前하여 一人之兵 如狼如虎하고 如風如雨하고 如雷如霆하여 震震冥冥하여 天下皆驚하나니라
原注
兵者 凶惡之器也 爭者 悖逆之德也 將者 必死之官也 聖人 不得已而用之
無天於上 卽上不制於天也 無地於下 卽下不制於地也 無主於後하고 無敵於前 卽不制於人也
以一將而提數萬之兵하여 其威之猛 如狼如虎하고 其行之疾 如風如雨하고 其聲之烈 如雷如霆이라
震震者 動之疾而不可禦也 冥冥者 謀之秘而不可測也 此所以天下聞之而皆驚焉이라
勝兵 似水하니 夫水 至柔弱者也이나 所以觸 丘陵必爲之崩 無異也
性專而觸誠也일새니라
原注
勝兵之形 有似乎水하니 夫水之性 至柔弱者也이나 有所觸이면 丘陵必爲之崩摧하니 無他奇異也 性專一而觸之誠也
今以莫之利 之堅 三軍之衆으로 有所奇正이면 則天下莫當其戰矣리라
原注
今以莫邪之鋒利 犀兕之堅固 三軍之衆으로 有所以爲奇하고 所以爲正이면 則天下諸侯莫能當其戰矣
犀兕 皆獸名이니 하고 野牛 一角青色이요 重千斤이니
其皮皆可爲甲이라
曰 擧賢用能이면 不時日而事利 明法審令이면 不卜筮而獲吉이요 貴功養勞 不禱祠而得福이라하고
又曰 天時不如地利 地利不如人和라하니 古之聖人 謹人事而已니라
原注
古人有言曰 選擧賢德之人하고 任用才能之士 不必拘以時日而事自利
修明法度하고 審察號令이면 不必用其卜筮而自獲吉이요 有功者 以爵貴之하고
有勞者 以祿養之하면 不必禱於神祠而自得福이라하니라
古人又曰 天時之順 不如地利之險이요 地利之險 不如得人心之和라하니 古之聖人 但敬謹人事而已
吳起與秦戰할새 不平隴畝하고 蓋之하여 以蔽霜露하니 如此 何也
不自高人故也니라
原注
할새 舍止之處 不平隴畝
古者爲田 一畝三畎하여 廣尺深尺하여 而播種於其中하니 畝傍高起者 爲隴이라
苗葉以上이어든隴草하여 以附苗根이면 則隴盡畝平하여 而耐風與旱也
言吳起屯營舍止之處 隴畝亦不平治하니 恐勞衆也
用樸樕하여 蓋其所居하여 以蔽霜露하니 如此 是何也
不肯自高於人也
樸樕者 叢生小木也
乞人之死 不索尊하고 竭人之力이면 不責禮하나니라
古者 介冑之士不拜 示人無己以煩也
原注
古者 介冑之士不拜於君前 示人無己煩擾也
夫煩擾於人하여 而欲乞其死命하고 竭其勇力하여 爲我之用 自古至今 未嘗聞也
將受命之日 忘其家하고 張軍宿野하면 忘其親하고而鼓하면 忘其身이니라
原注
夫將受命之日 則忘其家하니 謂不有其家也 張設三軍하여 次宿於野 則忘棄其親하니 謂不有其親也 臨敵하여 援(抱)[枹]而鼓 則忘棄其身하니 謂不有其身也
吳起臨戰하여 左右進劍한대 起曰 將 專主旗鼓爾 臨難決疑하고 揮兵指刃 此將事也
一劍之任 非將事也라하니라
原注
吳起臨戰 左右之人 進劍하여 欲起用之而戰한대
起曰 大將 專主旗鼓하여 麾之左則左하고 麾之右則右하고 鼓之進則進하며
臨大難하여 決大疑하고 揮兵指刃하여 使士卒受敵而無敗 此將之事也
若夫一劍之任 非將軍之事也라하니라
李光弼 與史思明으로 戰於河陽할새 令諸將曰
若輩望吾旗而戰호되 吾颭旗緩이면 任爾擇利 吾急颭하여 三至地 則萬衆齊一하여 死生以之 少退者하리라
及戰 廷玉 奔還이어늘 光弼驚하여 命取其首한대 廷玉曰 馬中箭이요 非敢退也라하여늘 易馬遣之하고
僕固懐恩 少却이어늘 光弼 又命取其首한대 懐恩 更前決戰이라
春秋時 晉伐齊할새 晉卻克 傷於矢하여 流血及屨호되 未絶鼓音하고 曰 余病矣로라
張侯曰 自始合으로 而矢貫余手及肘호되 余折以御하여 左輪朱殷이나
豈敢言病이리오
吾子忍之하라
師之耳目 在吾旗鼓하여 進退從之 此車一人殿之 可以集事
若之何其以病敗君之大事也리오
擐甲執兵 固卽死也 病未及死어든 吾子勉之하라하고 左并轡하고 右援枹而鼓하다
將專主旗鼓之證也
三軍成行이면 一舍而後 成三舍하니 三舍之 如決川源이라
望敵在前하고 因其所長而用之하여 敵白者 하고 赤者 赭之니라
原注
三軍 旣成行列이면 一舍而後 成三舍하니 三十里也
三舎九十里之外 如決川源하여 莫之能禦
白色土 赤色石也
吳起與秦戰할새 未合 一夫不勝其勇하여 前獲雙首而還이어늘 吳起立斬之한대
軍吏諫曰 此 材士也 不可斬이니이다 起曰 材士則是也어니와 非吾令也라하고 斬之하니라
原注
吳起與秦人戰할새 未合 一夫不勝其勇하여 踰行而前하여 獲取雙首而還이어늘 吳起立使人斬之한대
軍吏諫曰 此 材勇之士也 不可斬이니이다 起曰 材士則是也어니와 但非吾之號令이라하고 乃斬之하니라


原注
무의武議용무用武하는 방도를 의논한 것이니, 안에 ‘무의武議’ 두 글자가 있으므로 취하여 을 이름한 것이다.
무릇 군대는 잘못이 없는 을 공격하지 않고 죄 없는 사람을 죽이지 않아야 하니, 남의 부형父兄을 죽이고 남의 재화財貨를 이롭게 여기고 남의 자녀子女신첩臣妾으로 만드는 것은 모두 도둑인 것이다.
原注
무릇 군대를 출동할 적에 잘못이 없는 을 공격하지 않고 죄 없는 사람을 죽이지 않아야 하니, 남의 부형父兄을 죽이고 남의 재화財貨를 이롭게 여기고 남의 자녀子女신첩臣妾으로 만드는 것은 모두 도둑이라 이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대는 포악하고 혼란한 자를 주벌하고 롭지 못한 자를 막는 것이다.
군대를 출동하는 곳에 농민은 농사짓는 전장田庄을 떠나지 않고, 상인은 가게와 집을 떠나지 않고, 사대부士大夫는 관청을 떠나지 않으니, 이는 무의武議가 한 사람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대가 칼날에 피를 묻히지 않고도 천하天下가 친히 따르는 것이다.
原注
그러므로 군대는 포악하고 혼란한 사람을 주벌하고 롭지 못한 자를 막는 것이다.
군대를 출동하여 공격하는 나라에, 농사짓는 자들로 하여금 농사짓는 전장을 떠나지 않게 하고, 물건을 파는 장사꾼들로 하여금 가게와 집을 떠나지 않게 하고, 사대부士大夫들로 하여금 관청을 떠나지 않게 하니,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무의武議가 〈군주나 장수〉 한 사람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칼날에 피를 묻히지 않고도 천하天下가 친히 따르는 것이다.
예컨대 문공文公나라를 정벌할 적에 전힐顚頡희부기僖負覊의 집에 불을 지르자 그의 목을 베어 조리 돌리고, 나라 조빈曹彬강남江南을 점령할 적에 시장의 가게를 바꾸지 않은 것과 같은 것이다.
만승萬乗의 나라는 농사와 전투에 힘쓰고, 천승千乗의 나라는 구원하는 수비에 힘쓰고, 백승百乗의 나라는 기르는 것을 일삼으니, 농사와 전투에 힘쓰는 자는 밖으로 권세를 찾지 않고, 구원하는 수비에 힘쓰는 자는 밖으로 남의 도움을 찾지 않고, 기르는 것을 일삼는 자는 밖으로 물자를 요구하지 않는다.
原注
만승萬乗의 나라는 농사와 전투에 힘쓰고, 천승千乗의 나라는 〈자국自國을〉 구원하는 수비에 힘쓰고, 백승百乗의 나라는 〈백성을〉 기르는 것을 일삼는 데 힘쓴다.
만승萬乗의 나라는 그 땅에서 병거兵車(戰車) 1만 대가 나올 수 있는 나라요, 천승千乗의 나라는 그 땅에서 병거兵車 1천 대가 나올 수 있는 나라요, 백승百乗의 나라는 그 땅에서 병거兵車 1백 대가 나올 수 있는 나라이다.
농전農戰은 한편으로는 농사짓고 한편으로는 전투하는 것이요, 구수救守는 수비를 닦고 정돈하는 것이요, 사양事養은 백성을 기르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다.
농사와 전투를 힘쓰는 자는 밖으로 타인의 권세를 찾지 않으니 권세가 스스로 충족함을 말한 것이요, 자국自國을 구원하는 수비를 힘쓰는 자는 밖으로 타인의 도움을 찾지 않으니 병기兵器가 스스로 구비됨을 말한 것이요, 백성을 기르는 것을 일삼는 데 힘쓰는 자는 밖으로 타인의 물자를 찾지 않으니 재물이 스스로 풍족함을 말한 것이다.
군대를 출동해서는 부족하여 싸울 수 없고 들어와서는 부족하여 지킬 수 없는 경우에는 시장으로 다스려야 하니, 시장이란 전쟁하고 수비하는 물자를 공급하는 곳이다.
만승萬乗의 나라에 천승千乗 나라의 도움이 없으면 반드시 백승百乗 나라의 시장이 있어야 한다.
原注
군대를 출동해서는 병기兵器(장비)가 부족하여 싸울 수 없고 들어와서는 군수물자가 부족하여 지킬 수 없을 때에는 교역하는 시장으로 다스려야 하니, 교역하여 재화財貨를 거두고 취함은 을 수비하는 기구를 공급하는 것이다.
만승萬乗의 나라에 만약 천승千乗의 나라의 도움이 없으면 반드시 백승百乗의 나라의 시장이 있어야 하니, 시장에서도 재화財貨를 취하여 백승百乗재용財用을 공급할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무릇 주벌誅罰위무威武를 밝히기 위한 것이다.
한 사람을 죽여서 삼군三軍을 두려워 떨게 할 수 있으면 죽이고, 한 사람을 죽여서 만인萬人을 기뻐하게 하면 죽여야 하니, 죽임은 지위가 높은 사람을 죽이는 것을 하게 여기고, 은 지위가 낮은 자에게 주는 것을 하게 여긴다.
마땅히 죽여야 할 경우에 비록 귀중貴重한 자라도 반드시 죽인다면 이는 형벌刑罰이 위로 올라가는 것이요, 소를 먹이는 아이와 말을 기르는 자들에게까지 을 준다면 이는 이 아래로 흐르는 것이다.
형벌刑罰이 위로 올라가고 이 아래로 흐르게 할 수 있다면, 이는 장수가 위무威武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주君主는 장수를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이다.
原注
그러므로 군주는 장수를 소중히 여기니, 무릇 주살誅殺함은 〈장수의〉 위무威武를 밝히는 것이다.
한 사람을 죽여서 삼군三軍을 두려워 떨게 할 수 있으면 죽이고, 한 사람을 죽여서 만인萬人을 기뻐하게 하면 죽여야 하니, 사람을 죽이는 것은 지위가 높은 사람을 죽이는 것을 하게 여기고, 은 낮은 사람에게 주는 것을 하게 여긴다.
마땅히 죽여야 할 죄가 있을 때에 비록 귀중貴重한 자라도 반드시 죽인다면, 이는 이른바 ‘형벌刑罰이 위로 올라가는 것’이요, 이 소를 먹이는 아이와 말을 기르는 자들에까지 미치면 이는 이 아래로 흐르는 것이다.
형벌刑罰이 위로 올라가고 이 아래로 흐르게 할 수 있다면, 이는 장수가 위엄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주君主가 마땅히 장수를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이다.
장수는 북을 당겨 북채를 잡고 국난에 임하여 적과 결전해서 병기를 맞대고 칼날을 부딪치니, 북을 쳐서 진격하여 합당하면 에 따른 을 받고 명성을 세우며, 북을 쳐서 진격하여 합당하지 않으면 몸이 죽고 나라가 망한다.
이는 흥망興亡안위安危가 장수의 북채 끝에 달려있는 것이니, 어찌 장수를 소중히 여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原注
대장大將은 북을 당겨 북채를 잡고서 큰 난리에 임해 목전에서 적과 결전하여 병사들로 하여금 무기를 맞대고 칼날을 서로 부딪치게 하니, 만약 북을 쳐서 진격하게 하여 합당함을 얻어 군대가 승리하면 조정에서 논공論功하여 을 받고 이름을 후세에 세우며, 북을 쳐서 진격하게 하여 합당함을 얻지 못해서 군대가 패전할 수밖에 없으면 몸이 적에게 죽고 나라 또한 망한다.
이는 국가의 흥망興亡과 병사들의 안위安危에 대한 응험應驗이 장수의 북채 끝에 달려있는 것이니, 군주君主가 어찌 장수를 소중히 여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는 북을 치는 채이다.
장수가 북을 당겨 북채를 잡고서 무기를 맞대고 칼날을 부딪치게 해서 군주君主무력武力을 사용하여 을 이루는 것을, 나는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原注
장수가 북을 당겨 북채를 잡고서 〈병사들로 하여금〉 무기를 서로 맞대고 칼날을 서로 부딪치게 해서 군주가 무력武力을 사용하여 큰 을 이루는 것을, 나는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몽충蒙衝이 없이 적을 공격하고 거답渠答이 없이 수비하는 것을 일러 잘못하는 군대이다.”라고 하였으니, 보아도 보이는 바가 없고 들어도 들리는 바가 없는 것은 나라에 시장이 없기 때문이다.
原注
옛사람이 말하기를 “몽충蒙衝이 없이 적을 공격하고 거답渠答이 없이 나라를 지킨다.” 하였으니, 몽충蒙衝은 공격하는 도구이고 거답渠答철질려鐡蒺藜(마름쇠)이다.
‘이 두 가지가 없으면, 이러한 군대를 일러 공격과 수비를 잘못하는 군대라고 한다.’라고 하였으니, 보아도 보이는 바가 없고 들어도 들리는 바가 없는 것은 국중國中에 시장이 없어서 재용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시장은 백화百貨를 주관하는 곳이니, 싼 값에 구입하여 비싼 값에 팔아서 병사와 사람들의 매매를 제한한다.
사람은 하루에 한 말의 곡식을 먹으면 되고, 말은 하루에 세 말의 콩을 먹으면 되는데도, 사람들이 굶주린 기색이 있고 말이 수척한 것은 어째서인가?
시장에 물건이 나오고 있는데도 에서 이를 주관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천하天下절제節制를 주장하면서 백화百貨를 주관하는 관원이 없으면 전쟁을 잘한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原注
시장이란 〈관리가〉 백화百貨를 주관하는 곳이니, 백화百貨를 주관하는 관리는 물가를 고르게 하여 값이 싼 물건을 사고 값이 비싼 물건을 팔아서 병사와 사람들의 매매를 제한한다.
사람은 하루에 한 말의 곡식을 먹으면 되고 말은 하루에 세 말의 콩을 먹으면 되는데, 사람들이 굶주린 기색이 있고 말이 수척한 것은 어째서인가?
시장에 물건들이 나오고 있는데도 에서 주관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천하天下절제節制를 맡고서 백화百貨를 주관하는 관원을 설치하지 않으면 전쟁을 잘하는 자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原注
○내가 생각하건대 시장을 다스려야 한다는 울료자尉繚子가렴주구苛斂誅求하여 재물을 모아서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군대를 강하게 함에 불과할 뿐이니, 이 역시 상앙商鞅학설學說이다.
후세에 무제武帝 때에 좌서장左庶長 상홍양桑弘羊이 관리들로 하여금 시장에 앉아 가게를 벌여 물건을 팔아 이익을 추구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비싼 물건을 팔고 싼 물건을 사서 큰 장사꾼인 부자들로 하여금 큰 이익을 도모하지 못하게 하고, 온갖 물건의 값이 폭등하지 못하게 하여 마침내 천하天下재용財用이 풍족하게 되었다.
무제武帝천하天下순수巡狩할 적에 지나가는 곳마다 으로 하사한 과 비단이 거만巨萬으로 계산되었는데, 이것을 모두 그에게서 취하여 충족시켰다.
그런데도 복식卜式이 가뭄을 이유로 상홍양桑弘羊을 죽일 것을 청한 것은 진실로 가렴주구苛斂誅求하는 신하는 나라에 원망을 일으키기 때문이니, 성스러운 황제皇帝와 현명한 이 어찌 즐겨 이들을 등용하겠는가.
군대를 일으킬 적에 곧바로 병사들로 하여금 갑옷과 투구에서 이와 서캐가 생겨나도 오로지 나를 위하여 쓰임이 되게 해야 하니, 맹금猛禽이 참새를 쫓을 적에 참새가 사람의 품으로 들어오고 사람의 방으로 들어오는 것은, 살 곳을 벗어나고자 해서가 아니요, 뒤에 두려운 것이 있기 때문이다.
原注
군대를 일으킬 적에 곧바로 병사들로 하여금 〈갑옷과 투구를 벗지 못해〉 갑옷과 투구에서 이와 서캐가 생겨나도 오로지 〈장수인〉 나를 위하여 몸을 바쳐 쓰임이 되게 하는 것은 장수의 위엄을 두려워해서 감히 힘을 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맹금猛禽이 참새를 쫓을 적에 참새가 사람의 품으로 들어오고 사람의 방으로 들어오는 것은, 살 곳에서 벗어나 죽을 곳으로 나아가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요, 뒤에 두려워 꺼리는 것(猛禽)이 있기 때문이다.
태공망太公望은 나이 70에 조가朝歌에서 소를 도살하고 맹진盟津에서 밥장사를 하였으며, 70여 세가 지났으나 군주君主가 그의 말을 듣지 않으니, 사람마다 모두 그를 일러 ‘미친 지아비’라 하였다.
그런데 문왕文王을 만나서는 3만의 군대를 이끌고 한 번 싸워 천하天下를 평정하였으니, 무의武議가 아니면 어떻게 이처럼 의기투합할 수 있겠는가.
原注
태공망太公望동해東海 가 사람이다.
본래의 강씨姜氏인데, 선조先祖가 일찍이 땅에 봉해졌으므로 또 여상呂尙이라 하였다.
당시 나이 70여 세에 조가朝歌에서 소를 도살하여 팔았으니 조가朝歌주왕紂王이 도읍한 곳이요, 맹진盟津에서 밥을 지어 팔았으니 맹진盟津은 바로 맹진孟津이다.
70여 세가 지났으나 군주君主가 그의 말을 듣고 등용하지 아니하여, 사람마다 모두 그를 일러 ‘미친 지아비[狂夫]’라 하였다.
태공太公문왕文王이 일어났다는 말을 듣고 마침내 서쪽으로 가서 나라에 귀의하여 위수渭水 가에서 낚시질을 하였는데,
서백西伯문왕文王이 사냥을 나갔다가 태공太公을 만나 함께 이야기하고는, 크게 기뻐하여 말하기를
“우리 선군先君 태공太公(太王)으로부터 그대를 바란[望] 지가 오래되었으므로 ‘태공망太公望’이라고 하겠다.” 하고,
수레에 태우고 함께 돌아와서 세워 스승으로 삼았다.
周 文王周 文王
문왕文王이 죽고 아들 무왕武王이 즉위하여 마침내 동쪽으로 주왕紂王을 정벌할 적에 태공太公은 3만의 군대를 이끌고서 한 번 싸워 천하天下를 평정하였으니, 태공太公무의武議를 잘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문왕文王무왕武王과 이처럼 뜻이 합치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므로 이르기를 “좋은 말도 채찍이 있어야 먼 길을 갈 수 있고, 어진 선비도 뜻이 맞아야 대도大道를 밝힐 수 있다.” 한 것이다.
原注
그러므로 옛사람이 말하기를 “좋은 말도 채찍이 있어야 천 리의 먼 길을 갈 수 있고, 어진 선비도 군주君主와 뜻이 합하여야 세상을 다스리는 큰 를 밝힐 수 있다.” 한 것이다.
무왕武王주왕紂王을 정벌할 적에 군대가 맹진盟津을 건너가자 오른손에는 깃발[旄]을 잡고 왼손에는 도끼[鉞]를 잡으니, 결사적으로 싸우는 용사가 3백 명이고 전사戰士가 3만 명이었다.
주왕紂王의 진영은 병력이 억만 명이고, 비렴飛廉악래惡來가 앞장서서 세 갈래진 창과 도끼를 잡고 적진敵陣을 공격하여 백 리에 걸쳐 길을 열었으나, 무왕武王은 병사와 백성들을 피로하게 하지 않고 병기兵器의 칼날에 피를 묻히지 않고서 나라를 이기고 주왕紂王을 주벌하였으니, 이는 상서로움과 괴이함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요, 인사人事가 닦여졌느냐 닦여지지 않았느냐에 따라 그러한 것이다.
原注
무왕武王이 동쪽으로 주왕紂王을 정벌할 적에 군대가 맹진盟津을 건너가자 오른손에는 흰 깃발을 잡고 왼손에는 누런 도끼를 잡으니, 결사적으로 싸우는 용사가 3백 명이었고 전투를 잘하는 병사가 3만 명이었다.
나라 주왕紂王은 병력이 억만(십만) 명이고, 또 비렴飛廉악래惡來 두 장수가 힘이 세고 달리기를 잘하여, 몸소 앞장서서 세 갈래진 창과 도끼를 잡고 전진戰陣을 이끌 적에 백 리에 걸쳐 길을 열었다.
그러나 무왕武王이 마침내 병사와 백성들을 피로하게 하지 않고 병기兵器의 칼날에 피를 묻히지 않고서도, 주왕紂王의 병사들이 앞에 있는 군대가 창을 거꾸로 들고 〈뒤에 있는 군대를 공격하여,〉 자기들끼리 서로 공격하고 죽여서, 〈나라는〉 마침내 나라를 이기고 주왕紂王을 주벌하였다.
이는 달리 특별한 상서로움과 괴이한 조짐이 있어서가 아니요, 인사人事가 닦여졌느냐 닦여지지 않았느냐에 따라 그러한 것이다.
지금 세상의 장수들은 고허孤虛를 상고하고 함지咸池를 점치고 거북껍질의 조짐을 맞추어 길흉吉凶을 살펴보고 성신星辰과 바람과 구름의 변동을 관찰하여 이로써 승리해서 공을 세우고자 하니, 나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原注
지금 세상에 장수가 된 자들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을 닦지 않고서, 고허孤虛를 상고하고 함지咸池를 점치고 거북껍질의 조짐을 맞춤에 힘써서 길흉吉凶을 살펴보고, 성신星辰과 바람과 구름의 변동을 관찰해서 승리하여 공을 세우고자 하니, 나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고허孤虛일진日辰에 기운이 완전하지 않은 것이니, 갑자甲子의 열흘 동안에는 로 삼고 로 삼는 것과 같은 따위가 이것이다.
함지咸池음양가陰陽家들이 인월寅月(정월)‧오월午月(5월)‧술월戌月(9월)은 를 꺼린다 하여 이것을 함지咸池라 하고, 사월巳月(4월)‧유월酉月(8월)‧축월丑月(12월)은 를 꺼린다 하여 이것을 함지咸池라 하고, 신월申月(7월)‧자월子月(11월)‧진월辰月(3월)은 를 꺼린다 하여 이것을 함지咸池라 하고, 해월亥月(10월)‧묘월卯月(2월)‧미월未月(6월)은 를 꺼린다 하여 이것을 함지咸池라 하는 것이 이것이다.
귀조龜兆는 거북껍질을 사용하여 길흉吉凶의 조짐을 점치는 것이다.
성신星辰오성五星십이차十二次(위치)이고, 바람과 구름을 관찰한다는 것은 바람의 역순逆順을 살피고 구름의 형상을 관찰하는 것이다.
장수는 위로는 천시天時에 제재받지 않고, 아래로는 지형地形에 제재받지 않고, 가운데로는 사람에게 제재받지 않아야 한다.
原注
장수는 위로 천시天時순역順逆에 제재받지 않고, 아래로는 지형地形의 험하고 평탄함에 제재받지 않고, 가운데로는 인력人力의 강하고 약함에 제재받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하늘에 제재받지 않는다.’는 것은, 유유劉裕왕망일往亡日에 출병하여 나라를 이겼고, 공자公子 혜성彗星의 빗자루를 거꾸로 하고서 출전하여 나라를 이긴 것과 같은 것이다.
지형地形에 제재받지 않는다.’는 것은, 등애鄧艾음평陰平을 험하다고 여기지 않고 촉한蜀漢으로 쳐들어갔고, 조사趙奢가 길이 멀고 험하다고 여기지 않고 달려가서 나라를 격파한 것과 같은 것이다.
‘사람에게 제재받지 않는다.’는 것은, 우문태宇文泰고환高歡의 군대가 병력이 많은 것을 우려하지 않고 기이한 계책을 내어 승리를 거두고, 소왕蕭王왕심王尋군세軍勢가 성대함을 두려워하지 않고 직접 적의 중군中軍을 범한 것과 같은 것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사람에게 제재받지 않는다는 것은, 멀리 군주君主에게 제재받지 않는 것이니, 이정李靖조명詔命을 받들어 돌궐突厥을 맞이하지 않고서 힐리頡利를 격파한 것과 같은 것이다.” 하였다.
앞의 말은 앞에 대적할 자가 없는 것이요, 뒤의 말은 뒤에 제재하는 군주君主가 없는 것이니, 뜻이 모두 통한다.
그러므로 병기兵器는 흉한 기물이고, 전쟁戰爭패역悖逆하는 이고, 장수將帥는 죽는 관직이므로 부득이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위에 하늘이 없고 아래에 땅이 없고 뒤에 제재하는 군주君主가 없고 앞에 가로막는 적이 없어서, 한 사람의 군대가 이리와 같고 호랑이와 같고, 바람과 같고 비와 같고, 우레와 같고 벼락과 같아, 번개처럼 빨리 출동하고 은밀하게 계책을 숨겨서 천하天下가 모두 놀라는 것이다.
原注
그러므로 병기兵器는 흉악한 기물이고, 전쟁戰爭패역悖逆하는 이고, 장수將帥는 죽기를 기필하는 관직이므로 성인聖人이 부득이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위에 하늘이 없다.’는 것은 바로 위로 천시天時에 제재받지 않는 것이요, ‘아래에 땅이 없다.’는 것은 바로 아래로 지형地形에 제재받지 않는 것이요, ‘뒤에 〈제재하는〉 군주君主가 없고 앞에 〈가로막는〉 적이 없다.’는 것은 바로 사람에게 제재받지 않는 것이다.
수만 명의 병력을 인솔한 장수는 그 위엄의 사나움이 이리와 같고 호랑이와 같으며, 그 움직임의 신속함이 바람과 같고 비와 같으며, 그 소리의 맹렬함이 우레와 같고 벼락과 같은 것이다.
진진震震은 행동을 빠르게 하여 막을 수가 없는 것이요, 명명冥冥은 계책을 은밀히 세워 측량할 수 없는 것이니, 이 때문에 천하天下가 듣고서 모두 놀라는 것이다.
승리하는 군대는 물과 유사하니, 물은 지극히 유약한 것이나 물이 저촉하는 곳에 구릉丘陵도 반드시 무너지는 것은 다른 이유가 없다.
성질이 전일專一하여 저촉함이 진실되기 때문이다.
原注
승리하는 군대의 형세는 물과 유사하니, 물의 성질은 지극히 유약하나 저촉하면 구릉丘陵도 반드시 무너지니, 이는 다른 기이함이 있는 것이 아니요 성질이 전일專一하여 저촉하기를 진실히 하기 때문이다.
지금 막사검莫邪劍의 예리함과, 무소와 외뿔소 가죽의 견고함과, 삼군三軍의 많은 병력으로 을 적절히 운용한다면, 천하天下가 감히 그 싸움을 당할 수 없을 것이다.
原注
지금 막사검莫邪劍의 예리함과, 무소와 외뿔소의 가죽으로 만든 갑옷의 견고함과, 삼군三軍의 많은 병력으로 적절히 를 쓰고 을 쓴다면, 천하天下제후諸侯가 그 싸움을 당할 수 없을 것이다.
막야莫邪의 이름이다.
무소와 외뿔소는 모두 짐승 이름이니, 무소는 해석이 《오자직해吳子直解》에 보이고, 외뿔소는 들소이니 뿔 하나에 색깔이 푸르고 무게가 천 근이다.
이들 가죽은 모두 갑옷을 만들 수 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어진 이를 천거하고 재능才能이 있는 자를 등용하면 시일을 가리지 않고도 일이 순조롭고, 을 밝히고 명령을 자세히 살펴서 내리면 복서卜筮를 하지 않고도 함을 얻고, 이 있는 자를 하게 하고 수고한 자를 잘 길러주면 에게 기도하고 제사하지 않고도 을 얻는다.” 하였고,
또 이르기를 “천시天時지리地利만 못하고 지리地利인화人和만 못하다.” 하였으니, 옛날의 성인聖人은 사람의 일을 삼갔을 뿐이다.
原注
그러므로 옛사람이 말하기를 “어질고 이 있는 사람을 선발하여 등용하고 재능이 있는 선비를 임용하면 굳이 시일에 구애받지 않고도 일이 저절로 순조롭고,
법도法度를 닦아 밝히고 호령을 자세히 살펴 내리면 굳이 복서卜筮를 사용하지 않고도 저절로 함을 얻고, 이 있는 자를 관작官爵으로 하게 해주고
수고로움이 있는 자를 祿으로써 길러주면 굳이 신명神明의 사당에 기도하지 않고도 저절로 을 얻는다.” 하였다.
옛사람(孟子)이 또 이르기를 “천시天時함이 지형地形함의 이로움만 못하고, 지형地形함의 이로움이 인심人心함을 얻는 것만 못하다.” 하였으니, 옛날의 성인聖人은 다만 사람의 일을 공경하고 삼갔을 뿐이다.
오기吳起나라와 싸울 적에 군대를 주둔해 있으면서 이랑과 밭두둑을 평평하게 고르지 않고 작은 나무로 지붕을 덮어서 겨우 서리와 이슬을 막았으니, 이와 같이 한 것은 어째서인가?
스스로 남보다 높은 체하지 않고자 해서였다.
原注
오기吳起가 장수가 되어 나라와 싸울 적에, 주둔하여 머무는 곳에 이랑과 밭두둑을 평평하게 고르지 않았다.
옛날 밭을 만들 적에 한 이랑에 세 고랑을 만들어서 넓이가 한 자이고 깊이가 한 자로 하여 이 가운데에 씨앗을 파종하였는데, 이랑 옆에 높게 솟아난 것을 (밭두둑)이라 하였다.
의 싹이 올라오면 점점 밭두둑의 풀을 김매어서 의 뿌리에 바짝 붙이면 밭두둑이 다 없어지고 이랑이 평평해져서 곡식이 바람과 가뭄을 견디게 된다.
이는 오기吳起병영兵營을 주둔하여 머무는 곳에 이랑과 밭두둑을 또한 고르게 다스리지 않았음을 말하였으니, 병사들을 수고롭게 할까 두려워해서였다.
작은 나뭇단을 사용하여 거주하는 막사의 지붕을 덮어서 겨우 서리와 이슬을 막았으니, 이와 같이 한 것은 어째서인가?
스스로 남보다 높은 체하려고 하지 않은 것이다.
박속樸樕총생叢生하는 작은 나무이다.
남이 결사적이기를 바라면 높음을 찾지 않아야 하고, 남이 용력勇力을 다하게 하려면 를 책망하지 않아야 한다.
原注
남(병사들)이 목숨을 바쳐 싸우기를 바라면 자신의 높음을 찾지 않아야 하고, 남이 용력을 다하게 하려면 신하의 를 책망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므로 옛날에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쓴 무사武士가 군주에게 절하지 않은 것은, 자신 때문에 무사武士를 번거롭게 하지 않음을 사람들에게 보인 것이다.
남을 번거롭게 하고서 그가 목숨을 바치고 그가 힘을 다하기를 바라는 것은, 예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일찍이 듣지 못하였다.
原注
그러므로 옛날에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쓴 무사武士가 군주 앞에서 절하지 않은 것은, 〈군주가〉 자신 때문에 무사武士를 번거롭게 하지 않음을 사람들에게 보인 것이다.
남을 번거롭게 하고서 그가 목숨을 바치고 용력勇力을 다하여 자신의 쓰임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예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일찍이 듣지 못하였다.
장수가 출전 명령을 받는 날에는 자기의 집안을 잊고, 군대를 진열하여 야영을 하면 자기의 어버이를 잊고, 북채를 잡고 북을 치면 자기의 몸을 잊는다.
原注
장수가 출전 명령을 받는 날에는 자기의 집안을 잊으니, 자기의 집안을 마음속에 두지 않음을 이른 것이요, 삼군三軍을 진열하여 야영을 하면 자기의 어버이를 잊으니, 자기의 어버이를 마음속에 두지 않음을 이른 것이요, 적진에 임하여 결전해서 북채를 잡고 북을 치면 자기의 몸을 잊으니, 자기의 몸을 마음속에 두지 않음을 이른다.
오기吳起가 싸움에 임하여 좌우左右에서 을 올리자, 오기吳起가 말하기를 “장수는 오로지 깃발과 북을 주관할 뿐이니, 어려운 일에 임하여 의심스러운 일을 결단하고 군대를 지휘하여 병기를 사용하게 하는 것이 장수의 일이다.
의 임무는 장수의 일이 아니다.” 하였다.
原注
오기吳起가 싸움에 임할 적에 좌우左右에 있는 사람들이 을 올려 오기吳起로 하여금 싸움에서 사용하게 하려 하자,
오기吳起가 말하기를 “대장大將은 전적으로 깃발과 북을 주관하여, 깃발을 왼쪽으로 휘두르면 군대가 왼쪽으로 가고, 오른쪽으로 휘두르면 군대가 오른쪽으로 가고, 전진의 북을 치면 군대가 전진하게 할 뿐이니,
큰 난리에 임하여 큰 의심스러운 일을 결단하고 군대를 지휘하여 병기를 사용하게 해서, 병사들로 하여금 적의 공격을 받아도 패하지 않게 하는 것이 장군의 일이다.
의 임무는 장군의 일이 아니다.” 하였다.
옛날 이광필李光弼사사명史思明하양河陽에서 싸울 적에 여러 장수들에게 명하기를
“그대들은 나의 깃발을 바라보고 싸우되, 내가 깃발을 서서히 휘저으면 그대들이 편리한 대로 행동하고, 내가 깃발을 급히 휘저어 세 번 땅에 이르면 모든 병력이 일제히 달려가서 사생死生을 결단하여야 하니, 조금이라도 후퇴하는 자는 목을 베겠다.” 하였다.
전투할 때에 학정옥郝廷玉이 패하여 돌아오자, 이광필李光弼이 놀라서 그의 수급首級을 가져오라고 명하였는데, 학정옥郝廷玉이 대답하기를 “말이 화살에 맞아 돌아온 것이지, 감히 후퇴한 것이 아닙니다.” 하므로, 말을 바꿔 타고 다시 나가 싸우게 하였고,
복고회은僕固懐恩이 다소 퇴각하자, 이광필李光弼이 또다시 그의 수급首級을 가져오라고 명하니, 복고회은僕固懐恩이 다시 나가 결전決戰하였다.
이광필李光弼이 연달아 깃발을 휘젓자, 여러 군대가 일제히 달려 나가 결사적으로 싸워서 고함치는 소리가 천지天地를 진동하니, 적의 무리가 크게 궤멸되어 사사명史思明이 도망하였다.
춘추春秋 때에 나라가 나라를 정벌할 적에 나라 각극卻克이 적의 화살에 부상을 당하여 피가 신발에까지 흘렀으나, 계속 북을 울리며 말하기를 “나의 부상이 심하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장후張侯가 “저는 처음 싸울 때부터 화살이 손과 팔뚝을 꿰뚫었으나, 화살을 뽑아 꺾어버리고 수레를 몰아 피가 흘러 왼쪽 바퀴가 붉게 물들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어찌 감히 부상당했다는 말을 하겠습니까.
장군께서는 부디 참으십시오.
군사들의 이목耳目이 우리의 깃발과 북에 달려있어 전진과 후퇴가 이에 따르니, 이 수레를 한 사람이라도 지킬 수 있다면 전쟁하는 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어찌 부상 때문에 군주君主의 큰일을 망칠 수 있겠습니까.
갑옷을 입고 병기兵器를 잡고 싸움터에 나온 것은 진실로 죽기 위한 것인데, 부상을 당하였으나 죽음에는 이르지 않았으니, 장군께서는 힘써 싸우십시오.” 하고는, 왼손으로는 고삐를 잡고 오른손으로는 북채를 잡아 북을 쳤다.
〈손의 부상 때문에 고삐를 제대로 잡을 수가 없어〉 내달리는 말을 멈추지 못하니, 여러 군대들이 뒤를 따라 공격해서 나라 군대를 크게 패퇴시켰다.
이는 장수가 전적으로 깃발과 북을 주관한 좋은 사례이다.
삼군三軍이 항렬을 이루었으면 1를 간 뒤에 3를 이루니, 3를 달려간 뒤에는 냇물의 근원을 터놓은 것과 같이 하여야 한다.
앞에 있는 을 바라보고 병사들의 장점을 따라 운용해서 이 희면 우리도 희게 만들고, 이 붉으면 우리도 붉게 만들어야 한다.
原注
삼군三軍이 이미 항렬行列을 이루었으면 1를 간 뒤에 3를 이루니, 1는 30리이다.
3인 90리를 간 뒤에는 〈군대의 진격이〉 냇물의 근원을 터놓은 것과 같아서 적이 막을 수 없게 한다.
앞에 있는 을 바라보고 각각 병사들의 장점을 적절히 운용해서 이 흰 것을 사용하면 우리도 따라서 희게 하니, 은 희게 칠하는 것이요, 이 붉은 것을 사용하면 우리도 따라서 붉게 하니, 는 붉게 칠하는 것이다.
백색白色의 흙이고, 적색赤色의 돌이다.
오기吳起나라와 싸울 적에, 교전하기 전에 한 병사가 자신의 용맹을 주체하지 못하고 앞으로 나가 적의 수급首級 두 개를 베어 가지고 돌아오자, 오기吳起가 그 자리에서 그의 목을 베게 하였다.
이때 군리軍吏하기를 “이는 뛰어난 병사이니, 목을 베어서는 안 됩니다.” 하였으나, 오기吳起는 말하기를 “뛰어난 병사임은 분명하지만 나의 명령을 따른 것이 아니다.” 하고, 참수하였다.
原注
오기吳起나라 사람(장수)과 싸울 적에, 교전하기 전에 한 병사가 자신의 용맹을 주체하지 못하고 항렬을 뛰어 넘어가 전진해서 적의 수급首級 두 개를 베어 가지고 돌아오자, 오기吳起가 즉시 사람을 시켜 그의 목을 베게 하였다.
이때 군리軍吏하기를 “이 사람은 재주가 있고 용맹이 뛰어난 병사이니, 목을 베어서는 안 됩니다.” 하였으나, 오기吳起는 말하기를 “재주와 용맹이 있는 것은 인정하지만, 다만 나의 호령을 따른 것이 아니다.” 하고는, 마침내 참수하였다.


역주
역주1 (女子)[子女] : 저본의 ‘女子’는 明本에 의거하여 ‘子女’로 바로잡았다.
역주2 : 고
역주3 晉文公伐曹……而斬以徇 : 晉 文公은 春秋時代 晉나라의 군주로 姓이 姬, 이름이 重耳이며 19년의 망명 생활 끝에 귀국하여 임금의 자리에 오르자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어 齊 桓公의 뒤를 이어 霸者가 된 明君이다.
顚頡은 文公을 시종하여 19년 동안 망명 생활을 한 자로 文公이 임금의 자리에 오르자 大夫로 등용되었다.
僖負覊는 曹나라의 어진 대부로, 文公의 망명 시절 曹나라 임금이 文公을 박대하자, 文公의 인물됨을 알아보고 홀로 文公을 후하게 접대하였다. 뒤에 文公이 曹나라를 정벌하면서 僖負覊의 집을 약탈하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는데, 顚頡이 불만을 품고 그 집을 불태워버렸다. 이에 文公은 顚頡을 목 베어 軍中에 조리 돌렸다. 《春秋左傳 僖公 28년》
역주4 顚頡 : 전힐
역주5 宋曹彬取江南 而市不易肆 : 曹彬(931〜999)은 宋나라 건국 초기의 인물로 太祖를 도와 천하를 평정하고 魯國公에 封해진 名將이다. 開寶 7년(974)에 曹彬은 군대를 이끌고 강남의 南唐을 토벌하여 마지막 임금인 李煜의 항복을 받았는데, 이 싸움에서 무고한 백성을 살상하지 않으니, 시장 사람들은 가게를 떠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宋史 권258 曹彬傳》
역주6 (抱)[枹] : 저본의 ‘抱’는 明本과 漢文大系本에 의거하여 ‘枹’로 바로잡았다.
역주7 (搥)[槌] : 저본의 ‘搥’는 明本과 漢文大系本에 의거하여 ‘槌’로 바로잡았다.
역주8 (故)[古] : 저본의 ‘故’는 ‘古’와 통용되기도 하나, 故人은 죽은 사람을 가리키므로 明本에 의거하여 《直解》와 함께 ‘古’로 바로잡았다.
역주9 蒙衝 : 고대의 戰船 이름이다. 소의 가죽으로 船體를 덮었으며, 양쪽에 노를 젓는 구멍을 뚫고, 좌우에는 창을 던지고 쇠뇌를 쏘는 창을 내었다.
역주10 [故其用不足也] : 이 구절은 저본에는 없으나 漢文大系本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그러나 이 節의 뒷부분은 대체로 뜻이 분명하지 않다.
역주11 : 부
역주12 桑弘羊 : B.C. 152〜B.C. 80. 前漢 武帝 때의 문신으로 본래 洛陽의 商人이었는데, 理財에 밝아 武帝 때에 大司農 丞으로 발탁되어 천하의 鹽鐵을 전매하고 平準法을 시행하여 국가의 재정을 튼튼하게 해서 武帝의 신임을 받았다. 큰 가뭄이 들자 御史大夫로 있던 卜式은 “이 가뭄이 든 것은 桑弘羊이 平準法을 시행하여 장사꾼들이 이익을 얻지 못하게 함으로써 백성들의 怨聲이 높기 때문이니, 그를 사형에 처해야 한다.”라고 주청하였다. 桑弘羊은 御史大夫에 올랐으나 뒤에 모반을 획책한 죄로 멸족을 당하였다. 《史記 권30 平準書》
역주13 直使甲冑生蟣蝨 : 기슬
역주14 先君太公 : 太公은 文王의 조부인 古公亶父를 가리킨 것이다. 古公亶父는 도읍을 豳에서 岐周로 옮기고 國號를 周라 하여 국가의 기틀을 확고하게 하였다. 뒤에 武王이 천하를 차지하자 太王으로 추존되었다.
역주15 : 피
역주16 周武王……善戰之士三萬 : 武王이 紂王을 정벌한 내용은 《書經》 〈泰誓 上‧中‧下〉와 〈牧誓〉에 자세히 보인다. 여기에 盟津은 孟津으로 표기되어 있다.
역주17 商紂之陳……多力善走 : 紂王의 병력이 億萬이라는 내용은 《書經》 〈泰誓 上〉에 보인다. 고대에 億은 10萬을 이르는데, 여기의 億萬 또한 10萬을 이른 것으로 보인다.
飛廉과 惡來는 父子 사이로 紂王을 섬긴 장수들인데, 飛廉은 달리기를 잘하였고 惡來는 힘이 장사였다고 한다. 《史記 권5 秦本紀》
역주18 合龜兆 以視吉凶 : 고대에는 거북의 등껍질을 태워 그 모양을 보고 길흉과 화복을 점쳤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시초점과 거북점 두 가지를 가지고 국가의 일을 점쳤는데, 큰일에는 거북점을 사용하고 작은 일에는 시초점을 사용하였다. 시초점은 시초를 가지고 卦를 뽑아 《周易》으로 점치는 것을 이른다.
역주19 甲子旬……以辰巳爲虛之類 : 甲子旬은 甲子日로부터 癸酉日까지의 10일간을 이른다. 여기에는 地支 중 戌과 亥가 빠지므로 戌과 亥는 孤가 되고 戌과 亥의 반대 방향인 辰과 巳는 虛가 되는바, 자세한 내용은 본서 59쪽의 주 1) 참조.
역주20 五星十二次 : 五星은 태양계에 있는 다섯 개의 行星인 水星‧金星‧火星‧木星‧土星의 다섯 별을 이르는데, 고대에는 이 다섯 별이 나란히 모이는 것을 상서로운 조짐으로 여겼다.
十二次는 고대 天文에서 절기의 변화를 설명하기 위하여 黃道 부근의 하늘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향하는 방향에 의하여 12개의 분야로 나누고 여기에 28宿를 배치한 것인데, 子는 玄枵, 丑은 星紀, 寅은 析木, 卯는 大火, 辰은 壽星, 巳는 鶉尾, 午는 鶉火, 未는 鶉首, 申은 實沈, 酉는 大梁, 戌은 降婁, 亥는 陬訾이다.
역주21 劉裕以往亡日出軍而勝燕 : 劉裕는 南北朝時代 宋나라를 건국한 高祖의 이름이다. 往亡日은 陰陽家에서 출행하면 불길하다는 날로 天門日이라고도 하는데, 정월은 寅日, 2월은 巳日, 3월은 申日, 4월은 亥日, 5월은 卯日, 6월은 午日, 7월은 酉日, 8월은 子日, 9월은 辰日, 10월은 未日, 11월은 戌日, 12월은 丑日이며, 또 驚蟄이 지난 뒤 14일째 되는 날이라 한다.
A.D. 410년 往亡日에 宋나라 劉裕와 南燕의 慕容超가 대전하였는데, 劉裕는 승리하였고 慕容超는 패하였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당일에 劉裕가 병력을 총동원하여 南燕을 공격하니, 어떤 사람이 “오늘은 往亡日이라 출병하기에 불리합니다.”라고 하였으나, 劉裕는 “내가 가면 저들이 패망하는데 무엇이 불리하단 말인가.” 하고 적에게 맹공을 가하여 南燕을 멸망시켰다. 《資治通鑑 晉紀 권114 安皇帝》
역주22 公子心……出戰而勝齊 : 이 내용은 본서 63쪽 참조.
역주23 鄧艾不以陰平爲險而入蜀 : 鄧艾(197〜264)는 三國時代 魏나라의 장수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본서 69쪽의 주 2) 참조.
역주24 趙奢不以道遠險狹而破秦 : 趙奢는 戰國時代 趙나라의 名將으로 馬服君에 봉해진 인물이다. 秦나라가 韓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閼與로 진군해 오자, 趙王은 趙奢를 將軍으로 임명하여 閼與를 구원하도록 하였다. 趙奢는 부하인 許歷의 간언에 따라 성벽을 굳게 지키며 28일을 지체하여 행군하지 않고 보루를 더욱 증축하였다. 趙軍의 實情을 정탐하기 위해 秦나라의 間使(첩자로 온 使者)가 오자 趙奢는 그가 첩자임을 모르는 것처럼 하고 잘 대접하여 보냈는데, 間使가 돌아가 이러한 사실을 秦나라 장수에게 보고하니, 秦나라 장수는 趙奢가 싸울 뜻이 없는 것으로 오판하고 방심하였다. 趙奢는 間使를 보내자마자, 갑옷을 말아 급히 행군하여 秦軍보다 한 발 앞서 전투에 유리한 고지인 北山을 선점하고 秦軍을 대파하여 閼與의 포위를 풀게 하였다. 《史記 권81 廉頗藺相如列傳 附 趙奢》
역주25 宇文泰不以高歡兵衆而設奇取勝 : 宇文泰(507〜556)는 西魏의 丞相으로 뒤에 北周를 건국한 宇文覺의 부친이며, 高歡(496〜547)은 東魏의 丞相으로 뒤에 아들 高洋이 北齊를 창건하여 神武帝로 추존된 인물이다.
西魏 大統 3년(537), 宇文泰가 高歡을 맞아 싸울 적에 諸將들은 모두 衆寡不敵을 이유로 공격을 반대하였으나, 宇文泰는 高歡이 막 왔을 때에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병사들에게 3일 분의 군량만을 주고 高歡의 大軍과 會戰하였는데, 高歡의 군대를 양쪽으로 갈라놓아 대파하고 6천여 명을 참수하였으며 2만여 명의 항복을 받았다. 《周書 권2 文帝 下》
역주26 蕭王不以王尋勢盛而親犯中軍 : 蕭王은 後漢을 건국한 光武帝가 천하를 차지하기 전 更始帝에게 받은 封號이며, 王尋은 王莽의 장수이다. 王尋이 대군을 거느리고 光武帝의 주력군을 昆陽城에 몰아넣고 포위하였다. 포위되기 전에 성을 빠져 나온 光武帝는 郾과 定陵 일대로 가서 병력을 규합한 다음, 이 중에서 3천 명을 뽑아 선봉으로 삼아 곧바로 昆陽城으로 가서 성을 포위하고 있던 王莽軍의 배후를 급습하여 大破하고, 적장 王尋을 죽였다. 《後漢書 권1 光武帝紀》
역주27 李靖不奉詔迎突厥 而破頡利 :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본서 69쪽의 주 3) 참조.
역주28 : 야
역주29 犀兕 : 서시
역주30 莫邪 劍名 : 莫邪는 본래 春秋時代 吳나라 사람으로 당대의 제일가는 劍匠인 干將의 아내인데, 干將이 吳王 闔閭의 명을 받고 한 쌍의 검을 주조할 적에 풀무의 불길이 제대로 일지 않자, 풀무 속에 뛰어들어 자신을 희생해서 남편으로 하여금 명검을 주조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에 한 쌍의 명검이 만들어지자, 雄劍의 이름을 干將, 雌劍의 이름을 莫邪라 칭하였는데, 후대에는 웅검을 龍泉, 자검을 太阿로 칭하기도 하였다.
역주31 犀 解見吳子 : 여기의 《吳子》는 《吳子直解》 〈圖國〉편을 이른다. 이 편에 “무소는 뿔이 하나이고 모습이 물소와 같고 머리가 돼지와 같은데, 바다 속에 산다. 해변의 어부들이 길옆에 木犀(나무로 만든 무소)를 세워놓으면, 무소가 와서 木犀에 기대어 있다가 木犀가 부러지면 무소도 땅에 쓰러지는데, 이때 쳐서 잡는다.”라고 보인다.
역주32 樸樕 : 박속
역주33 吳起爲將 與秦戰 : 吳起(B.C. 440〜B.C. 381)는 戰國時代의 저명한 병법가로 《吳子》의 저자인데, 魏 文侯에게 중용되어 秦나라를 공격해서 다섯 개의 성을 점령하였다. 《史記 吳起列傳》
역주34 : 누
역주35 乞貸人之死命……不責臣下之禮 : 漢文大系本에는 이 부분이 “남이 목숨을 바쳐 싸우기를 바랄 적에는 자신의 높음을 찾아서는 안 되고, 사람들의 용력을 다하게 할 적에는 신하의 禮를 책망하지 않아야 한다.[求人之致死 不可索自己之尊 竭盡衆人之勇力 不責臣下之禮]”로 표기되어 있어 뜻이 더욱 분명하다.
역주36 竭人之力……未嘗聞矣 : 《星湖僿說》 제23권 〈經史門 介者不拜〉에 “병사란 죽으러 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을 전송할 때 天子로서도 그들을 위해 꿇어앉아 수레를 밀어 보냈다.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병사들의 충성심을 감동시킬 수 없는데, 어찌 병사들에게 꿇어앉아 절하도록 할 수 있겠는가? 후세 사람은 이런 깊은 뜻은 깨닫지 못하고 갑옷과 투구를 갖춘 병사로서는 불편하기 때문에 절하지 않는다는 것으로만 해설하였으니, 소견이 얕다 하겠다.[兵死地也 其送之也 天子爲之跪而推轂 不如此 無以感動其忠節也 豈可以跪拜曲謹責之 後人不達 乃以甲冑在身爲解者 淺矣]” 하였다.
역주37 (抱)[枹] : 저본의 ‘抱’는 明本에 의거하여 《直解》와 함께 ‘枹’로 바로잡았다.
역주38 (夬)[決] : 저본의 ‘夬’는 明本에 의거하여 ‘決’로 바로잡았다.
역주39 : 학
역주40 李光弼……思明遁去 : 李光弼(708〜764)은 唐 玄宗‧肅宗 때의 명장으로 安史의 난을 평정한 인물이며, 史思明(?〜761)은 突厥族인 安祿山과 동향으로, 天寶 연간에 전공을 세워 平虜兵馬使가 되었다가 安祿山과 함께 난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史思明은 至德 2년(757) 安祿山의 아들 安慶緖가 아버지를 죽이고 稱帝하자, 唐나라로 귀순하여 河北節度使를 지내다가 다시 반기를 들어 安慶緖 등을 죽이고 范陽에서 국호를 大燕이라 하고 皇帝에 올랐으나, 곧바로 자신의 아들 史朝義와 그 부하들에게 살해당하였다.
郝廷玉과 僕固懐恩은 모두 李光弼 휘하의 명장들이다. 이 싸움은 建元 2년(759) 史思明이 다시 반란을 일으켜 河陽을 공격하여 발발하였는데, 李光弼이 이를 잘 막아내어 반란을 평정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는바, 자세한 내용은 《資治通鑑》 권221 〈唐紀 37〉에 보인다.
역주41 春秋時……齊師敗績 : 이 내용은 《春秋左氏傳》 成公 2년 조에 자세히 보인다. 卻克은 晉軍의 主將이고, 張侯는 卻克의 御인 解張이다.
역주42 : 餘를 약자로 표기한 것이다.
역주43 : 악
역주44 敵白者……所以爲赤者也 : 漢文大系本 〈補註〉에는 이 구절에 대해 “敵이 白色을 쓰면 우리도 白色으로 꾸미고 敵이 赤色을 쓰면 우리도 赤色으로 꾸미니, 이는 旗와 물건을 敵의 것과 뒤섞이게 하여 적을 혼란에 빠뜨리고자 해서이다.[敵用白 吾亦以白飾之 敵用赤 吾亦以赤飾之 欲以混其旗物]”라고 부연 해석하고 있다.

울료자직해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50 서울시 종로구 삼봉로81, 1332호(두산위브파빌리온)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