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無形無影하고 無逆無違하며 處卑不動하고 守靜不衰니
天地之根은 綿綿若存하여 用之不勤이라하니 門은 玄牝之所由也라
欲言存邪면 則不見其形이요 欲言亡邪면 萬物以之生이라 故曰綿綿若存也하니라
제6장은 전통적傳統的 해석과 현대적現代的 해석이 크게 다르다. “골짜기의 신령은 죽지 않는다.”는 말로 시작되는 이 장은 현대의 모든 철학들과 종교들이 다루는 주요한 실존적 문제, 즉 삶의 일시성 혹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죽음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으로 독해하기도 한다. 또는 제28장과 연결하여 원시종교原始宗敎의 여성女性 생식기生殖器 숭배崇拜, 남성성에 대해 여성성을 강조하는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노자老子》의 독특한 철학이 드러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전통적인 맥락에서 보면 제6장은 《노자》의 고유한 사상인 ‘부드러움[유柔]’, ‘스스로를 낮춤[비卑]’을 강조하는 처세處世의 태도로 보거나 도교적道敎的 양생養生의 의미를 설명說明한 것으로 본다.
특히 어떤 의미에서 도道는 ‘불사不死’하는 것이기에 도道를 본받으려고 하는 것은 인간이 불사不死‧불멸不滅이 되기를 열망하는 것을 의미한다. 후대의 도교에서 《노자》를 이해한 방식은 정확하게 이런 것이며, 흔히 종교적인 도교道敎의 역사는 그러한 해석을 위한 충분한 증거를 제공한다. 도가적 실천은 몸을 영원히 지속되는 ‘유기체’로 변형하려는 시도를 의미할 수도 있고, 도가적 실천가는 이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수많은 구제책들을 개발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텍스트로서 《노자》는 죽음을 극복하기 위한 매뉴얼로 읽힐 수 있었으며, 《노자》의 저자로 추정되는 노자 자신은 그 기술을 성공적으로 숙달했던 불멸의 모델로 존경받을 수 있었다.
골짜기의 신령은 죽지 않으니, 이를 신비한 암컷[현빈玄牝]이라 일컫는다.
이 신비한 암컷의 문을 하늘과 땅의 뿌리라 일컬으니, 마치 있는 듯 없는 듯하면서 면면히 이어져 그것을 아무리 써도 수고롭지 않다.
注
‘곡신谷神’이란 골짜기 한가운데의 빈 곳이다.
〈골짜기의 한가운데는〉 어떠한 형체나 그림자도 없고 거스름이나 어김도 없으며, 낮은 곳에 처해 움직이지 않고 고요함을 지켜 쇠하지 않는다.
만물은 그것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곡신은〉 그 형체를 보이지 않으니, 이는 지극한 존재[지물至物]이다.
낮은 곳에 처하여 〈어떤 것이라고〉 이름 지어 말할 수가 없기에 그것을 ‘현묘한 암컷’이라 일컫는다.
〈《노자老子》는〉 “하늘과 땅의 뿌리는 있는 듯 없는 듯하면서 면면히 이어져 그것을 아무리 써도 수고롭지 않다.”고 하였는데, 여기서 ‘문門’이란 현묘한 암컷이 유래한 곳이다.
그 유래한 곳에 근본해볼 때 태극太極과 한 몸을 이루었기에 그것을 ‘하늘과 땅의 뿌리’라고 일컬었다.
있다고 말하고자 하면 그 형체가 보이지 않고, 없다고 말하고자 하면 만물이 그에 의해 생겨난다. 그래서 “있는 듯 없는 듯하면서 면면히 이어진다.”고 했다.
어떤 만물이든 이루어지지 않는 게 없는데 아무리 써도 수고롭지 않으므로 “그것을 아무리 써도 수고롭지 않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