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注]持는 謂不失德也라 旣不失其德이로되 又盈之하니 勢必傾危라
注
[注]旣揣末令尖이로되 又銳之令利하면 勢必摧衂하리니 故不可長保也라하니라
하늘에 대해서 모든 것은 ‘하늘 아래[천하天下]’에 있다. 그러므로 천하는 종종 ‘세계世界’로 번역된다. ‘세계’는 ‘하늘 아래’ 기능하는 삼라만상森羅萬象의 구체적 영역, 즉 문자 그대로 해와 달의 운행과 나란히 밤에 어둡고 낮에 밝은 모든 것이다. 하늘 그리고 그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은 분리될 수 없다. 인간 사회는 물론 ‘하늘 아래’에 존재하는 것 가운데 중요한 부분이다. 전기가 들어오기 이전에 우리는 〈불가피하게〉 밤에는 자고 낮 동안에 일을 했다. 하늘 아래에 있으면서 사람들은 그에 맞추어서 행동해야만 한다.
대부분의 다른 고대 중국철학 텍스트와 비슷하게 《노자老子》는 일반적으로 하늘 아래에 있을 때 하늘의 운행을 따를 것을 추천한다. 그것은 특히 하늘의 역학을 거스르는 어떤 종류의 행동을 그만두게끔 한다. 그러한 행동들은 실패하기 마련이거나 적어도 수고스럽거나 소모적이다. - 궁극적으로 그것은 효과적일 수 없다. 가장 효율적인 행동 방식은 하늘과 어울리게 행동하는 것이다. 하늘에 짝한다는 것은 상고上古시대의 이상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것이 함축적으로 암시하는 바는 사람이 이렇게 소박하지만 가치 있는 전략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하늘의 질서는 단지 거기에 있다. - 그리고 늘 있어왔다. 인간이 해야만 하는 모든 것은 제59장에서 지적하듯이 ‘아끼면서’ 행동하는 것이다.
인간들의 질서를 다스리기 위해선 하늘의 도道를 따르는 것이 가장 좋다. 하늘 그 자체는 ‘아끼면서’ 행동하고 그래서 하늘을 ‘섬기는’ 것은 그에 반하는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않는 것이다. 하늘은 ‘가야 할 곳’에 대해 어떤 특정한 목적도 어떤 특정한 의도도 갖지 않는데, 동일한 것이 왕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하늘은 사사롭지 않다. 사사로움이 제거될 때, 사물은 부드럽게 진행되어 나간다. 제9장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가지고 있으면서 더 채우고자 하는 것은 그만두느니만 못하다.
注
지持란 덕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것을 말한다. 이미 자신의 덕을 잃지 않았는데 또 그것을 채우고자 하니 세력이 반드시 기울고 위태로워질 것이다.
그래서 “그치느니만 못하다.”고 한 것이다. ‘불여기이不如其已’는 오히려 덕이 없고 공이 없는 것만도 못함을 이른다.
〈뾰족한 것을〉 다듬어서 그것을 더 날카롭게 하고자 하는 것은 오래도록 보전할 수 없다.
注
이미 끝을 다듬어서 뾰족하게 하였는데 다시 그것을 날카롭게 하여 더욱 예리하게 하면 세력이 꺾여 위축될 것이니, 그래서 “오래도록 보전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금金과 옥玉이 집안을 가득 채우면 능히 그것을 지킬 수가 없고,
부유하고 귀하면서 교만하면 스스로 허물을 남기게 된다.
공이 이루어지면 자신은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도이다.
注
사계절이 번갈아 운행하니 공이 이루어지면 옮겨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