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장은 자신의 능력을 어찌 쓸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겅중겅중 걸으면 오래 갈 수 없다. 스스로 드러내면 밝지 못하다. 스스로 옳다고 하면 드러나지 않는다. 스스로 자랑하면 공이 없다. 스스로 뽐내면 오래가지 못한다.” 왕필은 ‘
물상진즉실안物尙進則失安’이라고 해서 “나아가는 것을 숭상하면 안정을 잃는다.”고 했다. 나아간다는 건 ‘
진進(출사)’을 말하는데, 발돋움해 출사하면 즉, 자기 능력보다 지나치게 앞서 나아가면 편안하지 않아 오래 서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앞서 가는 게 뛰어나고 좋은 것 같아 보여도 그게 “다 먹다 남은 음식이요, 군더더기 행동”이라고 충고하고 있다.
‘
기企’는 ‘고대
도인술導引術의 한 동작’을 가리키는 단어로 ‘발뒤꿈치를 든다’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한편으론 내 능력을 넘어서는 것을 말한다. 왕필은 인간 사회의 바람직한 모습을 ‘
각득기소各得其所’한 상태라고 보았다. 즉, 각자(
물物)가 있어 마땅한 자리, 능력에 맞는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
각득기소各得其所’란 원래 《
한서漢書》 〈
동방삭전東方朔傳〉에 나오는 이야기로 생각해볼 수 있다.
한 무제漢 武帝 때, 무제의 누이인
융여공주隆慮公主는 아들
소평군昭平君을 한 무제의 딸과 맺어주었는데, 소평군이 망나니였나 보다. 병으로 위독하던 융려공주가 황금과 돈을 무제에게 바치고 다음과 같이 부탁까지 했다고 한다.
한 무제漢 武帝(《만고제회도상萬古際會圖像》) “이 담에 내 아들이 죽을죄를 짓더라도 부디 용서해주세요.”
어머니의 기우대로 소평군은 날로 교만해졌고, 술에 취해 공주 보모를 죽여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사법을 담당하던 관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하자, 한 무제 주위에 있던 신하들은 모두 소평군 편을 들었다.
“돌아가신 융려공주의 아드님이니 봐주시지요. 전에 속죄금까지 바치지 않았습니까?”
무제는 눈물을 흘리며 슬퍼했는데, 동생에 대한 동정보다는 임금의 도리를 택하고 만다. 그것을 본 동방삭이 임금의 용기 있는 행동을 칭송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신이 듣건대,
성왕聖王께서는 정사를 베푸시매 상을 줌에는 원수도 꺼리지 아니하고, 죄 지은 자를 죽임에
골육지친骨肉之親이라도 골라내지 않는다 했습니다. 《
상서尙書》에 이르기를 ‘한 곳에 치우치지 아니하고 무리를 짓지 아니하니 왕의 길은 넓고도 넓도다.’라고 했습니다. 이 두 가지 것은
오제五帝께서 소중히 여기신 법이며,
삼왕三王도 하기 어려워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폐하께서는 행하셨으니 이로써
사해四海의 만백성들은 모두 자기의 맡은 바를 지키며 살 수 있을 것이니[
시이사해지내是以四海之內 원원지민元元之民 각득기소各得其所] 천하를 위해서는 매우 다행한 일입니다.”
능력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적성適性이란 말을 많이 쓰는데, 적성이란 말이 원래 의미와는 약간 다르게 쓰인다. 적성이란
곽상郭象이 쓴 용어인데, 지금은 “타고난 재주와 능력”이라는 의미로 많이 쓰지만, 원래 의미는 “타고난 본분에 맞춘다.”는 뜻이다. 왕필이 말한 ‘
적용適用’과 비슷한 의미이다. 하지만 왕필과 곽상은 방점을 찍는 부분이 다른데, 곽상은
성性 즉 출신성분, 명분에 포인트를 두고 있지만 왕필은
용用에 포인트를 두고 있다. 곽상은
진대晉代 사상가로 《
장자莊子》에 주석한 학자이다. 계층적 신분 질서를
천리天理라고 인정했고, 개별적인 개체도 ‘
성분性分’이나 ‘
위계位階’에 몸을 맡김으로써 자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