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注]知人者는 智而已矣요 未若自知者러니 超智之上也니라
注
[注]勝人者는 有力而已矣요 未若自勝者러니 無物以損其力하니라
用其智於人은 未若用其智於己也하고 用其力於人은 未若用其力於己也라
明用於己하면 則物無避焉이요 力用於己하면 則物無改焉이니라
注
[注]勤能行之면 其志必獲이라 故曰 强行者有志矣라하니라
注
[注]以明自察하고 量力而行하고 不失其所하면 必獲久長矣니라
제32장에서는 ‘그침의 완성’ 또는 ‘멈출 때를 아는 것[지지知止]’에 대해 언급하였다. 제33장에서는 ‘만족함의 완성’ 혹은 ‘만족할 줄 아는 것[지족知足]’을 말함으로써 앞의 구절을 생각나게 한다. 멈추어야 할 때를 아는, 그래서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만족의 기술을 이미 터득하고 있는 것이다.
그침의 완성과 만족함의 완성은 같은 것이다. 만족하게 되는 것 또는 부유하게 되는 것은 자신의 소유물의 양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감을 느낄 줄 아는 능력에 달린 것이다. 만족감이란 자신이 소유한 것에 의해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 충족되지 않은 소망의 부재에 의해 측정된다.
자기 극복(the overcoming of oneself)은 이렇게 해서 즉각 만족의 기예와 연결된다. 이러한 기예는 자기 자아의 동경이나 갈망을 극복하는 것이다. 앎과 극복의 개념들은 제33장의 첫 행에서 대구를 이룬다. 영어에서도 그것들의 의미는 관계가 있는데, 영어의 ‘to master’가 ‘알다(to know)’와 ‘지배하다(to dominate)’ 모두를 뜻한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자신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통제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우며, 만약 사람이 자아를 마스터할 수 있다면 - 그 단어의 이중적 의미에서 - 사람은 진정으로 만족한 삶을 사는 법을 알게 될 것이다.
역자는 제33장의 마지막 행을 마왕퇴본馬王堆本에 따라 번역하였다. 왕필본王弼本은 ‘잊혀지지 않다[불망不忘]’라고 하는 대신에 ‘사라지지 않다[불망不亡]’라고 되어 있다. 마왕퇴본은 논조가 더 유가적儒家的이다. 유교 전통에서는 사람이 죽은 후에도 기억되는 것이 지극히 중요하였고, 예로부터 조상에 대한 제사는 정확하게 이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조상의 귀신들이 살아 있는 그들의 자손들과 접촉하게 해주는 제사가 지속되는 만큼 조상의 귀신들은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남을 아는 사람은 지혜롭고 스스로를 아는 사람은 밝으며,
注
남을 아는 사람은 지혜가 있을 뿐 아직 스스로를 아는 사람만은 못하다. 〈왜냐하면 스스로를 아는 것은〉 최상의 지혜조차 넘어서기 때문이다.
남을 이기는 사람은 힘이 있고 스스로를 이기는 사람은 강하며,
注
다른 사람을 이기는 사람은 힘이 있을 뿐 아직 스스로를 이기는 사람만 못하다. 〈왜냐하면 스스로를 이기는 사람은〉 그 어떤 것도 그의 힘을 잃도록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지혜를 다른 사람에게 쓰는 것은 그 지혜를 자신에게 쓰는 것만 못하고, 자신의 힘을 다른 사람에게 쓰는 것은 아직 자신의 힘을 자신에게 쓰는 것만 못하다.
밝음을 자기에게 쓰면 누구도 그를 피하지 않으며, 힘을 자기에게 쓰면 누구도 그를 바꾸지 못한다.
注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스스로 잃을 게 없기 때문에 부유한 것이다.
注
열심히 그것을 행할 수 있으면 그 뜻이 반드시 얻어진다. 그래서 “힘써 행하는 사람은 뜻이 있다.”고 했다.
注
밝음으로 스스로를 살피고 자신의 역량을 헤아려서 행하고 제자리를 잃지 않으면 반드시 얻은 것이 오래갈 것이다.
注
비록 〈몸은〉 죽었으나 그를 살아 있다고 여기니 도가 사라지지 않아야 그 수명을 온전하게 누렸다고 할 수 있다.
몸은 죽었어도 도가 오히려 보존되는데 하물며 몸이 살아 있고 도가 죽지 않은 경우는 어떠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