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장은 구비문학口碑文學이나 《노자》의 전형적인 말하기 방식으로 하나의 수수께끼와 같이 정식화된 격언으로 시작한다. 여기서 ‘가장 부드러운 것’이란 전통적으로 볼 때 그리고 제78장과 연관 지어 보면 물로 해석되며, 또한 ‘가장 딱딱한 것’은 그 물이 위로 흘러가는 돌이나 바위이다. ‘가진 게 없음[무유無有]’이라 하는 것은 도道로 해석되어 왔는데, 이 해석은 필자가 가장 우선시하는 것이자 하상공河上公 주석에 의해 지지된다. 이와 다른 대안으로서 왕필과 다른 주석자들은 그것을 보편적인 매개자이자 에너지인 기氣로 해석하는데, 이것은 바로 앞의 장에 언급되어 있다. 우리는 여기서 ‘무유無有’를 또한 구체적으로는 ‘가득 차 있지 않음(no fullness)’으로 번역할 수도 있는데, 가득 차 있지 않으면서 비어 있는 것은 명백하게 도이다.
둘째 부분은 앞의 진술을 통치술統治術과 연결시켜 준다. 여기서 ‘나’는 기대되는 독자 또는 청자로서의 ‘나’인데, 성인 통치자인 것은 물론이다. 일단 첫째 부분의 수수께끼가 풀이되면 물과 도의 역설적 기능은 자명한데, 즉 역전의 전술에 대한 통찰을 고려하는 것이다. ‘무위無爲’는 ‘유위有爲’보다 우월한 방식이자 가장 이로운 통치 형식이다.
마지막 부분은 무위의 격률을 ‘말하지 않는 가르침’에 연결시키고 있다. ‘무위無爲’와 ‘불언不言’은 동반되는 것인데, 여기서 ‘불언不言’은 언어를 완전히 끊는 것으로 이끌어지지는 않는다. 통치자를 위한 무위는 백성들을 위한 완벽한 행위(유위)의 토대이다. 비슷하게 추론될 수 있는 것은, ‘말하지 않기’ 또는 명시적으로든 암묵적으로든 어느 편을 드는 것이 없는 것이란 모든 언어를 멈춘다는 뜻이 아니라 언어가 방해받지 않고 기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군주는 스스로 어떤 행동을 취하거나 논쟁에 참여하지 않는다. 군주에게 있어 어떤 행동이나 언어가 조화롭게 전개되도록 하는 것은 이와 같이 끼어들지 않는 것(noninterference) 그리고 치우치지 않는 것(impartiality)이다.
천하에서 가장 부드러운 것이 천하에서 가장 견고한 것을 몰아대고, 무유無有는 틈 없는 데까지 들어가니,
注
기氣는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 없고, 물은 지나지 못하는 곳이 없다.
注
허무虛無와 유약柔弱은 통하지 못하는 곳이 없다.
무유無有는 다하지 아니하며, 지극히 부드러운 것은 꺾이지 않는다.
이것으로 미루어보면 무위無爲의 유익함을 알 수 있다.
말 없는 가르침, 무위의 유익함은 천하에 미치는 자가 드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