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4 天之所惡를 孰知其故리오 是以聖人은 猶難之니라
注
夫聖人之明으로도 猶難於勇敢이어늘 況無聖人之明하여 而欲行之也아 故曰 猶難之也라하니라
注
[注]
하고 先事而設
하며 安而不忘危
하고 未
而謀之
라
‘감히 ~한다(daring)’는 것은 삼가는 것을 선호하는 도가道家에서 볼 때는 이상해 보인다. 성인은 제3장과 제64장에서 말하듯이 감히 무언가를 하고자 하지 않으며, 제67장에서 말하듯이 앞에 나서고자 하지 않으며, 제69장에서 말하듯이 주인이 되고자 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감히 무엇을 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노출시켜 위험에 빠지거나 실패할 수 있게 만든다. 적극적인 양식의 행동 대신에 도가적 성인은 역설적逆說的으로 감히 무언가를 하지 않는 것을 감히 한다. 무언가를 하지 않고 앞에 나서지 않는 것은 또한 감히 무언가를 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
도가의 수동적受動的 성격은 또한 둘째 부분의 논제이다. 대면하지 않고서 성인은 자신의 적을 이겨낸다. 성인의 무위無爲는 그의 침묵과 나란히 간다. 어떠한 명령도 내리지 않음으로써 백성들은 자연스럽게 그를 따르게 된다. 텍스트가 말하는 미리 계획하는 것의 중요성은 제63장과 제64장에서 논의된 ‘시작’에 신중한 것의 중요성에 상응한다.
감히 〈무엇을 하는〉 데에 용감하면 죽을 것이요,
注
반드시 제대로 된 죽음을 맞을 수 없다는 뜻이다.
감히 〈무엇을 하지〉 않는 데에 용감하면 살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어떤 것은 이롭고 어떤 것은 해롭지만,
注
모두 용감함이지만 적용되는 것이 다르고 〈그것이 초래하는〉 이로움과 해로움이 같지 않다.
그래서 “어떤 것은 이롭고 어떤 것은 해롭다.”고 한 것이다.
하늘이 싫어하는 그 이유를 누가 알겠는가? 이 때문에 성인은 오히려 그것을 어렵게 여긴다.
注
이 말은 ‘누가 능히 하늘의 뜻을 알겠는가? 아마도 성인뿐일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대저 성인의 밝음으로도 오히려 감히 무엇을 하는 데에 용감한 것을 어렵게 여기는데, 하물며 성인의 밝음이 없는데도 그렇게 행하고자 함에 있어서랴. 그래서 “오히려 그것을 어렵게 여긴다.”고 했다.
注
대저 오로지 다투지 않는 까닭에 천하의 어느 누구도 그와 더불어 다툴 수가 없다.
注
〈이러한 하늘의 도에〉 따르면 길하고 거스르면 흉하니, 말하지 않아도 잘 응답한다.
注
상象을 드리워 길흉吉凶을 보이고 일을 벌이기에 앞서 정성을 다하며 편안할 때에 위급한 때를 잊지 않고 아직 조짐이 드러나지 않을 때에 미리 계획한다.
그래서 “느긋하게 하지만 잘 계획한다.”고 했다.
하늘의 그물은 넓고 커서 엉성하지만 놓치는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