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是以로 聖人之治는 虛其心하고 實其腹하며
제3장은 죽간본竹簡本에는 없다. 이 장章은 주로 노자老子의 정치사상政治思想의 핵심을 드러낸 부분으로서, 《묵자墨子》 이래 능력 있고 현명한 사람을 등용하여 다스리는 정치[상현尙賢]를 부정하고, 우민정치愚民政治를 옹호하는 것으로 무위無爲의 의미를 논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노자老子》의 문자文字를 그대로 풀이하는 주석자는 거의 없다. 오히려 많은 주석자들은 능력과 역량에 맞게 관직과 직책이 주어진다면 상현尙賢은 문제될 것이 없다고 이해한다. 예컨대 하상공河上公은 세속에서 말하는 현명한 사람을 기용하는 것으로, 왕필王弼은 공자孔子가 말했던 소인小人을 배제하고 공정하게 능력에 맞는 관직과 직책을 부여한다면 사람들이 다투고 경쟁하는 폐해가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홍석주洪奭周는 능력과 직책이라는 명실名實이 일치하지 않은 데에서 오는 폐해라고 보며 오히려 상현尙賢은 치천하治天下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적극적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한편 우민정책愚民政策의 대명사처럼 여겨졌던 “백성들로 하여금 무지無知하고 무욕無慾하게 하라”는 구절에 대해 현대학자 묄러(Hans-Georg Moeller)는 노자老子의 이 문장文章이 현대 사회의 욕망 충족이라는 문제와 관련하여, 만족의 기술을 주장한다고 보았다. “욕망은 기본적이고 일반적인 만족을 얻음으로써 충족시킬 수 있다. 일단 어떤 이가 음식을 먹으면, 그 사람은 ‘자연적으로’ 먹고 싶은 욕망을 제거할 것이다. 사람들은 먹는 것을 통해 먹고 싶은 욕망을 간단히 제거한다. 사람들은 더 먹고 싶은 욕망이 생기지 않게 하려고 먹는다. 욕망은 사람이 만족할 만큼 먹지 않을 때에만 생겨난다. 아니면 다른 말로 욕망의 제거는 ‘만족의 정복(mastery)’ 혹은 ‘중단의 통제’의 결과이다. 도가道家의 성인들은 그들이 언제 멈추어야 하는지 알기 때문에 ‘만족의 달인’들이다. 언제 멈춰야 하는지 모른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절대 만족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욕망이 생겼다는 것은 만족을 적절하게 통제하지 못했다는 징후이다. 오직 만족되지 않은 사람들만이 욕망한다. 성왕들은 일반적인 만족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 그들 자신들뿐만 아니라, 그들이 통치하고 있는 나라를 위해서도 그렇다.”(《Daodejing》)
능력 있는 사람을 숭상하지 말아 백성들이 다투지 않게 한다.
얻기 어려운 재화를 귀하게 여기지 말아 백성들이 도둑이 되지 않게 한다.
욕심낼 만한 것을 보이지 말아 백성들의 마음이 어지러워지지 않게 한다.
注
‘현賢’은 ‘능력[능能]’과 같다. ‘상尙’은 이름을 아름답게 한다는 뜻이요, ‘귀貴’는 칭호를 높여준다는 뜻이다.
오로지 능력 있는 사람에게 일이 맡겨지면 숭상해서 무엇 하겠는가?
오로지 쓰일 만한 사람에게 관직이 주어진다면 귀하게 해서 무엇 하겠는가?
만약 능력 있는 사람을 숭상하고 그 이름을 현창하는 데 영화가 그 맡겨진 일보다 지나치면 아랫사람들이 다투어 〈윗사람과〉 경쟁하려 하고 능력을 비교하며 서로 이기려 들 것이다.
재화를 그 쓰임새보다 지나치게 귀하게 여기면 탐내는 사람들이 다투어 담을 넘어 상자를 샅샅이 뒤져 죽음을 무릅쓰고 도둑질하려 할 것이다.
그래서 욕심낼 만한 것을 보이지 않으면 마음이 어지럽게 되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성인의 다스림은 그 마음은 비우게 하고 그 배는 채워주며,
注
마음은 지혜를 품고 배는 음식을 담는다. 〈그 마음이〉 비어야 지혜가 들어차고 〈그 배가〉 차야 꾀가 없게 된다.
注
뼈는 뜻이 없기에 골간이 되고, 뜻은 일을 벌여 어지럽게 만든다.
늘 백성들로 하여금 꾀가 없고 욕심도 없게 하고,
注
〈백성들의〉 타고난 참된 본성을 지킨다는 뜻이다.
무릇 꾀 있다 하는 자들이 감히 무언가 하지 못하게 하니
注
‘꾀부린다[지知]’는 것은 〈자연에 거슬러〉 할 줄 안다는 것을 일컫는다.
무위無爲를 하면 다스리지 못할 것이 없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