伏承天恩
하야 公
하니 朝廷之士
가 引頸東望
하야 若
之始見也
하야 爭先覩之爲快
니라
自卽大位已來
로 於今四年
에 凡所施者
가 無不得宜
ᄅ새 勤儉之聲
과 寬大之政
을 幽閨婦女
와 草野小人
도 皆
하나니라
其有一事未就正
이면 하고 하니 若此時也
에 拾遺公不疾起與天下之士君子樂成而享之
면 斯無時矣
니라
想拾遺公冠帶就車
하야 하야 舒所蓄積
하야 以
하야 利加於時
하고 名垂於將來
하니 하야 하노라
又竊聞朝廷之議컨대 必起拾遺公이라하니 使者往이로되 若不許면 卽河南必繼以行이리라
如是면 則辭少就多라 傷於廉而害於義니 拾遺公必不爲也리라
는 皆有望於拾遺公
이어늘 拾遺公儻不爲起
면 니 由拾遺公
하야 而使天子不盡得良臣
하고 君子不盡得顯位
하고 人庶不盡被惠利
면 其害不爲細
니라
황은皇恩을 입어 하남소윤河南少尹에게 조서詔書를 내려 습유공拾遺公에게 출사出仕를 권면하고 알아듣도록 타이르게 하시니, 조정에 있는 사람들은 목을 빼고 동쪽을 바라보며 마치 경성景星이나 봉황鳳凰이 처음 출현하기라도 한 것처럼 서로 먼저 보려고 다투면서 흔쾌欣快해합니다.
지금 천자天子(당唐 헌종憲宗)께서는 인성仁聖하시어, 크고 작은 국사國事는 모두 재상에게 맡기시고, 선언善言을 듣기 좋아하시어 선언을 듣지 못할까 걱정하십니다.
천자의 자리에 오르신 뒤로 지금까지 4년 동안 시행하신 일들이 합당하지 않은 것이 없으므로 근검勤儉하시다는 명성名聲과 관대寬大하신 정치에 대해, 깊은 규방閨房의 부녀자婦女子와 초야草野의 백성들까지 모두 수없이 듣고서 수없이 칭송합니다.
저는 고대古代의 사정을 잘 알지 못하니 선생께 여쭙겠습니다.
게다가 또 인력으로 이룰 수 없는 일까지 이루어져서 해마다 풍년이 들고 상서로운 징조가 빠짐없이 이르렀으니, 이를테면 기강紀綱(國法)을 위반한 간적姦賊들이 항전抗戰하지 않고서 스스로 구금拘禁되고, 강폭强暴한 흉도凶徒들이 기세가 꺾여 움츠리고 떨면서 소문만 듣고도 겁을 먹고 복종한 것 등입니다.
한 가지 일이라도 바로잡지 못한 것이 있으면 황제께서는 자신을 마치 완전한 사람이 아닌 것처럼 여기시고, 사해四海 안에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든 자가 한 사람도 없으니, 이러한 때에 습유공께서 빨리 일어나 나와서 천하의 사군자士君子들과 함께 성공의 즐거움을 누리지 않는다면 이는 시기를 잃는 것입니다.
옛날에 공자孔子께서는 도道를 펼 수 없는 때라는 것을 아시면서도 끊임없이 도를 펴기 위해 제후諸侯들의 나라를 두루 돌아다니셨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는 때를 만나고도 스스로 깊은 산중에 숨어 빗장을 걸어 잠그고 소명召命을 굳게 거절하는 것은 인의仁義를 표방標榜하신 공자께서 지키신 뜻과 다릅니다.
저는 습유공께서 관을 쓰고 띠를 매고서 수레에 올라 소명에 순종하여 기꺼이 오셔서, 가슴속에 쌓은 포부를 펼쳐 황제의 성대한 덕행德行 중에 빠뜨리신 것을 보충하여 시대에 이익을 끼치고 후대에 이름을 전하실 것이라고 생각하니, 너무나 기뻐 목을 빼고 발돋움하고 바라보면서 즉시 오시기를 바랍니다.
또 제가 조정의 의논을 듣건대 반드시 습유공拾遺公을 출사出仕[起]시키려 한다고 하니, 사자使者가 갔는데도 출사를 허락하지 않으시면 반드시 하남소윤河南少尹(杜兼)이 뒤이어 갈 것입니다.
습유拾遺의 관직으로 군君(李渤)을 부르는데도 나오지 않으면 반드시 관직官職의 품계品階를 더 높여서 부를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녹봉이 적은 관직은 사절하고 녹봉이 많은 관직을 취하는 것이어서, 염치에 손상이 되고 도의에 해가 될 것이니, 습유공께서는 반드시 그리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선인善人(재조在朝의 현인賢人)이 그 동류同類를 추천한 것은 모두 습유공께 기대가 있어서인데, 습유공께서 만약 출사하지 않는다면 많은 선인善人들이 〈다시는〉 사인斯人(초야草野의 은사隱士)을 위하여[與] 추천하는 은혜를 베풀려 하지 않을 것이니, 습유공으로 인해 천자께서는 어진 신하를 다 얻지 못하고, 군자들은 높은 지위를 다 얻지 못하고, 백성들은 은택을 다 입지 못하게 된다면 그 해가 적지 않습니다.
간절히 바라건대 자세히 살피고 멀리 생각하시어 공자孔子의 도에 부합하기를 힘쓰시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