愈於進士中에 粗爲知讀經書者로되 一來應擧에 事隨日生하야 雖欲加功이나 竟無其暇니라
는 하야 不敎不學
하니 不見己缺
이로되 하야 以至於老
하니 所謂無以自別於常人者
로라
每逢
에 歎息
하니 愧生於中
하고 顔變於外
하야 不復自比於人
이로라
前者
에 蒙示新注
하고 又聞
하니 私心喜幸
하야 恨遭逢之晩
하고 願盡傳其學
이나
하야 未得繼請
하고 怠惰
하야 不能
하니 此宜在擯而不敎者
어늘
八月益凉
이면 時得休假
하리니 하고 務道之傳而賜辱臨
하야 執經座下
하야 獲卒所聞
이면 是爲大幸
이라
非先生好之樂之
하야 味於衆人之所不味
하야 務
면 其孰能
若此之至
리오
모월某月 모일某日에 유愈는 머리를 조아립니다.
보내주신 서신書信을 받고서 며칠 동안 자세히 읽어보니 선생에 대한 존경심이 증가하고, 나 자신이 부끄러워 땀이 흘렀습니다.
나는 진사進士들 중에 정밀하지는 못하나마 경서經書를 읽을 줄 아는 자인데도 한 번 와서 과거科擧에 응시應試하자, 날마다 일이 생겨 비록 학문에 더욱 노력하려 해도 끝내 그럴 여가가 없습니다.
서로 사귀는 벗들은 서로의 수준이 같다는 것을 잘 알아 가르치려 하지도 않고 배우려 하지도 않다 보니, 지각이 없어 자신의 결점도 알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나 날이면 날마다 달이면 달마다 학문을 연마硏磨할 기회를 잃고 지내는 사이에 어느덧 노년이 되었으니, 이른바 보통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매양 학사學士나 진유眞儒를 만날 때마다 탄식하며 공경하다 보니, 마음이 부끄럽고 얼굴이 붉어져서 다시는 자신을 남들과 비교조차 못하였습니다.
지난번에 새로 주석注釋하신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를 보여주시고, 또 직접 입으로 일러주신 요지要旨를 들었으니, 저는 마음이 기쁘고 행복하여 선생을 늦게 만난 것을 한스러워하면서 선생의 학문을 다 전수받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러나 직무職務에 얽매여 계속해 가르침을 청하지 못하고, 나태하게 날을 보내면서 스스로 노력하지 않았으니, 저는 물리치고 가르치지 않아야 할 자에 속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지금 선생께서는 도리어 제가 학문의 근본을 조금 알고 문장이 고인에 가깝다고 하여, 지으신 책에 서문을 쓰게 할 만하다고 하셨습니다.
저에 대한 고마우신 뜻이 저의 기대 밖이라서 저는 명을 받고는 불안하였습니다.
싫증을 내지 않고 저를 잘 인도하신 것은 다방면의 지식을 쌓게 하심이니, 어찌 감히 선생의 그런 뜻을 모르겠습니까.
8월에 날씨가 더욱 서늘해지면 그때 휴가를 얻을 수 있으실 것이니, 만약 제가 직무에 얽매여 달려가 가르침을 청하지 못하는 것을 가엾게 여기시고, 도를 전수傳授하는 일에 힘쓰시어, 이곳으로 오셔서 손에 경전經典를 들고 선생의 의자 밑에서 선생의 학설學說을 다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제게 주신다면 큰 행운이겠습니다.
더구나 근세에는 공양학公羊學이 거의 끊어져서 하씨何氏 주注 이외에 다른 주석서註釋書는 볼 수가 없습니다.
성인聖人의 경經과 선현先賢의 전傳을 모두 버리고 자세히 살피지 않으니, 《춘추春秋》의 정미精微하고 오묘奧妙한 뜻을 찾을 길이 없습니다.
선생처럼 이 학學(公羊學)을 좋아하고 즐겨서 사람들이 맛보지 못한 것(남들이 이해하지 못한 뜻)을 맛보아(이해하여) 자신의 견해를 전개하여 그 뜻을 밝히는 데 힘쓰는 분이 아니라면, 그 누가 근로를 마다않고 간절히 집착執着함이 이처럼 지극할 수 있겠습니까.
본래 제 마음속에 가장 급하게 여겼던 것은, 소망이 이루어져서 경전經傳의 뜻을 해석하여 장章과 구句마다의 경설經說을 일러주시는 은혜를 입어, 마음에 완전히 이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특별히[直] 저에게 선생이 지으신 주석서에 서문序文을 써서 경서經書 첫머리에 제 이름을 실어 명성名聲을 영원히 전하게 하시니, 또 무엇 때문에 이를 사양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