孔子善善惡惡二百四十二年之間이로되 何以至今皎然與天地幷고
愚以爲凡史氏
니 後之作者
가 在據事跡實錄
이면 則善惡自
이라
孔子
는 聖人
이로되 作春秋
하고 하야 卒不遇而死
하며 하며 하며 하며 하며 하며 하며 하며 하며 하며 하며 足下所稱
도 亦不聞身貴而令其後有聞也
라
夫爲史者는 不有人禍면 則有天刑하니 豈可不畏懼而輕爲之哉아
聖君賢相相踵
하고 其餘文武之士
로 立功名跨越前後者不可勝數
니 豈一人
能紀而傳之邪
아
宰相知其無他才能
하야 不足用
이로되 哀其老窮
하야 無所合
하고 不欲令四海內有
者
하야 猥言之上
하야 니라
且
하며 하고 巧造語言
하야 하니 於今何所承受取信
하야 而可
作傳記令傳萬世乎
아
02. 사서史書의 편찬編纂을 논하여 유수재劉秀才에게 답한 편지
사서史書를 지음으로 인해 화禍를 입게 될까 두려워한 것은 옳지 않다.
공자孔子는 〈《춘추春秋》를 지으시어〉 242년 동안의 선악善惡을 포폄褒貶하였는데도 어찌하여 지금까지 찬란하게 천지와 함께 병립竝立하셨는가?
그런데 창려昌黎는 제때에 미처 사서를 짓지 않고서 자신의 행위를 변명하였다.
안부를 물으신 편지를 받아보건대 애정을 보여주시고 응당 해야 할 일을 하라고 가르쳐주시고 권면하셨으니, 감히 내려주신 말씀을 감사히 받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리석은 나는, 사가史家의 포폄褒貶의 법칙法則이 《춘추春秋》에 이미 구비具備되었으니, 후대後代의 작자가 사적事跡에 의거해 사실을 기록하면 선악善惡이 저절로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는 학식이 천박하고 고루하며 처신이 구차하고 게으른 자가 성취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 하물며 포폄이겠습니까?
공자孔子는 성인聖人이셨으되 《춘추春秋》를 짓고서 노魯‧위衛‧진陳‧송宋‧제齊‧초楚에서 곤욕을 당하시고 끝내 불우하게 일생을 마치셨으며, 제齊나라 태사씨太史氏 형제兄弟는 거의 다 피살被殺되었으며, 좌구명左丘明은 춘추春秋 때의 일을 기록하고서 눈이 멀었으며, 사마천司馬遷은 《사기史記》를 짓고서 형벌을 받았으며, 반고班固는 옥중獄中에서 병사病死하였으며, 진수陳壽는 기용起用되었다가 다시 폐출廢黜되어 끝내 좋은 관직에 이르지 못하였으며, 왕은王隱은 비방을 받고 관직에서 물러나 집에서 죽었으며, 습착치習鑿齒는 한쪽 다리를 잃었으며, 최호崔浩와 범엽范曄은 멸족滅族을 당하였으며, 위수魏收는 요절夭絶하였으며, 송효왕宋孝王은 주살誅殺되었으며, 족하足下께서 칭찬하신 오긍吳兢도 생전에 몸이 귀해지고 사후에 아름다운 명성이 있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역사를 기록한 자들은 인화人禍를 당하지 않으면 천형天刑을 당하였으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고 경솔히 사서史書를 지을 수 있겠습니까?
당唐나라가 천하를 소유한 지 200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성군聖君과 현상賢相이 계속 나왔고 그 밖에도 전인前人과 후인後人을 뛰어넘는 공명功名을 세운 문사文士와 무사武士가 이루 셀 수 없이 많으니, 어찌 한 사람이 급하게 〈그 많은 일들을〉 기록하여 전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나이와 뜻이 이미 쇠퇴衰退하여 스스로 부지런히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재상宰相께서 나에게는 다른 재능이 없어 등용할 만하지 못하다는 것을 아시면서도 노쇠하고 곤궁하여 사람들과 화합하지 못하는 것을 가엾게 여겨, 사해四海 안에 우수憂愁하는 자가 없게 하시려는 뜻에서 외람되이 성상聖上께 말씀드려 잠시 수찬修撰에 임명하여 나를 영예榮譽롭게 한 것일 뿐이지, 반드시 나를 독촉하거나 다그쳐서 사서史書를 편찬編纂하게 한 것이 아닙니다.
비천卑賤한 나는 감히 재상의 두터운 뜻을 거역할 수 없어 〈그 관직을 받아들인 것이니,〉 장차 사직辭職하고서 떠날 생각입니다.
또 사람들은 각자 소견에 따라 선악善惡을 판정判定하기 때문에 〈인물人物이나 사적事迹에 대해〉 전하는 말이 서로 같지 않으며, 심한 경우에는 당론黨論을 좇아 애증愛憎하는 것이 대중의 공론公論과 동일하지 않고, 교묘하게 말을 만들어 선악의 사적을 터무니없이 날조捏造하기도 하니, 지금 어떤 말을 믿고서 받아들여 허둥지둥 전기傳記를 지어 만세萬世에 전할 수 있겠습니까?
가령 귀신이 없다 하더라도 어찌 스스로의 마음에 부끄럽지 않겠습니까?
만약 귀신이 있다면 아마도 복을 주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비록 어리석지만 자신의 몸을 아낄 줄 대략 아니, 실로 감히 경솔히 사서史書를 짓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대체로 당唐나라의 위대한 공적과 현능한 사대부士大夫들의 사적事迹이 모두 거룩하여 천지 사이에 드높으니, 결코 묻혀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사관史館 안에 인재가 없지 않으니, 반드시 사서史書를 편찬하는 일에 부지런히 힘쓸 자가 있을 것입니다.
“후생이 두렵다.[後生可畏]”고 하였으니, 족하足下가 그러한 사람이 아닐지 어찌 알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