困不知變
하야 以至辱於再三
하니 君子小人之所
요 天下之所背而馳者也
로되 足下猶復以爲可敎
라하야 하야 乃至手筆以問之
호라
僕始年十六七時
에 未知人事
하고 讀聖人之書
에 以
之仕者
는 皆爲人耳
요 非有利乎己也
라가
及年二十時
하야 苦家貧
하야 衣食不足
하야 然後
에 知仕之不唯爲人耳
로라
及來京師
하야 見有
를 人多貴之
하고 僕誠樂之
하야 就求其術
하니 或出禮部所試賦詩策等以相示
하니라
聞吏部有以博學宏辭選者는 人尤謂之才라하고 且得美仕하고 就求其術하니 或出所試文章하니라
退自取所試讀之
하니 乃類於俳優者之辭
하야 顔
而心不寧者數月
이라
乃復自疑하야 以爲所試與得之者不同其程度러니 及得觀之컨대 余亦無甚愧焉하니라
夫所謂博學者가 豈今之所謂者乎며 夫所謂宏辭者가 豈今之所謂者乎아
誠使古之豪傑之士若屈原孟軻司馬遷相如揚雄之徒進於是選
이면 必知其懷慙
하야 乃
요 設使與夫今之善
와 이면 僕必知其
이라
然彼五子者가 且使生於今之世면 其道雖不顯於天下라도 其自負何如哉아
故凡僕之汲汲於進者
는 其小得
인댄 蓋欲以
요 其大得
인댄 蓋欲以同吾之所樂於人耳
니라
하고 邊境尙有被甲執兵者
하야 主上不得怡
하야 而宰相以爲憂
니라
僕雖不賢
이나 亦且潛究其得失
하니 致之乎吾相
하고 薦之乎吾君
이면 上希卿大夫之位
요 下猶
리라
若都不可得
이면 猶將耕於寬閑之野
하고 釣於寂寞之濱
하며 求國家之遺事
하고 考賢人哲士之終始
하야 하야 垂之於無窮
하야 하고 이리라
공公(韓愈)이 이부시吏部試(博學宏辭科)에 세 차례 응시하였으나 합격하지 못하자, 최사립崔斯立(崔立之)이 공에게 편지를 보내었다.
대체로 최사립은 공과 서로 마음을 깊이 아는 벗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토로吐露한 것이다.
나는 위험을 보고도 멈추지 못하여 행동이 시대에 맞지 않았기에 실패해 좌절挫折하고 궁지에 몰려 평소의 지조志操를 상실하였습니다.
이런 곤경困境에 빠졌으면서도 변경할 줄을 몰라 재삼再三 모욕을 당하는 데 이르렀으니, 군자들은 나를 동정하고 소인들은 나를 조소嘲笑하며, 천하 사람은 나를 등지고 떠나는데, 족하만은 오히려 다시 나를 가르칠 만하다고 여겨, 자신의 도덕道德을 낮추고서 친히 편지를 써서 나를 위문慰問하셨습니다.
〈편지 속에〉 옛사람의 일을 인용하신 곳의 문사文辭는 함의含意가 고상高尙하고 심원深遠하며, 또 나를 추중推重하고 권면勸勉하셨으니, 족하께서 벗을 대하심이 도리에 맞았습니다.
비록 나 또한 본래 족하께만 〈이리 대해주시기를〉 바랐지, 감히 다른 사람에게는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나를 이해하지 못하신 점이 있는 듯하니, 이는 고의로 나를 분발하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 것이 아니라면 족하는 어찌하여 대장부大丈夫의 일로써 나에게 기대하지 않는 것입니까?
잠자코 있을 수가 없어서 우선 다시 내 생각을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는 세상일을 모르고서 성인의 글만을 읽던 열예닐곱 살 때는 사람들이 벼슬하는 것은 모두 백성을 돕기 위함이고 자기의 이익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집안 살림이 매우 가난하여 입고 먹을 것이 부족해 친근한 사람에게 도움을 받아 생활하기를 꾀한 스무 살이 되어서야, 벼슬하는 것이 단지 백성을 위한 것만은 아님을 알았습니다.
경사京師로 올라온 뒤에, 많은 사람들이 주현州縣의 천거를 받아 진사과進士科에 응시하는 자들을 귀하게 여기는 것을 보고서 나는 참으로 즐거워서, 알 만한 사람을 찾아가서 진사과에 응시하는 방법을 물었더니, 간혹 자기가 예부시禮部試에 응시하였던 부賦‧시詩‧책策 등을 꺼내어 보여주는 자가 있었습니다.
〈나는 그 글을 보고서 이런 글이라면〉 배우지 않고도 지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어, 이에 주현으로 가서 천거해주기를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유사有司(考試官)들의 호오好惡가 각각 자기 마음대로여서 네 차례 응시한 뒤에야 비로소 합격하였으나 즉시 벼슬을 얻지는 못하였습니다.
이부吏部의 박학굉사과博學宏辭科에 선발된 자는 사람들이 더욱 인재人才로 여기고 또 좋은 벼슬까지 얻는다는 말을 듣고서, 나는 알 만한 사람을 찾아가서 그 방법을 물었더니, 간혹 이부시吏部試에 응시하였던 문장을 꺼내다가 보여주는 자가 있었습니다.
〈그 문장을 보았더니〉 역시 예부시의 문장과 같았습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 까닭을 괴이쩍게 여기면서도 오히려 〈박학굉사과에 응시함으로써〉 명성을 얻게 될 것을 기뻐하여, 이에 또 주부州府로 가서 천거해주기를 요구하였습니다.
이부시에 두 차례 응시하여 한 번 합격하였으나, 또 중서성中書省의 사정査定에서 탈락하였습니다.
비록 벼슬을 얻지는 못하였으나, 문장에 능하다고 나를 칭찬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습니다.
물러나와 제가 과장科場에서 지었던 문장을 꺼내어 읽어보니, 광대의 말과 같아서 몇 달 동안 부끄러워 마음이 편치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과거科擧에 응시應試하였으므로 성공하기를 바랐으니, 이는 《상서尙書》에 이른바 “허물을 부끄러워하여 숨기거나 변명하는 잘못을 저지른다.”는 것과 일반입니다.
이어 다시 천거해주기를 구하였으나 역시 합격하는 행운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에 다시 나의 실력을 의심하며 내가 과장에서 지었던 문장이 합격한 자의 문장과 그 정도程度(수준)가 같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뒤에 합격한 자들의 문장을 구해 읽어보니 나의 문장 또한 그다지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이른바 ‘박학博學’이란 것이 어찌 오늘날 말하는 ‘박학굉사博學宏辭’의 ‘박학博學’이겠으며, 이른바 ‘굉사宏辭’란 것이 어찌 오늘날 말하는 ‘박학굉사博學宏辭’의 ‘굉사宏辭’이겠습니까?
가령 옛날에 굴원屈原‧맹가孟軻‧사마천司馬遷‧사마상여司馬相如‧양웅揚雄 같은 호걸스런 인사人士들에게 이런 선발시選拔試에 나아가 응시應試하게 하였다면 내가 알기로는 저들은 반드시 마음에 부끄러움을 품고서 스스로 나아가지 않고 그만두었을 것이고, 가령 오늘날 진취進取에 능한 자들과 누가 누군지 모르는 상태에서 서로 경쟁을 하게 한다면 내가 알기로는 반드시 탈락의 치욕을 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 다섯 사람이 가령 오늘날에 태어났다면 그 학술學術과 주장主張을 천하에 드러내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자부自負하는 마음이야 어떠하였겠습니까?
그런데 어찌 지식이 얕고 도량度量이 좁은 좀스러운 무리들과 함께 시험을 치러, 한 고시관考試官의 눈에 의해 결정되는 합격과 불합격을 근심하거나 즐거워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내가 사진仕進에 급급해하는 것은 작은 관직을 얻으면 동복冬服[裘]과 하복夏服[葛]을 준비하여 의지할 곳 없는 곤궁한 사람들을 부양하고, 큰 관직을 얻으면 나의 즐거움을 사람들과 함께 누리고자 해서일 뿐입니다.
그 밖에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이미 스스로 깊이 헤아렸으니, 진실로 남의 가르침을 기다린 뒤에 알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 족하足下께서 다시 나를 옥玉을 바친 변화卞和에 비유하시면서
“반드시 옥공玉工이 박옥璞玉을 쪼갠 뒤에는 천하 사람들의 알아줌을 받았으니 비록 두 발의 발꿈치가 잘렸어도 원통하거나 한스러울 것이 없고,
또 강자强者에게 재차 발꿈치가 잘린 일이 없었다.”고 하셨으니, 진실로 족하께서 권면하신 뜻이 깊습니다.
그러나 관직官職에 진출하는 자에게 어찌 이 길 말고는 다른 길이 없겠습니까?
그런데 족하께서는 나에게 반드시 과거에 합격하기를 기다린 뒤에 출사出仕하라고 하시니, 이는 더욱 나를 이해하고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나의 옥을 본래 바친 적도 없고 나의 발꿈치를 잘린 적도 없으니 족하는 나를 위해 근심하지 마십시오.
오늘날 천하의 풍속이 아직 고대古代의 풍속에 미치지 못함이 있고, 변경邊境에 아직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든 병사가 있으므로, 주상主上께서는 즐거워하지 않으시고 재상宰相들은 근심하고 있습니다.
내가 비록 현능賢能하지 못하나, 또한 그 득실得失을 깊이 연구하였으니, 나의 생각을 우리 재상께 올리고 우리 주상께 아뢴다면 높게는 경대부卿大夫의 자리를 바랄 수 있고, 낮아도 오히려 변방의 요새要塞를 지키는 관직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이 두 가지 중에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면 오히려 넓고 한적한 들에서 밭을 갈고 쓸쓸한 물가에서 낚시질을 하며, 국가의 유사遺事를 모으고 현인賢人과 철사哲士들의 시종始終(一生)을 고증考證하여 당唐나라의 사서史書 한 질을 편찬해 무궁한 후세에 전하여, 이미 죽은 간사하고 아첨한 자들의 행위를 글로 써서 비판하고, 남이 모르는 미덕美德이 있는 사람들의 숨은 덕행德行을 드러내 밝히겠습니다.
장차 이 두 가지 중에 반드시 한 가지는 할 수 있을 것이니, 족하足下는 나의 옥玉을 몇 차례나 바치고 나의 발꿈치가 몇 차례나 잘릴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또 말씀하신 ‘강자强者’는 과연 누구이며, 재차 발꿈치가 잘리는 형刑이라는 것은 진실로 어떤 것입니까?
선비는 본래 지기의 벗에게 진실을 말하는 법이니, 족하足下가 아니었다면 나의 광망狂妄한 말을 꺼내지 않았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