又自周後
하야 百子爲書
하야 各自名家
하야 亂聖人之宗
이어늘
故設問以觀吾子
하야 其已成熟乎
ᄂ댄 將以爲友也
요 其未成熟乎
ᄂ댄 將以講去其非而趨是耳
니 也
니라
方今天下入仕
는 惟以進士明經及
耳
니라 其人率皆習熟時俗
하고 工於語言
하며 識形勢
하고 라
하야 以爭救之耳
요 非謂當今公卿間無足下輩文學知識也
니 不得以信陵比
니라
然足下衣破衣繫麻鞋
하고 率然叩吾門
에 吾待足下雖未盡賓主之道
나 不可謂
者
로라
足下行天下에 得此於人蓋寡어늘 乃遂能責不足於我하니 此眞僕所汲汲求者로라
議雖未中節
이나 其不肯阿曲以事人者灼灼明矣
니 하리라
주신 편지에, 신릉군信陵君이 친히 현사賢士를 위해 말고삐를 잡았던 것처럼 하지 않는다고 나를 꾸짖으셨습니다.
저 신릉군은 전국戰國 때 위魏나라 공자公子로 현사를 취득取得하였다는 명성名聲과 기세氣勢로 천하 사람들의 존경尊敬을 받기 위해 그리 했던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나로 말하면 세상에 공자孔子 같으신 성인聖人이 없다면 제자弟子의 대열에 끼어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 생각한 사람입니다.
그대는 비로소 산에서 나와 질박質朴하고 중후重厚한 아름다운 뜻을 지니고 있으니, 아마도 아직 세상사世上事에 단련鍛鍊(시달림)한 적이 없으신 듯합니다.
또 주周나라 이후로 문치文治로 인한 폐해弊害가 생겨, 제자백가諸子百家가 자기의 주의나 사상을 글로 적어 각자 일가一家를 이루어 성인聖人의 종지宗旨(主旨)를 어지럽혔습니다.
그런데 후생後生들은 이를 학습하고 이를 전승傳承하니, 학설이 박잡駁雜하여 하나의 이치로 전체를 관통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문제를 내어 그대의 대답을 들어보고서 그대의 학문이 이미 성숙되었으면 내가 그대를 벗으로 삼고, 아직 성숙되지 않았으면 그대의 잘못을 제거하고 옳은 데로 나아가도록 돕기를 강구하고자 한 것일 뿐이니, 길에서 현사를 만나면 지극한 예우禮遇를 대가代價로 주고서 그를 자기 사람으로 만든 육국六國의 공자公子들과는 같지 않습니다.
오늘날 천하에서 조정에 들어가 벼슬하는 자들은 오직 진사과進士科와 명경과明經科에 급제한 자들과 경대부卿大夫의 후손들뿐인데, 그들은 모두 시속時俗에 익숙하고, 말을 잘하며 형세를 알고, 임금의 비위를 잘 맞춥니다.
그러므로 천하 사람들이 모두 이런 풍조風潮에 휩쓸려 풍속이 날로 쇠퇴衰頹해지고 있으니, 다시 떨쳐 일어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힘을 다해 죽음에 나아갈지언정 이해利害와 거취去就를 돌아보지 않는 족하 같은 분을 조정朝廷에 추천하여 간쟁諫爭해 세상을 구제하게 하려는 것일 뿐이고, 오늘날 공경公卿 사이에 족하와 같은 문학文學과 지식을 가진 이가 없다고 여겨서가 아니니, 그대는 나를 신릉군信陵君에 비교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족하足下가 해진 옷에 미투리를 신고서 경솔히 나를 찾아왔을 적에 내가 비록 빈주賓主의 도리를 다하여 족하를 대우하지는 않았으나 족하에게 무심無心하였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족하가 천하를 돌아다닐 적에 사람들에게 이런 대우를 받은 일이 아마도 많지 않았을 터인데, 드디어 나에게 대우가 부족하다고 꾸짖으셨으니, 족하야말로 참으로 내가 간절히 찾던 분입니다.
논의論議가 비록 절도節度에 맞지는 않으나, 아첨하여 남을 섬기려 하지 않음은 분명하니, 나는 장차 족하를 위하여 세 차례 목욕하고 세 차례 몸에 향료香料를 바르고서 족하를 맞이할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하는 대로 맡겨두고서 마음을 편히 가지고 조급히 생각하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