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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韓愈(2)

당송팔대가문초 한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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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한유(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以烏公得士爲文하니 而溫生之賢自見이라
一過 而馬群遂空하니라 夫冀北馬多天下하니 伯樂雖善知馬라도 安能空其群耶
解之者曰 吾所謂空 非無馬也 無良馬也니라
伯樂知馬하야 遇其良이면 輒取之하고 群無留良焉하니 苟無良이면 雖謂無馬라도 不爲虛語矣
洛之北涯曰石生이요 其南涯曰溫生이라
大夫烏公以鎭河陽之三月 以石生爲才라하야 以禮爲하야 羅而致之幕下하고
未數月也 以溫生爲才라하야 於是以石生爲하야 以禮爲羅하야 又羅而致之幕下하니라
東都雖信多才士 朝取一人焉호되 拔其尤하고 暮取一人焉호되 拔其尤하니
, 河南尹으로 以及百司之執事 與吾輩 政有所不通하고 事有所可疑 奚所諮而處焉이며
士大夫之去位而巷處者 誰與嬉遊 小子後生於何考德而問業焉
之東西行過是都者 無所禮於其하니 若是而稱曰 大夫烏公一鎭河陽 而東都處士之廬虛無人焉 豈不可也리오
而聽天下 其所託重而恃力者 惟相與將耳
相爲天子得人於朝廷하고 將爲天子得文武士於幕下 求內外無治라도 不可得也리라
不能自引去ㄹ새 러니 今皆爲有力者奪之하니 其何能無於懷耶
生旣至하야 拜公於軍門커든 其爲吾以前所稱爲天下賀하고 以後所稱爲吾致私怨於盡取也하라
首爲四韻詩하야 歌其事ㄹ새 愈因推其意而序之하노라


14. 河陽軍으로 赴任하는 溫處士를 전송한
烏公(烏重胤)이 賢士를 얻은 것을 가지고 글을 지었으니, 溫生의 어짊이 저절로 드러났다.
伯樂이 한번 冀州 북쪽의 들판을 지나자 말 떼가 텅 비었다. 冀州 북쪽은 말이 천하의 〈어떤 곳보다〉 많으니, 伯樂이 아무리 말을 잘 알아본다 한들 어찌 〈그 들판에〉 말 떼를 텅 비게 할 수 있겠는가?
解說하는 자가 말하기를 “내가 말한 ‘비었다.’는 것은 말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좋은 말이 없다는 말이다.
伯樂이 말을 잘 알아보아 좋은 말을 만나면 즉시 취하고 말 떼 속에 좋은 말을 남겨두지 않았으니, 만약 좋은 말이 없다면 비록 말이 없다고 해도 빈말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東都(洛陽)는 본래 士大夫冀北이다. 재능을 자부하면서도 깊이 숨기고서 出仕[]하지 않는 자로는 洛水 北岸石生南岸溫生이다.
大夫 烏公鈇鉞을 가지고 河陽鎭守한 지 세 달째 되었을 때 石生人才라 하여 를 그물로 삼아 石生을 그물질해 잡아 幕下로 데려갔고,
몇 달이 되지 않아 또 溫生人才라 하여, 이에 石生鳥媒(후림새)로 삼고 를 그물로 삼아 또 溫生을 그물질해 잡아 幕下로 데려갔다.
東都에 비록 人才가 많다지만 아침에 한 사람을 취하되 그중에 뛰어난 자를 뽑아 갔고 저녁에 한 사람을 취하되 그중에 뛰어난 자를 뽑아갔다.
그러니 居守(東都留守) 및 河南尹으로부터 各司執事(責任者)와 우리 두 (洛陽縣河南縣)의 大夫(縣令)에 이르기까지 政事에 통하지 않는 바가 있거나 事務에 의심스러운 바가 있으면 어디에 가서 자문해 처리할 것이며,
벼슬에서 물러나 閭巷(鄕里)에서 지내는 士大夫들이 누구와 더불어 즐겁게 놀 것이며, 小子後生들이 어디에 가서 道德學業考問(자세히 따져 물음)하겠으며,
東西로 왕래하며 東都를 지나는 搢紳(官員)들이 찾아가서 拜禮隱士의 집[]이 없으니, 이와 같고 보면 “大夫 烏公이 한번 河陽鎭守하자 東都處士의 집이 텅 비어 사람이 없다.”고 하는 것이 어찌 옳지 않겠는가?
天子南面해 천하를 다스릴 때에 무거운 짐을 맡기고서 힘을 믿을 대상으로는 오직 宰相將帥뿐이다.
재상은 천자를 위해 인재를 얻어 조정에 두고, 장수는 천자를 위해 文士武士를 얻어 幕下에 둔다면 內外가 다스려지지 않기를 구하여도 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이곳에 매여 있는 몸이라 스스로 몸을 이끌고 떠날 수 없으므로 石生溫生 두 분에 依託[]해 老年을 보내기를 기대하였는데, 지금 두 사람을 모두 힘 있는 분에게 빼앗겼으니, 어찌 마음에 불만이 없겠는가?
溫生이시여!
그곳에 도착한 뒤에 軍門에서 烏公拜謁하게 되거든 나를 위해 앞에 한 말로써 천하 사람을 위해 축하하고, 뒤에 한 말로써 나를 위해 인재를 다 취해 간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 원망한다는 것을 전하시게나.
留守相公께서 먼저 四韻詩(8)를 지어 그 일을 노래하였기에, 나는 이어 相公의 뜻을 미루어 이 를 짓노라.


역주
역주1 送溫處士赴河陽軍序 : 溫處士의 이름은 造이고 字는 簡輿이다. 이 序는 韓愈가 河南縣令으로 있던 元和 5년(810)에 河陽軍節度使 烏重胤의 초빙을 받고 河陽으로 가는 溫造를 전송하며 지은 것이다.
역주2 伯樂 : 春秋 때 秦나라 사람으로 말을 잘 감별하였다고 한다. 후세에 人才를 잘 알아보는 사람의 비유로 쓰인다.
역주3 冀北之野 : 冀州 北部에는 良馬가 많이 생산된다.
역주4 東都 固士大夫之冀北 : 東都에 賢士가 많은 것이 冀北에 名馬가 많은 것과 같다는 말이다.
역주5 恃才能深藏而不市 : 재능을 자부해 깊이 숨기고 내다 팔지 않는다는 말로, 곧 재능을 숨기고서 出仕하지 않음을 비유한다. 恃는 自負함이다.
역주6 鈇鉞 : 옛날에 帝王이 出征하는 將軍에게 殺生權의 상징으로 주는 작은 도끼와 큰 도끼이다.
역주7 : 새그물이다. 아래 句의 ‘羅’자는 ‘잡다’ ‘초치하다’의 뜻으로 쓰였다.
역주8 : 다른 새를 잡기 위해 매어놓은 鳥媒(후림새)이다.
역주9 居守 : 留守이다. 이때 東都留守는 鄭餘慶이었다.
역주10 二縣之大夫 : 東都 近郊의 洛陽縣과 河南縣의 縣令을 이른다.
역주11 搢紳 : 官員을 이른다. 관원들이 평소에는 笏을 허리띠에 꽂기 때문에 搢紳이라 한다. 搢은 꽂음이고, 紳은 띠이다.
역주12 : 隱士의 집을 이른다.
역주13 南面 : 帝王의 자리이다. 古代에는 북쪽에 앉아 남쪽을 향하는 자리를 尊位로 여겼다. 天子나 諸侯가 신하를 접견할 때와 卿大夫가 僚屬을 접견할 때 모두 남쪽을 향해 앉았다.
역주14 縻於玆 : 몸이 이곳에 매어 있다는 말이다. 이때 한유가 河南縣令이었다.
역주15 資二生以待老 : 資는 依託함이고, 二生은 石生과 溫生이고, 待老는 老年을 보내기를 기대함이니, 곧 두 분에 의지해 노년을 보내기를 기대했다는 말이다.
역주16 介然 : 介然에는 芥蒂의 뜻이 있고, 芥蒂는 마음에 원한이 쌓여 불만스러움이다.
역주17 留守相公 : 東都留守 鄭餘慶을 이른다. 相公은 宰相을 이르는데, 唐 憲宗이 즉위한 달에 鄭餘慶을 同中書門下平章事에 제수하였기 때문이 한유가 ‘相公’이라 칭한 것이다.

당송팔대가문초 한유(2) 책은 2020.12.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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